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강력한 억지력을 유지하고 한국과 대북 접근법을 일치시켜야만 북한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고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밝혔습니다. 중국, 러시아는 북한과 입장을 맞추고 있고 한국은 미국 보다 중국 쪽에 다가가고 있다며, 동맹국과의 이견 조율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러셀 전 차관보는 오바마 행정부 2기 때부터 3년여 동안 업무를 맡았고 이후 뉴욕의 아시아 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해 왔습니다. 러셀 전 차관보를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위기 속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한 분위기인데요. 여전히 협상을 재개할 필요가 있다고 보십니까?
러셀 전 차관보) 시작도 하지 못한 것을 재개할 수는 없습니다. 미-북 간 실질적 협상은 실패로 끝난 2012년 2.29 합의 이후 진행된 적이 없습니다. 북한은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와도 협상하지 않았고, 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여 방식에 원인이 있습니다. 북한은 3월 미사일 발사에 나섰는데,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은 채 관련 역량을 과시하고 진전시키려는 시도임이 분명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미국 선거를 의식한 행보입니다. 북한이 미 대선을 앞두고 도발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니까요.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거나 새 행정부가 들어설 경우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파악하기 위해 대선 결과를 기다릴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외교적, 정치적 채널을 통해 핵문제에 대해 또 한 번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실현되기 어렵습니다.
기자) 그래도 협상을 대비해 북한에 분명한 요구 조건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북한이 현 시점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하고요.
러셀 전 차관보) 북한에 무엇을 하라고 “촉구”한다고 해서 목표에 다가가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심각한 문제는 6자회담 당사자인 미국,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분열돼 있는 한 북한이 계략을 꾸밀 공간을 확보한다는 점입니다. 각국 사이를 이간질해 압박을 피할 수단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이 5자 간 이견을 악용한다면 우리는 어떤 목적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는 한국 문재인 정부와 북한 문제에 대한 접근법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미-한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에 합의해 동맹을 다시 굳건히 다지고 대북 접근법에 대한 공동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기자) 5자 간 접근법이 얼마나 벌어졌다고 평가하시는지요?
러셀 전 차관보) 미국과 한국은 중국과의 조율 수위를 최대로 끌어올려 공통 분모를 발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현재 (6자회담 당사국들은) 북한에 대해 5:1의 구도로 접근하는 대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 입장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한국도 어느 정도는 미국보다 중국의 입장에 더 가깝습니다. 이는 큰 문제입니다. 따라서 미국이 북한과 독자적 합의를 시도한다면 우리에게 이로운 결과를 얻지 못할 겁니다.
기자) 한국과의 이견 조율 문제를 언급하셨는데 미-한 관계에 이전과 다른 긴장감이 조성되고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러셀 전 차관보) 미국은 지금 많은 동맹국과 긴장 관계에 있습니다. 미 대통령은 동맹에 대해 무임 승차자라고 거듭 비판하고 공공연히 병력을 철수하겠다고 말하면서 엄청난 방위비 인상을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유럽이든 아시아든, 우리는 호의로서 동맹국에 군대를 파견하는 게 아닙니다. 현재 미-한 관계에는 엄청난 긴장감이 흐르고 있습니다. 커다란 분노와 반감도 조성되고 있고요. 물론 두 나라가 공유해온 가치와 오랜 협력의 역사가 양국 관계를 뒷받침하고 있는 만큼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북한과 관련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데 필요한 전략적 공조에 분명히 장애가 된다고 하겠습니다.
기자) 하지만 미국 정부 내에도 한국이 경제적, 외교적으로 북한에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는 불만이 있지 않습니까? 러셀 차관보께서도 과거 개성공단 재개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히셨고요.
러셀 전 차관보) 예, 문재인 대통령의 행동과 정책에 대해 미 행정부 내에 회의감과 불만이 많은 게 사실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북한에 대한 다소 낭만적인 접근법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런 접근법은 어떤 결과도 가져오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저는 북한의 결정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강력한 억지력이라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미-한 간 긴밀한 공조와 연대입니다. 미국이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는) 햇볕정책 2.0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안하는 건 아니지만, 두 나라 정부가 접근법의 차이를 극복하고 상호 관심사를 존중하면서 이에 대한 전략을 수립할 공통 기반을 찾아야 하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선 이 방법이 유일합니다.
기자) 현재 국무부 군축·국제안보담당 차관과 군축·검증·이행 담당 차관보가 공석입니다. 주요 안보라인의 부재가 향후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나 이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러셀 전 차관보) 북 핵 프로그램을 후퇴시켜 비핵화를 이행시킬 수 있는 상황이라면 좋겠지만 현재 그런 단계는 아닙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직책들이 채워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더 큰 문제를 보여줍니다. 그런 자리들이 공석으로 계속 남아있고 행정부 내 잦은 인사 이동과 숱한 대행 체제가 계속된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라는 겁니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정부 정책을 주도하는 전문가들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니까요. 새 행정부가 전문가들로부터 과거 경험에 대한 역사와 교훈을 얻지 못한 채 북한과의 관여에 뛰어들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북한을 엄청나게 이롭게 만듭니다. 우리가 훌륭한 전문가들을 활용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이를 미국에 맞서는 데 악용할 겁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에서 이미 봤습니다. 싱가포르 합의는 미국과 국제법의 관점에서 볼 때 형편없는 것이었습니다. 북한의 과거 약속에 비해 극도로 모호하고 빈약해서 약속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습니다. 결국 후속 조치나 이행 조치도 없이 빠르게 훼손됐고요. 따라서 여기서 이뤄진 합의 이행을 주도할 특정 직책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미 정부가 북한 상황과 역사에 정통한 전문가들에 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 큰 실수라는 이야기입니다.
기자)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속에서도 북한은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도로 진단하십니까?
러셀 전 차관보) 북한과 같은 독재 정부가 사실을 감추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많은 무역 거래를 하는 북한이 확진자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믿기 힘들죠. 북한은 감염 여부를 검진할 시약과 장비가 부족해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지원을 받아야 하고, 진단장비는 평양 밖에 사는 일반 주민들이 아니라 분명히 김정은 가족과 엘리트 계층을 보호하는 데 사용됩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진단도 받지 못한 채 사망했을 수 있지만 김정은은 이를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긴 하지만 북한은 이번 사태를 매우 심각하게 보고, 강력하고 신속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중국과의 국경을 폐쇄하고 많은 사람을 격리 조치했는데, 이는 자국민 안전을 위해서라기 보다 열악한 보건 시스템 때문에 스스로 전염병 확산에 얼마나 취약한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가 안보와 평양의 엘리트 계층을 보호하려는 조치였습니다.
기자) 그렇게 취약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대북 제재가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죠?
러셀 전 차관보) 미국과 국제 제재 아래서 의약품과 진단키트, 마스크 등을 북한에 지원하는 데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 정부가 대북 의료지원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고 북한도 기본적으로는 이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압니다. 미 재무부 역시 일부 품목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는 것이 의료 위기 속에서 도움을 줄 것이라고 시사했고요. 하지만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는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병 초기 위로 서한을 보냈고요. 북한은 의료용품은 받으려고 하면서도 외부 비정부기구 등의 방북 활동은 막으려고 합니다. 열악한 보건 시스템을 비롯한 내부 실태가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겁니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로부터 미국의 대북 접근법과 우선순위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백성원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