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수화로 소통하는 농아인 피자 가게...자폐 소녀를 위한 무지개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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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김현숙입니다. 미국 청각장애인 센터에 따르면 미국 내 농아인, 즉 청각장애인의 절반가량은 직장이 없다고 합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농아인을 받아줄 수 있는 직장이 많지 않기 때문인데요.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나선 청각장애인 사업가가 있다고 합니다.

워싱턴 D.C.의 농아인 핏자가게 '모제리아'에서 직원이 피자를 포장하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수화로 소통하는 농아인 피자가게”

[현장음:모제리아 가게]

워싱턴 D.C.의 피자 전문식당인 ‘모제리아(Mozzeria)’. 보통 이탈리안 식당이라고 하면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떠올리지만, 이곳은 유난히 조용합니다. 왜냐하면 식당 주인과 직원들이 모두 수화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라이언 말리셰브스키 최고경영자(CEO) 모제리아 피자가게의 목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나무 장작을 때는 화덕에 굽는 최고의 이탈리아 전통 피자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또 다른 목표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녹취: 라이언 말리셰브스키]

라이언 CEO는 자신의 가게는 농아인들에게 멀리 뛰어오르기 위한 도약판이 되어 주고 있다고 통역사를 통해 밝혔는데요. 단순한 기술이 아닌 협상력이나 지도력, 문제 해결력과 같은 대인관계 능력을 기르는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겁니다. 이런 능력은 어느 분야로 진출하든 아주 필수적인 기술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라이언 CEO는 워싱턴 D.C.뿐 아니라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도 ‘모제리아’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곳 직원들 역시 청각장애인들입니다.

워싱턴 지점은 포장과 배달에 집중하면서 코로나 사태 가운데서도 가게 운영이 잘 되고 있는데요. 특히 워싱턴 지점은 갤러댓대학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서 직원 확보에도 어려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대학은 청각장애나 난청을 앓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다 보니

워싱턴에서 가장 농아인 인구가 많은 지역이 바로 이 대학 인근 지역이기도 합니다.

[녹취: 데이비드 우젤]

식당의 부주방장인 데이비드 우젤 씨 역시 통역을 통해, 모제리아에서 일하는 것이 정말 환상적이라고 했는데요. 지난 4~5년간 농아인이 없는 곳에서 일할 땐 사람들과 대화하려면 번번이 손전화를 꺼내 문자를 보내야 했고, 직원회의가 있을 땐 동료 직원에게 뭐라고 하는지 글로 써줄 것을 부탁해야만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선 다들 수화로 소통을 하니 정말 편하게 일할 수 있다는 거죠.

[녹취: 제프 페리]

모제리아의 또 다른 직원인 제프 페리 씨는 농아인들의 경우 직장이 없거나 아주 하찮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는데요. 식당에서도 대부분은 부엌에 처박혀 설거지를 하거나 재료 손질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식당 측은 농아인 직원의 경우 손님들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해 아예 일선에서 일해볼 기회조차 안 준다는 거죠.

모제리아 식당에선 하지만 농아인이 피자 만들기부터 주문받는 일까지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데요. 다만, 요즘은 코로나 사태로 사람들이 다들 마스크를 쓰다 보니 수화를 하지 못하는 손님들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좀 있다고 했습니다. 라이언 CEO는 그래도 방법은 있다고 했는데요.

[녹취: 라이언 말리셰브스키]

직원들이 손짓을 많이 활용한다는 겁니다. 원래 이탈리아 사람들이 말할 때 몸짓, 손짓을 많이 하는 편인데 이탈리아 식당에 온 손님들도 직원들의 화려한 손짓을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겁니다.

모제리아는 현재 11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데요. 라이언 CEO는 코로나 사태가 끝나 식당을 완전히 재개방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가게를 더 늘릴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자폐아인 익셀 블랜든 매킨타이어 양이 자신의 집에 마련된 '무지개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두 번째 이야기, 자폐 소녀를 위한 무지개학교”

코로나 사태로 미국 내 대부분의 학교가 교실이 아닌 집에서 공부하는 온라인 화상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수업에 잘 적응하는 학생들도 있지만, 컴퓨터 화면을 보며 하는 수업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도 있는데요. 워싱턴 D.C. 인근에 사는 익셀 블랜든 매킨타이어 양도 그중 한 명입니다.

올해 8살로 자폐증 때문에 집중을 잘 못하는 익셀 양에게 부엌 식탁에서 공부하는 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는데요. 심지어 익셀 양의 부모님도 재택근무를 하는 바람에 부엌 공간을 나누어 써야 할 처지였죠.

하지만 지난 9월, 익셀 양에겐 자신만의 작은 학교가 하나 생겼습니다. 바로 집 마당에 작은 부속건물을 세우게 된 겁니다.

[녹취: 익스 블랜든]

어머니 익스 블랜든 씨는 부엌에는 장난감도 있고, 수업을 방해할 만한 것투성이다 보니 익셀 양이 도무지 집중을 못 했다고 했는데요. 하지만 집 밖에 세운 이 학교가 너무나 큰 변화를 가져다줬다는 겁니다.

익셀의 부모님은 처음엔 딸을 위해 기존에 파는 창고를 세워서 학습 공간으로 바꾸려고 했는데요. 하지만 가장 싼 게 2천500달러일 정도로 비싸다 보니 도무지 살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손수 학교를 지어보기로 결심하고는 지역 페이스북 그룹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했습니다.

[녹취: 제시카 해리스]

지역 페이스북 그룹 운영자인 제시카 해리스 씨는 익셀 양 부모님이 지역 주민들에 안 쓰는 나무판자나, 쓰고 남은 페인트 등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다고 했는데요. 이웃들이 여기에 응답하며 돕기 위해 나섰다고 했습니다.

익셀 양의 아버지 맥 매킨타이어 씨는 처음엔 그저 기초 작업에 필요한 몇 가지를 얻을 요량으로 글을 올렸는데, 학교를 짓는 데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이 채워졌다고 했습니다.

[녹취: 맥 매킨타이어]

한 이웃이 기초와 바닥을 닦을 나무를 다 대줬고, 또 건물의 세 벽은 대형 쓰레기통에서 떼왔다는 겁니다.

익셀 양 역시 부모님의 건축 과정을 도왔고 지금은 비록 작은 가건물이긴 하지만, 자신만의 공간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익셀 블랜든 매킨타이어]

창문도 좋고 바닥도 좋고 책상도 좋고 무엇보다 천장이 무지개라 너무 좋다는 겁니다.

익셀 양의 학교 지붕 합판은 무지개색으로 칠해져 있는데요. 그래서 학교 이름도 ‘무지개 초등학교’로 지었습니다.

한 이웃 주민은 무지개 학교를 보고는 학교를 상징하는 학교 로고도 만들어 줬는데요. 거기다 학교 로고가 새겨진 컵까지 만들어 익셀 양에게 선물해 줬습니다.

익셀 양은 진짜 학교처럼 친구들을 만나지는 못하지만, 무지개 학교로 향하는 아주 짧은 등굣길에 설렘이 넘치는 듯했습니다.

[녹취: 맥 매킨타이어]

맥 매킨타이어 씨는 딸이 실제로 학교에 가는 것과 똑같이 무지개 학교로 등교한다고 했는데요. 같은 등교 시간에 예쁘게 옷도 차려입고 들어가 수업을 시작한다는 겁니다. 단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교실 안에 친구들이 없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익셀 양의 부모님은 자신들이 이렇게 이웃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될 거라곤 기대도 못 했다는데요. 이웃 주민들 역시 익셀 양에게 행복을 선사한 이후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 됨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