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김현숙입니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LA에는 영화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할리우드’가 있습니다. 이곳에선 수많은 영화와 TV 연속극 등이 제작되는데요. 그렇다 보니 LA에는 배우와 배우 소속사들도 많습니다. 소속사들은 자기 회사에 속한 배우들을 할리우드 스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요. 조금 특별한 배우들을 키우는 소속사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장애인 배우 소속사, C탤런트”
[현장음: C탤런트 홍보 영상]
‘C탤런트’는 지난 2018년 할리우드에 문을 연 배우 소속사입니다. 총 47명의 남녀 배우들이 속해있는 이 소속사가 다른 회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장애인 배우들만 관리하고 있다는 겁니다.
[녹취: 스콧 로젠덜]
C탤런트 소속 배우인 스콧 로젠덜 씨는 미국 전체 인구에서 장애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3%~25%까지 보지만,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장애인 역 비율은 2%밖에 안 된다고 지적했는데요. 게다가 대부분 비장애인 연기자가 장애 연기를 하는 것도 문제라고 했습니다.
C탤런트를 세운 사람은 여배우 킬리 캣웰스 씨입니다. 킬리 씨는 16살 때 심하게 앓은 후 결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는데요. 이후
대소변을 받기 위해 만든 플라스틱 주머니를 늘 몸에 차고 다녀야 했습니다. 하지만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킬리 씨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제의받게 됐는데요. 하지만, 꿈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습니다.
[녹취: 킬리 캣웰스]
의상을 맞추러 간 자리에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었는데 바로 그다음날 영화 제작사로부터 더는 그 역할을 못 맡기겠다는 이메일이 왔다는 겁니다. 킬리 씨가 차고 있던 그 배변주머니가 화면에 잡혔기 때문이었는데요. 그때 킬리 씨는 만약 자신이 장애 때문에 배역을 잃게 됐다면,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킬리 씨는 자신의 배변 주머니를 가릴 수 있는 수영복을 충분히 입혔어도 될 텐데, 아예 자신을 해고해 버린 것은 영화계에 만연한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 배우를 키우는 배우 소속사를 직접 차리게 된 겁니다.
뇌성마비를 가진 미숙아로 태어난 미라클 필라요 씨는 12살 때 본 영화에서 언어장애 역할을 비장애인이 하는 걸 보고는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 합니다.
[녹취: 미라클 필라요]
시각, 청각 중복 장애인인 헬렌 켈러 역을 장애가 없는 아역 배우가 연기하는 걸 보면서 “아빠, 나도 연기를 하고 싶어요. 휠체어에 타고
있든, 보행 보조기를 쓰든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라고 아버지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필라요 씨는 결국 꿈을 이뤄 케이블 방송 채널 ‘니켈로디언’의 어린이 연속극에서 휠체어를 타고 연기한 첫 번째 여배우가 됐습니다.
C탤런트 소속인 또 다른 여배우 스카일러 대븐포트 씨는 유전질환으로 19살에 시력을 잃었습니다. 비디오 게임 캐릭터를 더빙하는 성우로 활동하는 스카일러 씨는 화면에서 연기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는데요.
[녹취: 스카일러 대븐포트]
최근 장편 영화에서 시각장애인 역할을 연기했다며, 결국엔 해냈다고 했습니다.
장애인 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역은 한정돼 있는 게 사실입니다. 폴 포드 씨는 취약성 골절로 인해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코미디 역을 맡고 싶지만, 이때까지 주어진 역할은 주로 공포 영화 배역이었다고 했습니다.
[녹취: 폴 포드]
자신은 그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또 어떤 상황도 돌파해낼 수 있다고 했는데요. 영화 촬영 장소가 휠체어로 올라가기 힘든 산꼭대기였던 경우에도, 결국에는 올라가서 촬영을 해냈다는 겁니다.
이처럼 C탤런트에 소속된 배우들은 개성도 다양하지만, 각자가 가진 사연도 다들 특별한데요. 자신들을 가장 잘 알고 또 도와줄 수 있는 소속사를 만나 앞으로 더 많은 영화에서 존재감을 뽐낼 수 있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응급실 간호사들의 땀과 눈물을 담은 다큐멘터리”
최근 공개된 한 기록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무려 7년간 미 전역의 간호사들을 인터뷰해 만든 ‘응급상황(In case of Emergency)’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인데요. 특히 이 영화는 응급실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원래 이 영화는 지난 3월에 개봉할 예정이었는데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시작되면서 개봉이 연기됐습니다. 그리고 예상에 없던 이야기도 다큐멘터리에 담을 수 있게 됐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응급실 간호사 캐서린 로빈슨 씨는 의사의 딸로 태어나 자신도 의료계에 몸담게 됐는데요.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던 때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녹취: 캐서린 로빈슨]
마치 폭풍이 강타한 듯 일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감당할 수 없는 환자들이 몰려왔고 너무 아픈 환자들에 압도당해 버렸다는 건데요. 코로나 사태가 특히 힘들었던 이유는 여태껏 한 번도 보지 못한 질병이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영화 ‘응급상황’은 총기 사고부터 마약 중독, 코로나바이러스까지, 다양한 이유로 응급실로 실려 오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간호사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를 위해 미 전역에서 16명의 간호사를 인터뷰했는데요. 캐럴린 존스 감독은 이 가운데 응급의료진을 대변할 수 있는 목소리를 찾았고 그 사람이 바로 뉴저지 패터슨의 병원에서 근무하는 캐서린 로빈슨 간호사였다고 했습니다.
[녹취: 캐서린 로빈슨]
로빈슨 씨는 사람들에게 응급 의료진이 하는 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정말 좋았지만,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건 조금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로빈슨 씨는 특히 코로나 사태와 관련해서는 그 누구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고 심지어 가족들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는데요. 오직 이 영화에서만 코로나 사태에 대해 입을 열었다고 했습니다.
[녹취: 캐럴린 존스]
캐럴린 존스 감독은 로빈슨 씨에게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혼자 떠맡고 있는 큰 책임감으로부터 좀 벗어나라고 말했다는데요. 물론 자신도 꼬치꼬치 질문을 하는 것이 괴로웠지만, 로빈슨 씨가 이야기를 하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 즉 마음이 정화되는 것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로빈슨 씨는 코로나 기간 너무나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자신의 일에 대한 사랑과 헌신은 여전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캐서린 로빈슨]
다른 사람을 돌보는 것이야말로 바로 자신의 일부이자 자신의 정체성이기도 하다는 건데요. 다른 사람을 도우며 기쁨과 보람을 얻고 또 늘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도움이 가장 절실한 사람을 도울 기회가 있음에 늘 감사하다고 했는데요. 다큐멘터리 ‘응급상황’은 이런 응급실 간호사들의 눈물과 땀 그리고 감동을 전하고 있습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