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 간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을 처음 제안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라고, 제프리 펠트먼 전 유엔 사무차장이 밝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또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뒤 김정은 위원장에게 ‘에어포스 원’으로 평양에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제프리 펠트먼 전 유엔 정무담당 사무차장은 지난 2017년 말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의 메세지를 전했다고 밝혔습니다.
영국 `BBC' 방송은 21일 ‘트럼프, 세계와 맞서다’라는 제목의 3부작 다큐멘터리 마지막 편을 예고하며 펠트먼 전 사무차장의 증언을 소개했습니다.
펠트먼 전 사무차장은 2017년 12월 5일에서 9일까지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해 리용호 당시 외무상과 박명국 부상을 만났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밀 메시지”
그는 방북 직후인 12월 12일 유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나의 공직 생활 중 이번이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펠트먼 전 사무차장] “Time will tell what was the impact of our discussions. But I think we’ve left the door ajar and I fervently hope that the door to a negotiated solution will now be opened wide.”
펠트먼 전 사무차장은 “우리의 논의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 지는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문을 열어 두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이제 협상을 통한 해법을 향한 문이 크게 열릴 것을 열렬히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조롱하는 등으로 미-북 간 긴장이 한껏 고조된 때였습니다.
`BBC'는 펠트먼 전 사무차장을 북한이 초청했을 때 국무부는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몇 주 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백악관을 방문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엇이 가능할지, 얼마나 위험한지, 군사적 대응의 가능성은 얼마나 높은지 등을 논의했다”고 펠트먼 전 사무차장은 밝혔습니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펠트먼이 평양으로 와 정책 대화를 이끌라는 묘한 초청을 받았다”고 말했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에 구테흐스 사무총장 쪽으로 몸을 기울여 “펠트먼은 평양으로 가서 내가 김정은과 마주 앉겠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고 답했다고 `BBC'는 보도했습니다.
펠트먼 전 사무차장이 평양에서 리용호 외무상을 단독으로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하자 리 외무상은 약간의 침묵 뒤 “당신을 믿지 않는다. 왜 믿어야 하나?”고 물었습니다.
이에 펠트먼 전 사무차장은 “나를 믿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 유엔이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맡았고 내가 그 전달자”라고 대답했습니다.
펠트먼 전 사무차장은 방북 직후 한국 기자단에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할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은 이번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BBC'는 김 위원장이 수 개월 뒤 한국에 미국 대통령을 만날 준비가 됐다고 밝혔고, 한국의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백악관으로 급하게 가 소식을 전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현장에 있었던 H.R.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BBC'에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만남에 대해 ‘좋다’고 하자 “정 실장이 의자에서 떨어질 만큼 놀랐다”며, 미국을 설득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맥매스터 전 보좌관은 전했습니다.
펠트먼 전 사무차장이 북한을 방문한 지 반 년만인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1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트럼프, 김정은에게 비행기로 데려다 준다고 제안”
한편 `BBC' 다큐멘터리는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직후 트럼프 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에어포스 원’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다는 증언을 전했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시 일정을 단축해 회담장을 떠났고, “때로는 (회담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전 대통령] “Sometimes you have to walk and this was just one of those times.”
매슈 포틴저 전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BBC'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기차를 타고 여러 날에 걸쳐 중국을 지나 하노이까지 온 것을 알고 있었고, ‘원하면 2시간 만에 집에 데려다 줄 수 있다’고 했는데 김 위원장이 거절했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존 볼튼 전 국가안보보좌관도 회고록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미-북 2차 정상회담 둘째 날인 2월 28일 상황을 전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하노이까지 먼 길을 왔는데도 회담이 결렬돼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이 생각하는 ‘비핵화’의 정의를 정리한 자료와 비핵화를 할 경우 보장되는 북한의 ‘밝은 미래’를 담은 자료를 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노이에서 계획한 만찬을 취소하고 북한까지 비행기로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김 위원장은 웃으면서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볼튼 전 보좌관은 밝혔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