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진자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일반 감염병 상황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감염병을 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유엔은 전염병 감시 확대를 위한 대북 기술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을 주도하는 정은경 한국 질병관리본부장은 지난 2018년 한국 내 한 행사에서 “북한의 감염병 현실이 굉장히 열악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정 본부장은 북한 인구 전체의 32%가 감염병을 앓고 있다며, 주민들의 건강 문제뿐 아니라 남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남북한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5년 전 보고서에서, 유엔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북한 전체 사망자의 25%가 전염성 질환이 원인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세계보건기구 WHO는 최근 갱신한 북한에 대한 ‘국가협력전략’(Country Cooperation Strategy at a glance) 보고서에서 북한 내 감염병 문제의 심각성을 경고했습니다.
WHO는 보고서 첫 줄에 “북한이 (감염) 질환 관련 삼중고에 직면해 있다”며 높은 결핵 비율을 낮추고, 말라리아 발병률을 줄이며, 예방접종을 지속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WHO] “Democratic Republic of Korea (DPRK) faces triple burden of disease. Challenges remain in addressing the high burden of tuberculosis…”
특히 북한에서는 인구 10만 명 당 513명(2017년 기준)이 결핵을 앓고 있다며, 그나마 5살 미만 어린이들은 제대로 진단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습니다.
WHO는 지난해 발표한 ‘2019 세계 결핵 보고서’에서 2018년에 북한에서 주민 2만여 명이 결핵으로 숨졌다며, 이는 주민 10만 명 당 80명에 해당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아울러 이 수치는 인구 10만 명 당 4.8명인 한국의 16배, 세계 평균 20명 보다 4배 높은 것으로, 북한은 올해도 WHO가 지정한 30개 결핵 고위험국에 포함됐습니다.
말라리아 발병 건수의 경우 지난 2000년 30만 건에서 2017년에는 4천 626건으로 크게 줄었지만, 여전히 900만 명이 위험에 처해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B형 간염은 2016년 현재 전체 인구의 0.53%, 그밖에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콜레라, 홍역, 디프테리아, 백날기침, 수열, 매독 등 계절마다 크고 작은 감염 질환이 북한 주민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북한 청진 철도국 위생방역소 의사 출신인 최정훈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연구교수는 19일 VOA에, 북한 내 열악한 의료 상황으로 미뤄볼 때 감염병으로 숨지는 비율은 공개된 수치보다 훨씬 더 높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최정훈 교수] "25%는 사실 적게 줄여서 봐준 것이고, 이것 이상입니다. 아마 35%는 될 겁니다. 진단을 내릴 수 있는 간단한 일반 질병이 아닌 그 외 질병이 많다는 거죠. 항생제와 치료 약물에 내성을 가진 전염병들은 늘고, 진단은 제대로 하지 못하다 보니까 통계에 잡히지 않는 겁니다.”
북한 내 감염성 질환 문제는 2017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총상을 입은 채 망명한 북한군 병사에게서 결핵과 기생충, B형 간염 등 각종 감염병 질환이 확인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당시 한국 국립암센터의 기모란 교수는 한 매체(조선일보)에 “감염성 질환은 북한 주민 사망 원인의 31%로, 5.6%인 한국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많은 북한 주민이 만성적인 영양 부족으로 면역력이 약한데다, 위생환경이 좋지 않아 세균이나 기생충 등 후진국형 질환에 노출되는 경향이 매우 높다고 지적합니다.
미 존스 홉킨스대 보건안보센터와 핵위협방지구상(NTI)은 지난해 발표한 ‘2019 세계 보건안보지수’에서 북한의 보건안보 역량이 매우 열악하다며 세계 195개국 중 193위로 평가했습니다.
특히 항생제 내성과 동물매개 전염병, 차단 방역 등의 예방 역량은 19점으로 세계 평균인 34.8점의 절반 정도였고, 전염병 조기 탐지와 보고는 7점으로 세계 평균 보다 6배 낮았습니다.
존스 홉킨스 의과대학 ‘인도주의보건센터’ 의 코틀랜드 로빈슨 교수는 VOA에, 북한은 감염 질환 등 전반적인 의료체계에 투명성이 부족하고 대응 능력이 열악한 게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로빈슨 교수] “I think their record is quite bad on transparency generally, whether it's on a contagious diseases or anything else…”
WHO도 북한에 대한 ‘국가협력전략’(2014~2019) 보고서에서 이런 우려를 지적하며, 전염성 질환에 대한 감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기술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WHO 현황] “Provide technical support to build capacity for the strengthening of integrated disease surveillance.”
WHO는 또 홍역과 소아마비, B형 간염 등에 대한 높은 예방 접종과 백신 제공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에 대한 기술과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