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되는 ‘종전선언 무용론’...“북한도 원치 않는 상징적 제스처”

지난달 16일 한국 파주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 남측 초소와 멀리 보이는 북측 초소.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한국에서 다시 부상하고 있는 ‘종전선언’ 카드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평화 구축 과정에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는 비현실인 시도이자 북한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상징적 제스처라고 일축했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종전선언이 휴전협정을 종전협정으로 대체하는 ‘첫걸음’이나 ‘중간단계’로서의 효력이나 지위를 갖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전쟁 상태에 영향을 주는 것은 ‘선언’이 아니라 ‘복잡한 협상을 통한 합의’이며 이 과정에서 충족돼야 할 요건과 다양한 변수들이 있다는 인식입니다.

워싱턴에서 이미 오랫동안 공유돼온 종전선언에 대한 회의적 시각은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종전’을 언급하고 여당 인사를 중심으로 ‘종전 선언이 다시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재확인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전쟁을 ‘정지시킨’ 휴전협정의 법적 의미와 구속력을 고려해야 하며, 종전선언이 선포된다 해도 여기에 담길 미래지향적 약속에 대해 당사국들의 동의를 얻기 어렵다는 데 무게가 실렸습니다.

스테판 해거드 캘리포니아 주립 샌디에이고대학 교수는 “전쟁의 종식을 선언하는 폭넓고 열망을 담은 성명에 반대하지는 않는다”면서도 “휴전협정은 여러 약속과 장치를 포함하고 있는 복잡한 법적 문서”라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스테판 해거드 교수] “I am not opposed to a broad, aspirational statement declaring an end to the war. But the Armistice is a complex legal document that contains a variety of commitments and even institutions (including the DMZ itself).”

해거드 교수는 종전선언을 하려면 “그와 같은 성명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합당한 우려가 있다”며 “전쟁을 실제로 종식하기 위해선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협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스테판 해거드 교수] “There is legitimate concern that the legal status of such a statement be made clear; actually ending the war would require the negotiation of a peace regime on the peninsula. A statement such as “The concerned parties commit to work toward the negotiation of an end to the Korean War and replacing the Armistice with a peace regime/treaty.”

특히 “‘당사국들은 한국전 종전과, 휴전협정을 평화체제/조약으로 대체하는 협상을 위해 일하는 데 전념한다’는 식의 성명이 나와야 할 것”이라며, 이를 비현실적인 가정으로 규정했습니다. “미국의 어떤 대통령도 북한 핵 문제에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그와 같은 평화체제를 협상하지 않을 것이며, 이는 한국 대통령도 마찬가지”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스테판 해거드 교수] “In that regard, I think it is highly unlikely that any American president—or actually a Korean president—would negotiate such a peace regime in the absence of some progress on the nuclear front.”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필요한 것이 말뿐이라면 언제나 평화로울 것”이라며, 역시 법적인 문제를 종전선언의 가장 명백한 한계로 꼽았습니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If words were all it took for war to end, then there would always be peace. First, the legal perspective. The ROK is not a signatory to the Armistice Agreement, so I would imagine that technically it has no authority, certainly not unilaterally, to bring about an end to the Korean War. I recall that the other signatories were the DPRK, PRC and the US. What are their views on this step?”

“한국은 원하는 어떤 것이든 ‘선언’할 수 있겠지만, 휴전협정 서명의 주체가 아니어서 엄밀히 말해 북한, 중국, 미국의 견해와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한국전을 종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설명입니다.

설령 법적 걸림돌이 해소된다 해도 ‘종전’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로 인식되는 핵 문제가 남아있는 한 종전선언은 ‘허상’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여전합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카운슬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보다 넓은 포괄적인 비핵화 대화의 일부분으로 종전선언과 같은 단계를 밟을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라며 “종전선언 자체는 아무 의미 없는 종이 조각에 불과하다”고 일축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연구원] “The US was prepared to take such a step as part of the larger comprehensive denuclearization talks. By itself, it is just a meaningless sheet of paper. It is an empty gesture divorced from the larger process, in which a peace treaty is a goal as part of a denuclearization agreement.”

“종전선언은 더 큰 과정으로부터 단절된 공허한 제스처일 뿐이며, 더 큰 과정이란 평화조약 목표가 비핵화 합의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매닝 연구원은 “평화조약은 종잇조각이 아니라 평화 상태의 정착을 반영하는 것을 최종 단계로 삼는 절차”라고 규정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연구원] “The point is a peace treaty is a process whose end state should reflect a state of peace established, not simply pieces of paper.”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포드대학 연구원도 “종전선언은 싱가포르 정상회담 의제로 한때 고려된 적이 있었던 제안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며 “상징성은 이해하지만 그 자체로는 별 의미가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포드대학 연구원] “This idea is not new and was on the agenda for Singapore at one point. I understand the symbolism but it is not very meaningful by itself.”

북한의 협상 의제와 전략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전문가들은 종전선언뿐 아니라 평화체제에 대한 북한의 시각에도 의문을 제기합니다. 남북 화해와 체제 보장 신호로서 거론됐던 이런 ‘정치적 당근’에 북한이 실제로 매력을 느낀 적은 없다는 분석입니다.

해거드 교수는 “가장 큰 의문은 북한이 과연 그런 협상에 관심이 있는지 여부”라며 “평화체제 제안 역사를 돌아볼 때, 북한은 그런 제안을 대체로 전략상의 목적으로 이용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스테판 해거드 교수] “But the biggest question is whether the North Koreans are interested in such negotiations...I look back at the history of peace regime proposals, and the history is discouraging; it appears that the North Koreans use such proposals largely for strategic purposes.”

지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매닝 연구원은 북한이 종전선언에 관해 관심을 보임에 따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위한 미-북 예비회담과 고위급 실무회담에서 의제로 고려됐지만, 이후 북한은 이 문제에 관심을 덜 두고 제재 완화에 집중했다”는 예를 들었습니다.

[로버트 매닝 연구원] “During preparatory talks for the Trump-Kim summits and in the one senior working level group meeting, that was one item considered, after North Korea expressed an interest in it. They subsequently showed less interest in it, and focused on sanctions relief.”

그러면서 “종전선언은 기껏해야 의향서에 불과하며 평화조약에 도달하는 과정의 첫 단계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원] “An end of war declaration is at best, a statement of intent, a first step in the process of reaching a peace treaty.”

한편 리스 전 실장은 “최근 몇 년 동안 북한의 말과 행동을 고려할 때,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 노력은 순전한 유화책처럼 보인다”며 “한국은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입에 발린 말을 하고 후한 경제적 혜택을 제공해왔다”고 비판했습니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Second, given everything that the DPRK has said and done in the past few years, this effort by President Moon strikes me as rank appeasement. Is there any provocation that the DPRK can undertake that will not be met by honeyed words and offers of generous financial benefits from the South?”

리스 전 실장은 “한반도 분단은 국가적 비극이지만, 분단의 종식은 북한 정권의 행동이 변하고 정권 자체가 교체돼야만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The division of the Korean Peninsula is a national tragedy for the Korean people, but its end will not be brought about until there is a change of regime behavior or a change of regime in the DPRK. That day will come, I firmly believe, and not a moment too soon given the evil that Pyongyang perpetuates daily upon its own people. But that day will not come by the ROK prostrating itself before the DPRK.”

이어 “북한 정권이 자국민에게 지속해서 저지르는 악행을 고려할 때 그런 순간이 빨리 오지는 않겠지만, 한국이 북한 앞에 고개 숙여 엎드린다고 그런 날이 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