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이 한국으로 가기 위해 가장 많이 경유하는 태국 수도 방콕의 이민국수용소(IDC) 내 한국행 탈북민이 전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북민 지원단체 관계자들은 방콕에서 탈북민이 사라진 것은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코로나바이러스 여파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태국 방콕의 외교 소식통 등 복수의 소식통은 20일 VOA에, 방콕의 이민국수용소(IDC) 내 한국행 탈북민이 지난주부터 전무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소식통] “최종적으로 확인한 바는 미국 가는 탈북민이 한 명 있고, 한국행은 현재 없습니다. 진짜 이런 상황이 처음입니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다른 불법 체류자들과 함께 대기 중인 20대 탈북 청년 한 명이 있을 뿐, 한국행 탈북자들이 별도로 머무는 공간은 텅 비었다는 겁니다.
방콕 이민국수용소는 탈북민이 한국 혹은 미국으로 가기 위해 태국에서 마지막으로 거치는 최종 관문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탈북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던 곳입니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2018년 VOA에, 매년 편차가 있지만 한국 입국 탈북민의 평균 70%가 태국을 통해 입국한다고 말했었습니다.
태국 내 소식통과 탈북민 구출단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여파로 탈북민들의 중국 내 이동이 석 달째 중단되면서 태국에서 탈북민이 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소식통] “(바이러스 발생 전에는) 남자는 평균 십 몇 명, 여자는 그보다 더 많아서 30~40여 명, 최근 빨리 (한국으로) 간 경우 15일 정도, 늦어도 한 달 이내에 한국으로 들어갔어요.”
유엔난민기구(UNHCR) 방콕사무소는 현지 탈북민 상황에 관한 VOA의 질문에, “북한 국적자는 태국에서 UNHCR 관할에 있지 않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제니퍼 해리슨 UNHCR 태국 사무소 대외 담당 사무관] “Please be advised that nationals of North Korea do not fall under the mandate of UNHCR in Thailand. We are therefore not able to respond to the questions,”
UNHCR은 2007년 중반까지 방콕에서 탈북민 업무를 담당했지만, 탈북민들이 폭증하면서 외교 문제가 불거지자 미국행을 제외한 한국행 탈북민 업무는 전면 중단했습니다.
이후 태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직접 협력하면서 한국행 탈북민들의 출국이 과거 수 개월에서 한 달 안팎으로 빨라졌습니다. 대신 모든 탈북민은 이민국수용소(IDC)에 반드시 입소한 뒤 출국 절차를 밟았습니다.
한국 외교부는 20일 태국 내 탈북민 상황에 관한 VOA의 질문에 “확인해줄 사항이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탈북민 구출단체들은 VOA에, 지난 1월 말부터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 내 탈북민 유입이 사실상 전면 중단된 상태라고 밝혔습니다.
한국의 탈북민 구출단체인 갈렙선교회 김성은 목사는 1월 이전 동남아 국가에 도착한 탈북민들이 기독교 단체 숙소에서 2~3개월 정도 성경 공부를 하며 휴식을 취한 뒤 이민국수용소에 들어갔기 때문에 소수가 지난달까지 통계에 잡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들마저 모두 한국으로 떠나면서 태국에서 탈북민이 사라졌다며, 지난 20년 간 볼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성은 목사] “저도 22년 사역했지만, 전무후무한 일인 것 같아요. 전혀 없습니다. 중국에서 갈 수도 없고, 라오스 군대가 막고 있는 상황이고 또 라오스를 가도 태국으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태국도 막고 있고, 그러다 보니 브로커든 선교단체든 누구도 탈북자의 이동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고. 자연스럽게 태국 이민국수용소에 단 1명의 탈북자도 없게 됐는데. 정말 태국에 탈북 역사상 한 명도 없는 초유의 일이 일어난 거죠.”
중국 내 복수의 소식통은 앞서 VOA에, 중국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1월 말부터 신분증과 여행증명서를 철저히 확인하는 등 이동을 강력히 규제해 탈북민들이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었습니다.
