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풍경] LA 한국문화원, 독립운동가 최재형 다룬 뮤지컬 '페치카' 소개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국문화원이 3월 한 달 동안 독립운동가의 최재형의 삶을 다룬 뮤지컬 '페치카'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은 각본, 작곡, 감독, 주연을 맡은 주세페 김.

매주 금요일 북한 관련 화제성 소식을 전해 드리는 ‘뉴스 풍경’입니다. 지난 1일은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19년, 한반도에서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날이었는데요,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한국문화원이 3월 한 달 동안 독립운동가의 삶을 다룬 뮤지컬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장양희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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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 ‘페치카’공연] “(최재형의 노래)”모두가 갈 수 없다 하네, 모두가 꿈도 꾸지 말라 하네. 내 별을 찾아 떠나네…”

1860년 함경북도 경원에서 천민의 아들로 태어난 최재형은 9살 때 가족과 함께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지만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해 가출했습니다.

이후 길을 잃고 노숙하던 소년 최재형은 러시아 선박 선장 부부에게 입양된 후 세계를 여행하며 견문을 넓혔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에 크게 성공합니다.

무역과 군수물자 사업으로 큰 돈을 번 최재형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는 등 입지를 다지며 부와 명예를 갖게 됐고, 이를 활용해 현지 한인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수 십 개의 학교를 세웠습니다.

러시아 내 한인들은 그를 러시아 극동지방에서 몸을 녹이기 위해 피웠던 난로를 뜻하는 페치카를 빗대 ‘페치카 초이’라고 불렀습니다.

1908년에는 독립운동 조직인 동의회를 조직해 의병부대인 대한의군에 무기와 숙식을 제공했고, 안중근 의사의 1909년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의 배후인물임에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페치카’공연 녹취] …” (목소리)“초이? 초이 꿈은 뭔데? (소년 최재형 목소리) “꼭 성공해서 고향에 돌아가는 거요.”

잊혀진 영웅 최재형.

뮤지컬 ‘페치카’는 이태리 유학파 주세페 김 감독이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의 삶을 좆던 중 잊혀진 러시아 한인 최재형이란 인물을 발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녹취: 주세페 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어머니의 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대기를 검토해 보니까 1차 망명지가 러시아 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된 것이 안중근 의사가 러시아에 가서 동의회에 가입을 해서 그쪽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하얼빈에 가서 의거를 하시고 순국을 하신 거로, 이렇게 알게 되면서 최재형 선생의 존재를 알게 됐고 그 다음에 그 과정에서 러시아 독립운동사를 알게 됐죠. 너무 알려진 바가 없어 제가 좀 부끄럽고 해서. 윤봉길 의사는 알고 김구 선생은 다 알지만, 어떻게 안중근 의사는 알면서 최재형은 모를까.”

중국 하얼빈 뤼순에서 열리는 안중근 의사 추모제에 참여하던 김 감독은 지난 2017년, 하얼빈 의거가 러시아 연해주 독립군의 작전인 것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러시아 독립군의 대부로 알려진 그의 삶을 조명하게 됐습니다.

[녹취: 주세페 김] “돌아가신지 97주기 되던 해였는데요, 추념식을 지켜보면서 러시아권 독립운동가들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에서 역사의 조명이 외면 당한 것 아닌가, 그래서 그 때 다짐을 했죠. 이런 분들은 대중적인 뮤지컬로 작품화 시키면 선양하는데 파급력이 있겠고, 이런 영웅은 혼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함께 한 모든 분들이 영웅이라는 컨셉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세페 김 감독은 러시아에서 돌아온 직후 뮤지컬 ‘페치카’를 기획, 작곡하고 최재형으로 분해 무대에 올랐습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한국문화원이 3월 한 달 동안 독립운동가의 최재형의 삶을 다룬 뮤지컬 '페치카'를 소개하고 있다.

이 뮤지컬은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인 2019년 서울에서 초연됐는데, 당시 공연을 계기로 한국사회는 페치카 초이라는 한인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기도 했습니다.

뮤지컬 페치카가 미주 한인사회에 소개 된 배경에는 김 감독이 유학 시절 느꼈던 디아스포라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해외 한인으로서 모국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고 있는지, 또 디아스포라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던 겁니다.

김 감독은 이를 위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펜데믹 상황에서 미주 한인들이 뮤지컬을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영상화했습니다.

당초 이 뮤지컬은 김 감독이 설립한 예술단체 ‘랑코리아’와 국가보훈처 산하 단체인 ‘K문화독립군’이 공동 제작했고, 한국 정부와 지방 교육청이 후원했습니다.

그리고 서부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LA 한국문화원은 ‘3.1운동 기념 창작뮤지컬 페치카’ 라는 제목으로 1일부터 한 달 동안 한인사회에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LA 한국문화원 박위진 원장입니다.

