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 1년] 1. 장기 교착의 시발점: 빅딜 vs 단계적 접근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정상회담이 열렸다.

미국과 북한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정상회담을 연 지 이번 주로 1년을 맞습니다. 이 회담은 북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진전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아무런 합의 없이 결렬로 끝나면서, 전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후 미-북 양측은 지난 1년 간 협상은 커녕 만남 조차 거의 없었고, 북한은 사실상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 VOA는 하노이 정상회담 1주년을 맞아 미-북 협상의 현 주소와 향후 진전 방안을 살펴보는 다섯 차례 기획보도를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첫 순서로 하노이 회담이 어떻게 미-북 간 장기 교착의 시발점이 됐는지 전해 드립니다. 이연철 기자입니다.

1년 전인 2019년 2월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싱가포르에서의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 이후 8개월 만이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I thought the first summit was a great success and I think this one, hopefully, will be equal or greater than the first.”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첫 번째 정상회담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며 “이번 회담도 같거나 더 성공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김정은 위원장은 좋은 결과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화답했습니다.

[녹취: 김정은 위원장] “모든 사람이 반기는 훌륭한 결과가 만들어질 거라고 확신하고, 또 그렇게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이튿날인 28일 분위기는 돌변했습니다. 두 정상은 오전에 단독회담과 확대회담을 마친 뒤, 당초 예정됐던 업무오찬과 ‘하노이 선언’ 공동 서명식을 취소하고 숙소로 돌아갔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정보다 2시간 앞당겨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과의 합의 결렬을 선언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Basically they wanted the sanctions lifted in their entirely…”

기본적으로 북한은 완전한 제재 해제를 원했고,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는 겁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는 모든 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는 비단 영변 핵 시설 폐기만이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이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을 마친 후 기자회견을 했다.

반면 북한의 리용호 외무상은 숙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이 요구한 것은 완전한 제재 해제가 아니라 부분적 제재 해제였다고 반박했습니다.

[녹취: 리용호 외무상] “우리가 요구한 것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 결의 총 11건 가운데서 2016년부터 17년까지 채택된 5건, 그 중에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입니다.”

리 외무상은 유엔 제재 일부를 해제하면 영변 핵 시설을 미국 전문가들의 입회 아래 완전히 폐기한다는 게 북한의 제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하노이 정상회담은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제재 해제는 없다는 미국의 입장과, 제재 완화와 단계적 비핵화를 요구하는 북한의 입장이 극명하게 충돌한 회담이었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의 예상과는 달리 회담은 결렬로 끝났습니다.

수전 손튼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대행은 미-북 양측의 견해 차가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손튼 전 차관보 대행]

특히 북한의 기대가 컸던 데 반해 미국이 제시한 상응 조치는 북한이 보기에 너무 적었던 것이 결렬의 원인으로 보인다는 지적입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밝히는 긴급 기자회견을 했다.

하노이에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평양으로 돌아간 김정은 위원장은 4월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비핵화 협상 시한을 연말로 못박았습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어쨌든 올해 말까지는 인내심을 갖고 미국의 용단을 기다려볼 것이지만 지난번처럼 좋은 기회를 다시 얻기는 분명 힘들 것입니다.”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 후 두 달이 지난 5월 4일부터 대구경 장거리 방사포와 단거리 미사일을 잇따라 발사하는 등 도발적 행태를 재개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았고, 다른 나라들도 많이 하는 작은 미사일 시험 외에 다른 시험을 하지 않았다며 문제 삼지 않을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북한과 계속 대화를 이어갈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미-북 간 대화의 물꼬를 다시 튼 것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개인적 친분관계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방문을 하루 앞둔 6월29일 트위터를 통해 김 위원장에게 비무장지대(DMZ) 회동을 전격 제안했습니다.

북한도 매우 흥미로운 제안이라며 즉각 호응했고, 이튿날인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현직 대통령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북한 땅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녹취: 김정은 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이 분계선을 넘어서 우리 땅을 밟았는데, 사상 처음으로 우리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이 되셨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회동 직후 기자들에게, 2~3주 안에 양측 협상 팀이 만나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논의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And what's going to happen is over the next two or three weeks the teams are going to start working to see whether or not they can do something.”