김 목사는 중국 정부가 최근 제한 조치를 약간 완화하자 한 단체가 이동을 강행하다 탈북민 6명이 남방 지역에서 공안에 체포됐다며, 여전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과거 방콕에서 대규모 탈북민 안가를 운영했던 한국 두리하나선교회 천기원 목사는 이런 상황에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천기원 목사] “태국에 제일 많이 왔죠. 거기가 마지막으로 희망과 자유를 찾는 출발점이자 종착점. 거기 가면 일단 지금까지는 북송되거나 그런 케이스가 없으니까. 한국이 마지막 결승점이지만, 그래도 방콕만 가면 한국, 미국 간다는 희망이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탈북자들에게는 천국이었죠. 일단 방콕에 도착하면 우리부터 안도의 숨을 쉬니까. 탈북자들도 덩달아 우리도 살았구나.”
천 목사는 방콕에 탈북민이 가장 많았던 2007~2009년에는 규모가 400명을 넘은 경우도 있다며, 탈북민들에게 수많은 애환이 묻어있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천기원 목사] “그 때만 해도 자리가 좁아서 (수용소) 화장실에도 15~16명이 있고. 안에 공간이 없어서 화장실에서도 자고 그랬죠. 싸움도 나고 아비규환이었죠.”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한국 내 탈북민 입국은 2001년에 처음으로 1천 명을 넘은 이후 2006년에는 2천 명, 2009년에는 3천 명 가까이 폭증했습니다.
태국 이민국 관계자는 앞서 VOA에, “2천 년대 초반에는 탈북민이 십 수 명에 불과했지만, 2005년에 100여 명으로 증가한 뒤 이후 수 백 명으로 급증했다”고 말했었습니다.
단체 관계자들은 이후 규모가 줄었지만 코로나바이러스 발생 전까지도 매달 수 십 명이 꾸준히 입국했다고 전했습니다. 태국은 인근 공산권 국가들과 달리 난민을 인도적으로 대우하고 있고, 탈북민을 강제추방한 전례도 없기 때문에 여전히 탈북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이란 겁니다.
탈북민들에게 태국은 아픈 기억과 희망이 공존하는 지역입니다. 지난 2002년 태국 이민국수용소에 6개월 간 머물렀던 청진 출신 허은성 씨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녹취: 허은성 씨] “답답하니까 다툼도 자주 일어났었고. 정원이 70명 정도면 거의 외국인이 100명 정도 함께 있어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굉장히 협소했습니다. 돌아 누우면 다툼이 일어날 정도로. 자리가 없어서 다른 분들이 일어나면 그 자리에서 잤던 기억이 납니다. 폐렴이 와서 다른 방으로 격리되기도 하고.”
2006년부터 2년 반 동안 방콕에 머물다 미국 서부에 정착한 그레이스 씨도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머물러야 했던 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그레이스 씨] “저희 올 때 최고로 많았을 겁니다. 그 때는 엄청 감옥에 자리가 없어서
서로 자릿세 받고, 서로 돈 주고 사고팔고 했었거든요. 2008년이 아마 더 심했을 거예요.”
지난 2008년에는 미국행을 원하는 탈북민 30여 명이 조속한 출발을 요구하며 단식농성까지 벌였고, 수용소에서 VOA에 직접 휴대폰으로 전화해 성명을 낭독하기도 했습니다.
[탈북민 대표] “저희들이 자기가 찾은 자유와 행복에 만족하여 이기적인 존재가 아니라 아직도 김정일 독재정권의 기만과 탄압 속에서 불행과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의 북한 동포를 하루빨리 구원하기 위해 싸우는 진정한 인권의 투사로 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미 합중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시급히 취하여,”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수용소를 방문해 탈북민들을 돕는 선교단체의 손길이 이어졌고, 허은성 씨는 이런 사랑 때문에 나중에 성직자가 됐다고 말합니다.
[녹취: 허은성 목사] “감옥에서 음식 먹기에는 뭔가 허하고 항상 배고팠습니다. 근데 그 분이 사모님과 2주에 한 번 꼭 오셔서 바나나를 주시고 음식도 주셨습니다. 제가 지금은 교정 선교, 교도소 사역을 갑니다. 생각해 보니까 그 분이 그 때 내게 오셨던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반복적으로 찾아간다는 게. 그런데도 매번 찾아오셔서 해 주셨던 그 분의 사랑이 너무 컸습니다. 그 위로가 그 때는 너무 컸습니다. 그 사랑이 지금도 사역에 도움이 됩니다.”
탈북민 지원단체들은 중국 당국의 규제가 더 풀려야 태국 등 동남아로 향하는 탈북민들의 이동이 재개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135명으로, 11년 만에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