[인터뷰: 롤리스 전 부차관] “카터 ‘인권 외교’, 한국 안보와 대북 접근에 복합적 영향”

9일 워싱턴 DC에 있는 국립 대성당에서 엄수된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국가장례식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추도사를 하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인권 외교를 통해 미한 관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퇴임 후에는 북한과의 평화 중재를 시도한 지도자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그의 외교적 접근이 한반도에 복합적인 영향을 남겼다는 시각도 존재하는데요. 카터 대통령 재임 당시 CIA 작전 요원으로 한국에 파견됐던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 부차관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업적과 유산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합니다. 조은정 기자가 진행했습니다.

리처드 롤리스 전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 부차관이 9일 VOA 조은정 기자와 화상 인터뷰를 했다.

기자) 카터 전 대통령의 ‘인권 외교’가 미한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당시 CIA 작전 요원으로 한국에서 활동하셨는데요.

롤리스 전 부차관) 인권은 카터 전 대통령의 사고방식에서 결정적인 요소였을 겁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한국, 박정희 전 대통령, 그리고 미한 동맹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카터 전 대통령의 한국에 대한 국가안보 정책은 한국의 인권 상황과 그의 이러한 인상이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포토 갤러리]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주요 순간들

기자) 실제로 카터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의 인권 문제를 들어 주한미군 철수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는데요. CIA 요원으로 한국에서 직접 본 현지 반응은 어땠습니까?

롤리스 전 부차관) 주한미군 철수 공약은 미한 관계 전반에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특히 동맹의 신뢰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카터 대통령이 이 공약을 진지하게 추진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카터 대통령의 결정 배후에 있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카터 대통령은 대표단을 한국에 파견해 자신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려 했죠. 흥미로운 점은, 미국이 이보다 약 1년 전에 한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차단했다는 사실입니다. 제 생각에, 만약 카터 대통령 취임 전에 미국이 이미 한국의 핵개발을 단념시키지 않았더라면, 그 프로그램이 제한적으로라도 계속됐다면, 한국이 결국 핵무기를 보유하게 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핵개발을 진행할 충분한 정당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또한, 당시 카터 대통령의 태도와 정책을 고려할 때, 미국 정부가 한국의 핵개발을 중단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겁니다. 카터 행정부의 당국자들과 카터 대통령의 보좌진은 1979년 6월 서울에서 열린 카터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을 ‘최악의 회담’으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기자) 카터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같은 반체제 인사들의 구명을 위해 노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행보가 박정희 대통령이 인권 문제를 개선하도록 압박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측면은 없었을까요?

롤리스 전 부차관) 카터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과정을 가속화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박 대통령과는 큰 진전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을 깨달았습니다. 회담이 거듭될수록 카터 대통령의 주한미군 철수 의지는 더 확고해졌고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994년 6월 북한을 방문하고 김일성 주석과 면담했다.

기자)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북한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김일성 주석과의 직접 담판을 통해 미북 간 군사적 충돌을 막았다는 평가를 전직 당국자들로부터 많이 들었는데요.

롤리스 전 부차관) 카터 대통령은 현대 역사상 어떤 대통령보다도 국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인물입니다. 그가 이루지 못했다고 느낀 과제 중 하나는 바로 북한과 평화를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자신이 미국과 북한 간의 평화를 중재할 수 있는 ‘피스메이커’가 될 수 있다고 믿었죠. 그러나 이런 행보는 당시 클린턴 대통령과 행정부 관료들의 불만을 샀죠. 카터 전 대통령은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여러 차례 방북 초대를 받았고, 한반도의 긴장이 고조되던 시점에서 대담하게 북한을 방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백악관에 방북 계획을 알리긴 했지만 정식 허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와의 협의 없이 CNN에 출연해 북한과 핵 동결에 합의했다고 발표하기까지 했죠. 클린턴 대통령의 최측근 보좌관 중 한 명은 이와 관련해 “백악관은 카터의 행동을 반역적인 것으로 간주했다”고 합니다. 상당히 강도 높은 표현이죠.

기자)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요.

롤리스 전 부차관) 카터 전 대통령은 독재 정권의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한편, 개선 가능성이 있는 우호국들의 인권 증진은 추구했습니다. 그는 선의를 가지고 있었지만, 순진했고, 인권 기준을 불균등하게 적용했습니다.

지금까지 리처드 롤리스 전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 부차관으로부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한반도 관련 활동과 유산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조은정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