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조명한 참전용사 “홀로코스트 생존 후 한국전 무공”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 2005년 9월 한국전 참전용사인 티보 루빈 씨에게 '명예의 훈장'을 수여했다.

미군 최고의 무공훈장인 ‘명예의 훈장’(Medal of Honor) 수훈자들을 기리는 국립박물관이 한국전쟁 정전협정 67주년을 맞아 참전용사 티보 루빈 씨의 삶의 조명했습니다. 옛 나치 정권의 악명높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던 루빈 씨는 한국전쟁에서 수백 명의 전우들을 살린 영웅이었지만, 차별 문제로 뒤늦게 수훈자가 됐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미 대통령이 전시 또는 전시에 준하는 상황에서 가장 큰 무공을 세운 미군에게 수여하는 ‘명예의 훈장-Medal of Honor’.

이 최고의 무공 훈장 수상자들을 기리는 ‘명예의 훈장 국립 박물관(National Medal of Honor Museum)’이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67주년을 맞아 유대인 출신 참전용사인 티보 루빈 씨의 삶을 소개했습니다.

▶ '명예의 훈장 국립 박물관' 페이지 바로 가기

지금까지 ‘명예의 훈장’을 받은 미군 3천 525명 가운데 한국전쟁 참전용사는 145명. 이 가운데 한 명인 루빈 씨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에서 미국의 전쟁 영웅으로 변신한 흔하지 않은 놀라운 이야기의 주인공이란 겁니다.

헝가리 출신 유대인 루빈 씨는 13살 때 독일 나치 정권이 만든 오스트리아의 마우타우젠 강제수용소에 수용돼 12만 명이 살해되는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며 생존에 성공했습니다.

1945년 5월 5일, 미군의 도착으로 수용소에서 해방의 날을 맞은 루빈 씨는 1947년 미국에 이민 온 뒤 은혜에 보답하고자 미군에 지원했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제대로 못 해 두 번이나 입대 시험에 떨어진 끝에 그의 의지에 감동한 한 모병관의 도움으로 마침내 입대에 성공한 뒤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명예의 훈장 박물관은 루빈 씨가 한국전쟁에서 적어도 세 번의 큰 무공을 세웠다고 설명했습니다.

미 육군 제1기갑사단 8연대 1중대에 배속된 그는 대구-부산 퇴각로에서 상관의 지시로 홀로 남아 무기고를 지켜야 했습니다. 루빈 씨는 약속 시간 안에 동료들이 오지 않자 기관총과 수류탄을 참호 여러 곳에 배치한 뒤 북한군과 홀로 싸워 상대의 진격을 저지하고 적에게 믿을 수 없는 타격을 가했다고, 박물관 측은 설명했습니다.

루빈 씨는 훗날 당시를 회상하며 “가망이 없다고 여겼지만, 북한군이 한 사람 이상과 싸운다고 생각하도록 참호에서 참호로 뛰어다니며 수류탄을 던졌다”고 회고했습니다.

루빈 씨의 두 번째 무공은 운산에서 엄청난 규모의 중공군이 대대를 포위하자 홀로 기관총을 몇 시간 동안 쏘며 중공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전우들의 퇴각을 도운 겁니다.

그의 용맹스러운 희생으로 제3대대에서 200명이 생존해 퇴각에 성공했지만, 루빈 씨는 부상을 당한 채 중공군 포로수용소로 끌려가야 했습니다.

한국전쟁에 참여한 티보 루빈 씨의 젊은 시절 사진.

루빈 씨는 모국인 헝가리로 보내주겠다는 중공군의 제의와 회유를 거절하고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는 포로수용소에 남아 다시 전우들의 생존을 도왔습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생존했던 지혜와 용기를 발휘해 죽음을 무릅쓰고 밤에 적의 식량 창고에 들어가 음식을 구해 굶주림에 지친 동료들을 살렸고, 괴저로 고통받는 동료를 구더기를 이용해 살렸으며, 이(lice)를 퇴치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전우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습니다.

박물관은 루빈 씨의 이런 용기와 열정으로 미군 포로 35~40명이 수용소에서 석방될 때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공로로 루빈 씨는 두 번이나 ‘명예의 훈장’ 후보로 추천됐지만, 반유대주의자로 알려졌던 그의 상관이 번번이 서류를 올리지 않아 좌절됐습니다.

이 때문에 그의 영웅적인 헌신은 전후 반세기가 넘도록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의회가 과거 전쟁 중 차별 행위에 대해 조사를 지시한 뒤 많은 옛 전우들이 그의 영웅적인 행동을 증언했고, 2005년 9월, 백악관에서 마침내 명예의 훈장 수여식이 열렸습니다.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루빈 상병의 많은 용맹스런 행동이 전우 수백 명의 목숨을 구했다”며 그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녹취: 부시 대통령] “Corporal Tibor "Ted" Rubin's many acts of courage during the Korean War saved the lives of hundreds of his fellow soldiers. In the heat of battle, he inspired his comrades with his fearlessness.

루빈 씨가 ‘명예의 훈장’을 받는 현장에는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 그의 도움으로 생존한 여러 참전용사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명예의 훈장’ 박물관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와 한국 산하의 잔혹한 전투, 중공군 포로수용소에서 생존했던 루빈 씨가 2015년 미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자택에서 타계했다며, 그가 2만 시간을 봉사한 참전용사를 위한 병원은 그의 공로를 기려 이름을 티보 루빈 병원으로 개명했다고 밝혔습니다.

박물관은 홈페이지 동영상을 통해 영웅 루빈 씨의 마지막 말을 남겼습니다.

[녹취: 루빈 씨] “The real heroes are those who never came home. I was just lucky….I have shalom. Peace! People died for it.”

“진정한 영웅들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전우들)입니다. 나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내게는 평화가 있습니다. 그들은 이 평화를 위해 숨졌습니다.”

‘명예의 훈장’ 국립박물관은 미 의회의 승인으로 1억 5천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해 텍사스주 알링턴에 건설될 예정이며 2024년에 개관할 예정입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