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베트남식 개혁·개방설, 하노이 회담 끝으로 사그라져

지난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베트남 하노이 JW 메리엇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은 비핵화뿐 아니라 북한의 베트남식 개혁·개방 채택 여부와 관련해서도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회담 결렬 이후 자립경제를 강조하면서 오히려 통제경제를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하노이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던진 첫 메시지는 북한의 베트남식 경제발전이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도착 당일인 2월 27일 ‘트위터’에, “베트남은 지구상에서 번영하는, 흔하지 않은 나라로 북한이 비핵화하면 베트남처럼 되고, 그것도 매우 빠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 ““Vietnam is thriving like few places on earth. North Korea would be the same, and very quickly, if it would denuclearize.”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잠재력은 굉장하다”며, 2차 정상회담이 “내 친구 김정은에게 역사상 거의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위대한 기회”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을 만나서도 거듭 북한의 베트남식 경제발전을 언급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If you look at what you've done in a short time, he can do it in a very, very rapid time - make North Korea into a great economic power.”

베트남이 단 기간에 이룬 성과를 본다면, 김정은 위원장도 아주 빠른 시간에 북한을 경제강국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뿐 아니라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 등 수행 관리들도 북한이 베트남이 걸어온 길을 모방해 기적을 만들 수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 정권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베트남식 개혁 모델을 따르면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지원을 받으며 경제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북한도 이에 잠시 호응하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수행단에 오수용 경제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등 경제통들이 포함됐고, 이들은 회담 전인 27일 베트남의 대표적 관광지인 하롱베이, 자동차 산업단지인 하이퐁 등 개혁·개방의 최전선을 둘러봐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27일 베트남의 개혁·개방 모델인 ‘쇄신’이란 의미의 도이머이와 경제발전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정상회담 장소를 제공한 베트남 정부도 자신들의 경험을 북한과 나누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레 호아 쭝 외교부 차관은 북한의 베트남식 모델 채택 가능성을 묻는 VOA의 질문에, 북한뿐 아니라 전 세계와 경제발전의 경험을 나누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녹취: 쭝 차관] “We want to exchange our experience……”

과거의 실패에 대해 수뇌부가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당이 실수와 능력 부족을 인민에게 공개 사과한 뒤 천명했던 도이머이는 베트남의 옛 빈곤과 오늘의 번영을 가르는 분수령이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1986년, 국가경제가 바닥을 친 절박한 상황에서 이념과 명분보다 실리를 택한 베트남 지도부의 도이머이가 규모가 방대했던 중국식 개혁보다 북한에 더 적합하다고 말했습니다.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립 샌디에이고대학의 스테판 해거드 교수입니다.

[녹취: 헤거드 교수] “I think it is quite possible for North Korea to follow an economic model like Vietnam’s; indeed, it is more plausible than following the China model…”

해거드 교수는 북한이 베트남처럼 역동적인 지역에서 전략적 위치를 점하고 있고, 공산 정권이 권력을 유지한 채 개혁·개방을 채택해 발전한 것도 북한 당국에 매력적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베트남식 개혁·개방 채택에 대한 기대는 하노이 회담 결렬과 함께 사라졌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정상회담이 결렬로 끝난 뒤 한 달여가 지난 지난해 4월 시정연설에서 ‘자립경제’를 강조하며 통제경제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녹취: 김정은 위원장] “나라의 경제사업을 국가의 통일적인 장악과 통제, 전략적인 작전과 지휘 밑에 진행해 나가야 합니다.”

김 위원장의 경제정책 핵심이었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도 하노이 회담을 기점으로 사그라졌고, 올해 신년사를 대체한 김 위원장의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에서도 언급이 전혀 없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하노이 정상회담에서의 제재 해제를 발판 삼아 경제발전 5개년 전략에 박차를 가하려던 계획을 회담 결렬로 수정한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