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코로나바이러스 발병 실태를 감추면서 주민들의 집단감염 위험을 계속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인권 침해이며, 외부선전 보다 자국민의 안전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1명도 없다는 북한의 발표가 연일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공중 보건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코로나 청정국’ 행세를 하는 것은 자국민뿐 아니라 이웃 나라까지 위험에 빠뜨린다는 비판으로 이어집니다.
특히 북한의 내부 상황을 직접 경험한 전 외교 당국자들은 북한의 주장을 지나친 과장으로 일축합니다.
영국의 초대 평양주재 대리대사를 지낸 제임스 호어 박사는 VOA에 “감염증 발병 초기에는 많은 나라가 위험성과 심각성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감염 사례가 전혀 없다는 북한의 주장은 중국과의 연계성을 고려할 때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제임스 호어 전 평양주재 영국 대리대사] “The initial reaction from most countries has been to play down the threat and the seriousness of it. Clearly the DPRK is no different in that, but the claim that there have been no cases seems highly improbable, given the country's links with China.”
2001년 영국 대리대사를 맡아 평양대사관 개설을 주도했던 호어 박사는 “(북한에) 확진자가 없다면 국경 봉쇄를 비롯해 마스크 착용과 당국 차원의 지시와 훈계 등에 대해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제임스 호어 전 평양주재 영국 대리대사] “If there are no cases, it is hard to explain the lockdown that has been enforced and the widespread indications of concern - masks, briefings and constant admonishments to be careful.”
북한은 현재 환자는 없다면서도 격리된 인원이 500여 명이라며 코로나 사태가 세계적으로 종식되기 전까지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지난달 27일까지만 해도 전국 격리 인원이 2280여 명이라고 밝혔는데, 지난 일주일 사이 1780여 명이 격리 해제됐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태평양의 소규모 섬나라 10개국과 아프리카 3개국을 제외하면 북한과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예멘이 아직까지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발생하지 않은 소위 ‘청정국’이지만 대부분 환자를 숨기고 있거나 진단검사 역량이 부족해 검진하지 못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히 감염자가 없다는 북한의 주장은 주민의 건강보다 정권의 권위와 위신을 세우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으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우선순위를 잘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김정은 정권은 다른 나라와 달리 질병을 통제할 역량을 갖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게 분명하다”고 말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부차관보] “Kim Jong-un evidently wants to showcase his regime as having the capacity to control the disease unlike other countries. He also would doubtless prefer not to have North Korea's deficient, underfunded health system exposed to public view.”
“또한 김정은은 열악하고 자금난에 시달리는 북한의 보건체계를 공개적으로 노출하기를 꺼린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북한은 여전히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사회주의식 보건정책이 빛을 보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북한 노동신문은 3일 게재한 논설에서 “전 세계가 악성 비루스 감염증의 피해로 인한 대혼란 속에 빠져 전전긍긍하고 있는 때에 우리나라에서는 단 한 명의 감염자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세상에서 가장 우월한 우리나라 사회주의 보건제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는 “북한 지도부가 사실을 전달하는 대신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정보를 내놓고 있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North Korea does not have a particularly good track record for telling the truth. The DPRK leadership gives the information that serves their purpose, not the facts.”
무엇보다 정권의 입맛에 맞춘 발표가 자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점을 비판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을 축소 발표하는 것은 북한 내부에서 심각한 보건 문제를 일으킨다”는 설명입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Under-reporting virus impact in North Korea is certainly a serious risk for serious health problems inside the North.”
하지만 감염 실태 은폐가 단순히 정권의 체면을 세우려는 선전으로 끝나지 않고 북한 주민을 ‘코로나 사각지대’에 가둔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확진자가 없어 더 걱정”이라는 목소리가 의료인들뿐 아니라 인권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아지는 이유입니다.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의 필 로버트슨 아시아 담당 부국장은 “김정은과 북한 정부는 국가의 결함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부인해야 한다고 믿고 있으며, 그 결과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하는 대신 주민을 죽게 내버려 둔다”고 비판했습니다.
[필 로버트슨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 담당 부국장] “Kim Jong-un and the North Korean government believe they must deny any defect in the country, no matter how small, and as a result they will let people die instead of asking for international assistance to respond to the Covid-19 threat. By acting to maintain an unreal image of the DPRK as some sort of ‘paradise’, the government is condemning North Koreans to needlessly fall sick and succumb to this pandemic.”
“북한에 ‘낙원’이라는 비현실적 이미지를 계속 덧붙이기 위해 쓸데없이 질병에 걸리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굴복한 것처럼 자국민을 꾸짖고 있다”는 겁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는 “북한은 코로나바이러스 검사 역량을 갖추지 못했음이 분명하다”며 “다른 나라에 감염증 치료를 위한 지원을 요청했으면서도 감염자가 없다고 부인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은 정보를 차단하고 있고, 이 같은 검열은 공중보건 비상사태 속에서 인명을 희생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부차관보] “It is clear it doesn't have the testing capacity to know if it is free from coronavirus; and it has requested aid from other countries to treat coronavirus. Yet it denies any cases. It is obviously suppressing information, and such censorship can cost lives in a public health emergency.”
북한이 대외적으로는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실태를 감추지만 대내적으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감염증 발발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과도할 정도로 대처한다는 진단도 있습니다.