하지만 2~3주라던 미-북 실무 협상이 실제로 열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북한은 미-한 연합군사훈련을 다시 문제 삼았고,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신형 방사포를 계속 발사하며 무력시위를 이어갔습니다.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8월14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조만간 실무 협상이 시작되길 바란다며, 핵심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포기라는 전략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볼튼 보좌관] “So what we're looking for, what President Trump called the big deal, when he met with Kim Jong on in Hanoi, is to make that strategic decision to give up nuclear weapons… ”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 촉구했던 `빅 딜’은 핵 포기에 대한 전략적 결정을 내리고 이를 이행하는 것이며, 그 이후에 다른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미-북 실무 협상은 스웨덴의 중재로 판문점 회동 이후 석 달 만에야 겨우 열렸습니다. 스톡홀름 교외에서 스티브 비건 대북특별대표와 북한 측 김명길 외무성 순회대사가 마주 앉았지만 결과는 ‘결렬’이었습니다.

북한의 김명길 대사는 협상 결렬 직후 “미국이 빈손으로 나왔다”고 비난했습니다.

[녹취: 김명길 순회대사] “미국은 그동안 유연한 접근과 새로운 방법, 창발적인 해결책을 시사하며 기대감을 한껏 부풀게 하였으나 아무 것도 들고 나오지 않았으며, 우리를 크게 실망시키고 협상 의욕을 떨어뜨렸습니다.”

북한은 2주 뒤 다시 만나자는 스웨덴의 중재안도 거부했습니다. 이후 자신들이 못 박은 비핵화 협상 시한인 연말이 다가오자 대미 압박을 강화했습니다.

리태성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부상은 12월 3일 발표한 담화에서,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며,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선정하는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에 달렸다”고 위협했습니다.

동시에 무력시위도 계속 이어갔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은 대화를 지속하겠다는 기조를 유지하며, 북한에 ‘도발을 중단하고 협상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11월 13일 한국 방문 직전 “외교가 무엇인가를 필요로 한다면 군사연습 태세를 다소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또 일부 유럽연합(EU) 국가들의 ‘북한 인권’ 관련 안보리 회의 소집을 거부하고, 대신 북한의 핵과 미사일 관련 회의를 열었습니다.

미국의 켈리 크래프트 유엔대사는 북한의 행동에 `병행적 동시적’으로 구체적인 행동을 취할 준비가 돼 있으며, 협상에서 유연한 대처를 할 준비 역시 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크래프트 대사] “We remain ready to take actions in parallel, and to simultaneously take concrete steps toward this agreement, we are prepared to be flexible in how we approach this manner.”

그러면서 북한이 이에 상응해 대담한 결정을 하고 협상에 복귀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안보리 회의를 비난하면서 미국의 대화 제의도 일축했습니다. 특히 한국을 방문한 스티븐 비건 대북특별대표의 공개적인 대화 제의에도 무반응으로 일관했습니다.

지난 연말 북한이 위협했던 크리스마스 도발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2020년 새해 들어서도 미-북 간 장기 교착 상태가 해소될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새해 첫 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대신해 나흘 동안 진행됐던 노동당 전원회의 보도문을 발표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이제 세상은 곧 멀지 않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보유하게 될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습니다.”

북한은 또 “미국이 대화와 협상을 진행하는 척 하면서 제재를 계속 유지해 북한의 힘을 약화시키려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후 전략무기를 공개하거나 특별한 도발에 나서지 않았고, 미국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나 비난 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중국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사실상 국경 통제에 나서는 등 총력전을 벌이면서 이 문제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세 번째인 올해 국정연설에서 처음으로 북한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또 북한과의 협상을 맡은 실무자들이 최근 다른 자리로 옮기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문제에 관심을 잃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북한과 대화할 의지를 갖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1일 공개 행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에서 한) 약속을 존중하길 원하고, 우리는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녹취: 오브라이언 보좌관] ”We'd like to see negotiations continue. If the negotiations that lead to North Korea honoring the commitment…”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또 “현재 예정된 정상회담은 없지만, 미국 국민들을 위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렇게 할 (정상회담에 나설) 의향이 늘 있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대화 제의에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미-북 간 교착 상태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녹취: 세이모어 전 조정관] ”The ball is in North Korea’s court. Trump is not going to do anything at all. The US position is, we are happy to talk to North Korea whenever they want to, and in the meantime we will continue to apply sanctions.”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조정관은 현 단계에 만족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새로운 제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공은 북한 측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

하노이 미-북 2차 정상회담 1년을 맞아 VOA가 준비한 기획보도, 내일(25일)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톱 다운’ 식 정상회담에 대해 전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