[녹취: 박위진]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해 한국의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한국의 독립 의사를 전 세계에 알린 날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한국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죠. 일제 억압을 피해 중국, 러시아 심지어 일본에까지 나와 살던 우리 민족의 지도자들이 헌신적 독립운동을 해왔던 것이 씨앗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한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나라거든요. 3.1절을 맞이하여 의미 있는 작품을 소개해주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페치카라는 뮤지컬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선에서 모든 특권을 누렸던 양반이나 왕족도 아닌 천민 출신의 최재형의 감동적 이야기입니다.”

[공연 녹취] “(해설자) 수학, 철학, 영어 등 수많은 지식을 빨아들이며 10대에 이미 두 번의 세계 일주를 경험한 유능한 인텔리가 됐습니다.…”

한 시간 반 분량의 뮤지컬 페치카는 구한말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삶이 해설자의 안내와 함께 전개됩니다.

중요한 사건들을 설명하는 이 해설자는 노인이 된 최재형의 딸 ‘올가’입니다.

표트르 세묘노비치 초이라는 러시아 이름의 한인 최재형.

변화가 많았던 소년 시절, 그리고 사업가로 성공하며 한인 최초 러시아 관료, 군수급에 해당하는 ‘도헌’에 오르는 등 부족함 없는 삶을 살았지만 나라를 빼앗긴 조선인으로서 가슴에 억울함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런 모습은 일본 장교 앞에서 총을 꺼내들고 대치하고, 절름발이 친일파 한인과의 갈등 속에서 나타납니다.

[공연 녹취] “(일본군) 감히 대 일본 제국에! (최재형) 기토라 했나? 억울하면 신고해, 일본놈이랑 러시아 관료랑 누가 이기나 보지!

노래와 춤, 대화와 자막이 어우러지며 구한말의 굵직한 사건들이 흘러가는데, 을미사변, 단발령, 영-일 동맹, 한일의정서, 가쓰라 테프트 밀약, 헤이그 밀사, 고종 퇴위, 군대 해산 등의 사건들이 최재형의 삶과 함께 흘러 역동감을 안겨줍니다.

독립운동가로서의 면모와 함께 당시 그를 괴롭혔던 내면의 갈등도 보여집니다.

[공연 녹취] “(해설) 그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일본의 압력도 러시아의 정략적 견제도 아닌, 노비 출신이었던 그가 독립운동가에게서 받았던 신분 차별이었습니다…”

당시 활약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등장은 극의 실제감을 더합니다.

최재형과 안중근 의사와의 만남, 동의회 조직과 단지동맹 장면, 특히 안중근 의사가 거사 후 옥중에서 어머니가 보낸 수의를 입고 눈물 흘리며 큰 절 하는 모습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노래와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안겼습니다.

[공연 녹취] “(조마리아: 하늘님 거기 계셔. 내 아들 거두고…푸른 하늘 새 되어 다시 만나자..”

1919년 3월 1일 유관순 열사의 만세운동 장면에서는 한반도와 해외 각지의 인물들이 대거 등장해 이 극에 절정을 이뤘습니다.

함경북도 출신 여성운동가 동풍신 열사, 기생 김향화, 홍범도, 일본의 가네코 후미고, 도산 안창호 등 13명의 독립운동가들의 실물 사진도 무대를 꽉 채웠습니다.

그러나 1920년 59세 나이로 일본군에게 총살 당하고 시신조차 찾을 수 없었던 최재형과 그의 가족사, 그리고 현재 이념 전쟁으로 둘로 갈라진 한반도 상황 등 군무가 흐르는 화면 위에 메시지를 남기며 극은 끝납니다.

주세페 김 감독은 “나라 잃은 슬픔과 비통함이 러시아의 맹추위 보다 더 춥다”는 말을 남긴 최재형이 상해임시정부 재무총장을 맡아줄 것을 제안 받았지만 러시아 독립운동가들과 한인들이 걱정돼 고사했다면서, 받아들였다면 참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주세페 김 감독은 최재형이 자신의 모든 것을 현지 한인들을 돌보며 나라를 위해 던진 것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디아스포라들이 이 극을 보면서 각자의 역할을 고민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무엇보다 김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독립운동의 정신은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주세페 김]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생명 자체입니다. 이념이 다르고 종교가 다르더라도 생명이 존중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고요. 당시에 있었던 모든 종교들이 종교인들이 하나 되어 가지고 생명이 소중함을 알았기 때문에 이 분들이 다 3.1운동. 일어나서 만세를 불렀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페치카는 LA 한국문화원 유튜브 채널(www.youtube.com/watch?v=maC8ko75UlE)에 이 달 말까지 공개되며, ‘자랑스런 역사 뮤지컬로 배우기’라는 취지 아래 31일까지 감상문 공모전도 함께 열리고 있습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