호어 박사는 평양주재 당시를 회고하면서 “북한은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해 언제나 중대 조치들을 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과거와 비교해 빈약한 보건 체계와 대체로 낮은 감염 저항력 때문에 질병 확산 방지는 북한에 매우 중요하다”는 겁니다.
[제임스 호어 전 평양주재 영국 대리대사] “The DPRK has always taken major measures to prevent the spread of communicable diseases. The poor state of its health service, compared with the past, and the generally low resistance to disease makes it important to stop epidemics getting underway. The current measures fit in well with the country's general approach to containing contagious diseases.”
하지만 관련 백신이 개발되지 않았고 방역 장비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스스로 빗장을 건 채 강력한 ‘의지’만으로 선진 의학과 과학기술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게 북한을 직접 상대했던 미 전직 관리의 지적입니다.
2011년 북한을 방문해 미국의 대북 인도적 지원 계획을 논의했던 킹 전 특사는 “북한의 보건 체계가 팬데믹에 대처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점이 문제”라고 우려했습니다. “호흡기와 개인 방호 장비 등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의료진의 감염률과 사망률도 매우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겁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The problem for North Koreans is that their own health care system does not have much capability to help deal with the pandemic. Respirators are very limited in wealthy countries (such as the U.S.), and North Korea is probably much, much less able to handle significant need. I suspect that North Korea also has very limited resources for Personal Protective Gear (PPG) which is needed to protect healthcare professionals. I would expect a high infection rate and death rate among medical personnel.”
전문가들은 또 북한이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위기 속에서 보여주는 행동은 심각한 인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규정했습니다.
로버트슨 부국장은 “기적과도 같이 감염자가 없다는 우스꽝스러운 주장을 계속함으로써 북한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그중에서도 “비폭력적 범죄로 수감된 이들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위험이 높은 구금 시설에서 석방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대 사안”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필 로버트슨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 담당 부국장] “By continuing this farcical claim that it is miraculously virus free, North Korea violates rights in a number of ways, most importantly by failing to act to release at risk persons and those convicted of non-violent crimes from detention facilities where crowding creates huge risk for spreading Covid-19. The WHO and the UN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 have both called for immediate action to reduce risk of Covid-19 to people in prisons and other sorts of lock-ups but that guidance is falling on deaf ears in the DPRK government.”
“세계보건기구(WHO)와 유엔 인권최고대표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수감자들 사이에서 확산할 위험을 줄이기 위해 이들에 대한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했지만 북한은 이러한 지침을 무시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WHO는 지난 23일 각국에 교도소 방역 대책 강화를 촉구하며, 수감자와 교도소 직원들을 위한 보건 지침까지 내놨습니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도 지난달 25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수감시설 내 발병 소지를 우려하면서 세계 각국에 충분한 법적 근거없이 감금된 정치범 등을 석방시킬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 샘 브라운백 미국 국무부 국제종교자유 담당 대사는 지난 2일 언론 브리핑에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과 관련해 북한과 중국 등을 향해 종교적 수감자의 석방을 공개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로버트슨 부국장은 “북한은 주민들이 적정 수준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권리를 이미 조직적으로 침해했고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필 로버트슨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 담당 부국장] “North Korea also already violates in a systematic way the right of people to adequate levels of health but the coronavirus epidemic will greatly worsen the situation. However, until defectors escape from North Korea’s lockdown of the country to tell us what is happening, Pyongyang’s cover-up of the pandemic will continue.”
그러면서 “북한의 통제에서 탈출하는 탈북민들이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말할 때까지 당국의 팬데믹 은폐는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코헨 전 부차관보도 인권 침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보건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투명성 없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욱 비효율적이 된다”며 “북한인들은 감염증이 얼마나 퍼졌는지 알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부차관보] “Without accurate information and transparency about health needs, addressing the problem will prove far less effective. North Koreans have a right to know about how far the disease has spread in the country. Censorship not only keeps people in the dark but it corrupts the officials who are required to cover up the information. It would appear the right to health and to life have taken a back seat to political imperatives.”
아울러 “검열은 사실을 알리지 않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정보 은폐를 담당한 관리들을 부패시킨다”면서 “정치 논리 때문에 건강권과 생명권이 뒷전으로 밀리는 상황”으로 평가했습니다.
다만 북한의 감염증 확산 정보 은폐가 이웃나라의 안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서는 엇갈린 진단이 나옵니다.
킹 전 특사는 북한의 폐쇄성을 고려할 때 가장 큰 피해는 북한 주민들이 입게 될 것이고 이웃 국가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There is not much contact between South Koreans and North Koreans, so there is little likelihood of greater risk for the South. China probably has more problem of its own than North Korea because there is somewhat greater freedom of movement in China than in North Korea. The impact of contagion from North Korea in China is very small. The principal impact is likely to be on North Korea and not any of its neighbors.”
“남북한 간 접촉도 거의 없고, 이동의 자유가 좀 더 보장된 중국은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문제가 더 심각하기 때문에 북한 내부의 감염이 이들 나라로 옮겨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겁니다.
하지만 코헨 전 부차관보는 “북한이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하고 밀수 등을 단속하고 있지만 허술한 국경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며 “북한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이 중국에 위험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버타 코헨 전 국무부 부차관보] “The spread of CV in North Korea could also pose a risk to neighboring China. North Korea's capacity to control internal movement and its crackdowns on trading and smuggling cannot be absolute over a porous border.”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