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FP, ‘북한 내 식량 분배감시 더 자유로워야’

세계식량계획 WFP 평양사무소장으로 북한에서 인도주의적 지원 활동을 펴 온 장 피에르 드 마저리 소장이 이 달 말로 2년의 임기를 마치고 평양을 떠납니다. 국제 학술회의 참석차 서울을 방문 중인 드 마저리 소장을 저희 `미국의 소리' 방송이 단독 인터뷰했습니다. 드 마저리 소장은 인터뷰에서 "지난 2년은 아주 독특한 경험이었다"고 회고하고, "대북 지원 물자에 대한 분배감시 활동이 더욱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드 마저리 소장을 인터뷰했습니다.

[질문1] 드 마저리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먼저 평양사무소장 임기가 곧 끝나는데요, 지난 2년 간 평양에서의 활동 가운데 가장 큰 성과라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마저리] 네, 가장 큰 성과는 최근에 있었던 북한 당국과의 협상이라고 봅니다. 평양에 상주하면서 일할 WFP 인원을 37 명에서 59 명으로 늘렸고 여기엔 특히 한국어 통역원도 포함되도록 합의했습니다. 한국어 통역원은 식량 지원 현장팀에 속해 활동합니다. 이는 WFP의 대북 협상 가운데 전례 없는 성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좀 더 효과적이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북한의 빈곤 문제 해소에 최대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봅니다.

[질문2] 평양에서 활동 중에 어려움이 많으셨을텐데요, WFP가북한에서 직면한 가장 큰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마저리] 북한 당국과의 협조관계가 개선돼 인도주의적 지원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단계로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식량 문제에 있어서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당장은 시급한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계속 추진하고 있는데요, 그러나 이것은 좀 더 장기적인 프로그램과 연계돼 북한이 과거보다 더 자급자족적인 상태가 되도록 방향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질문3] 지난 9월부터 WFP가 북한 정부와 지원 프로그램의 확대, 그리고 분배감시 활동의 개선 등을 놓고 협상을 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협상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마저리] 북한의 협상가들은 상대하기가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가끔 협상이 난항을 겪기도 했구요, 또 경우에 따라선 우리가 그들과의 협상에서 끌려가야만 하기도 했습니다. 또 북한과의 협상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북한 측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결론을 얻어내려고 하는 데 대해 잘 대응해야 하는데요, 그렇다고 항상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건설적인 협상이 이뤄진 경우도 많구요. 또한 WFP가 13년 간 북한과 관계를 유지해 온 결과 사업 이행과 정부와의 협력에 있어서 발전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질문4] 북한에서의 WFP 활동, 특히 대북 지원 식량의 분배 감시 활동 가운데 어떤 측면이 더 개선돼야 할 것으로 보십니까?

[마저리] 두 달 전 자유로운 분배감시 활동을 위한 조건들에 대해 북한 당국과 성공적인 협상을 벌였습니다. 때로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 전 날 또는 전 주에 있었던 내용을 재협상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를 위해 지역마다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기도 합니다. 현재 합의한 방식으로 몇몇 지역에서 감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진행 상황은 현재까지 상당히 만족스럽지만 분배감시활동의 유연성을 더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문5] WFP는 비정치적인 기구로 알고 있습니다만 평양에 계신 동안 북 핵 문제 등 정치적 문제로 식량 원조 활동에 영향을 받지는 않았는지요?

[마저리] 식량을 지원하는 기증자 또는 기증기관에 우리가 꼭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기증자들의 기부행위를 정치적인 문제와 연결시키는 게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기증자들이 인도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행동규범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6] 평양사무소장 직을 떠나고 난 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시죠.

[마저리] 지난 2년 간 저는 아주 독특한 환경 속에서 식량 원조 활동을 했습니다. 북한에서 나 자신의 한계에 도달해보기도 했죠. 새로운 상황에서 정말 스스로를 시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일할 곳도 아시아가 될 것 같습니다. 일단 캐나다로 돌아가기 전에 휴가를 갖고 내년 1월 다시 아시아로 돌아올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