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새 대북 외교 기조, 오바마 행정부 '전략적 인내'와는 다른 상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이 지난해 2월 하노이에서 미-북 정상회담 결과에 관한 기자회견을 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미 국무부가 최근 밝힌 북한에 대한 `느리고, 인내하며, 꾸준한 외교 기조'가 미-북 협상에 미칠 영향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다만, 전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와는 다르다는 지적입니다. 서울에서 한상미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트럼프 판 ‘전략적 인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 핵 문제가 개발 단계에서 멈출 것이라는 판단에 기초해 ‘전략적 인내’ 정책이 가능했지만 현재 북한 핵 개발이 인계점을 넘긴 상황에서 이제는 방치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는 겁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오바마 행정부에서는 위험성이 그리 높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일정 정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고,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라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핵실험이나 ICBM 발사 등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다고 하면 지속적으로 협상을 하겠다는 판단이지만, 선을 넘는다면 완전히 다른 강경책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은 거죠. 완전히 맥락이 다르죠.”

조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이 핵실험과 ICBM 발사 등 수직적 핵 능력 고도화가 아닌, ICBM 엔진 성능 시험이나 핵 물질의 양적 증가 등 수평적 핵 능력 고도화를 택할 경우 미국의 대응이 마땅치 않다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한범 선임연구위원] “그렇기 때문에 김 위원장은 레드라인은 넘지 않지만 산음동 미사일 기지 이상징후나 동창리에서의 엔진실험, 기타 핵 물질 영변 이상징후 등 레드라인을 넘나드는, 확실히 넘지는 않지만 이런 행보 통해 트럼프 대통령을 긴장하게 만드는 전략을 쓸 수밖에 없어요. 적어도 당분간은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상황에서 트럼프에 압박을 가하는 행동을 단기적으로 할 가능성이 있죠.”

조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현 상황을 장기 교착으로 끌고 간다면 김정은 위원장이 극단적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박원곤 교수는 현재 강력한 제재가 부과됐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는 차이가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천천히 가기는 하지만 ‘제재’로 동맹국이나 국제사회와 한 목소리를 내면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기본적인 인식과 방침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겁니다.

박 교수는 제재가 북한에게 뼈 아픈 것은 사실이라며, 북한도 전원회의 보도문 등을 통해 이를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아무리 가혹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절대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만큼 미국이 원하는 형식의 비핵화 협상에는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녹취: 박원곤 교수] “지난번 김계관의 언급을 보면 미국이 셈법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이야기를 했어요. 그냥 버티고 가겠다고 얘기한 거죠. 지금 스틸웰 차관보나 미국의 입장이 계속 확인이 되는데 북한이 여기에 응할 생각이 전혀 없다, 미국을 더 압박하고 그 압박하는 방법으로 과연 금지선에 가까운 도발을 할지 안 할지가 관건이죠. 북한이 가만히 있지는 않죠. 분명 압박할 만한 군사적 조치를 행할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거죠.”

서울대 국제대학원 신성호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세 번이나 만났다는 것 자체로도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와는 근본적으로 결이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더불어 현재 미-북 간 소강 국면 속에서 양측이 기싸움을 하고 있고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움직여야 비핵화 협상이 진전될 수 있다며, 지금의 탄핵 국면이 잦아든다면 상반기 중 해결책이 제시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신성호 교수]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북한이 답답하고 화는 나는데 그렇다고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고 그래도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까지는 협상 여지를 살려놓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한마디로 떼를 쓰고 있는 거죠. 지난번 하노이 회담에서 자기들이 황당하게 당했다고 생각하니까”

아산정책연구원 제임스 김 미국연구센터장 역시 북한이 탄핵과 대선 등 미국 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뒤 다음 행보를 결정할 것이라고 관측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녹취: 제임스 김 센터장] “지금 어떤 선택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좀 기다려 보자, 한 두 달 더 기다려도 크게 손해가 될 게 없으니까. 그렇다면 미국의 내부 정치 상황 때문에 지금 장기적으로 어떤 관계를 유지할지 이 계산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김 센터장은 또 미국과 함께 중국의 압박이 북한의 행보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도 중요한 이슈라고 강조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과 중국은 북한에 ‘도발하면 후회할 것’이라는 압박을 계속하고 있고, 북한도 이에 따른 다음 행보를 계산하고 있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김 센터장은 이런 상황 속에서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한상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