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북한 핵 매우 어려운 문제"...민주·공화 정부 27년간 해결 못 해

지난 3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정의용 한국 외교장관이 G7 외교장관 회의가 열린 영국 런던에서 만났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북한 핵 문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문제라며, 과거 민주당과 공화당 정부모두 해결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은 지난 27여 년간 북한과 지속적으로 협상을 벌여왔는데요, 두 나라가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조은정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하기 위한 미-북간 협상은 1994년부터 여러 차례 합의와 파기를 반복했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2005년과 2007년 6자회담을 통해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채택됐습니다.

또 2012년 바락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 2.29 합의를 맺었습니다.

북한이 핵 활동을 중단하는 대신 미국이 식량과 에너지 등 지원을 제공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 합의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깨졌습니다.

2018년 6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역사적인 첫 미-북 정상회담이 열려 싱가포르 공동성명이 채택됐습니다.

미-북 간 새로운 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 송환을 골자로 하는 싱가포르 합의는 지켜지지 않았지만 아직 파기되지도 않았습니다.

미 고위 당국자는 최근 `워싱턴 포스트' 신문에,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접근법은 싱가포르 합의와 다른 과거 합의들을 기반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미-북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악수하고 있다.

1990년대 1차 핵 위기와 제네바 합의

북한의 핵 개발과 관련한 1차 위기는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 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시작됐습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핵무기전가방지 조약에서 탈퇴한다는 것을 선포한다”

북한은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 IAEA가 의심스런 핵 활동을 포착하고 핵 사찰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며 NPT를 탈퇴했습니다.

이에 빌 클린턴 당시 정부는 핵 개발의 근원지인 영변 시설에 대한 폭격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고,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며 위기가 진정됐습니다.

이어 미-북 고위급 회담의 결과로 1994년 10월 북한 핵 시설 동결과 대북 경수로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제네바 기본합의가 채택됩니다.

당시 기본합의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 북 핵 특사는 VOA에 북한의 약속 불이행으로 합의가 깨졌다고 말했습니다.

[녹취:갈루치 전 특사] “(The North) believed that the U.S. didn’t fulfill its political obligations under the deal to normalize relations. We were quite clear that they violated the deal by pursuing a separate enrichment program and the deal fell apart.”

지난 1994년 6월 워싱턴 국무부에서 미·한·일 당국자들이 유엔에서 추진할 대 북한 제재 내용을 협의한 후 기자들에게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야나이 준지 일본 외무성 외교정책국장, 로버트 갈루치 미국 국무부 차관보, 김삼훈 한국 핵대사.

북한은 미국이 미-북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정치적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지만, 미국은 북한이 별도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

당시 협상단 차석대표였던 토머스 허버드 전 주한대사는 북한이 잘못한 것이 맞지만, 당시 조지 부시 정권이 들어서면서 전임 정부의 ‘제네바 합의’에 대한 반발도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2002년 북한이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하고 있다는 판단을 한 미국은 제임스 켈리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특사로 평양에 보냈습니다.

이 때 강석주 당시 외무성 제1부상이 켈리 차관보에게 고농축 우라늄 개발 계획을 인정하면서 제네바 기본합의는 파기됐고, `2차 핵 위기'가 시작됐습니다.

2002년 이후 2차 핵 위기와 6자회담

북한은 이어 2003년 NPT를 탈퇴했고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우리는 이미 부시 행정부의 증대되는 대조선 고립학살 정책에 맞서 핵무기전파방지조약에서 단호히 탈퇴하였고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미-북 간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중국이 적극 중재에 나섰습니다.

2003년 4월 미-북-중 3자회담을 거쳐 그 해 8월부터 한국, 러시아, 일본까지 참여하는 6자회담이 시작됐습니다.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는 북한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대가로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고 NPT체제에 복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9.19 합의가 채택됐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2006년 10월 9일 지하 핵실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국제사회는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과는 별도로 협상도 계속해 2007년 2.13 합의와 10.3 합의 등 9.19 공동성명의 구체적인 이행계획서를 마련했습니다.

북한은 2008년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시키기도 했지만,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2009년 5월 25일 또 한 차례 지하 핵실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북한의 핵 신고 내용에 대한 검증 문제를 둘러싼 견해차로 좌초된 6자회담은 2008년 12월 이후 열리지 않았습니다.

2005년에서 2008년 북 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VOA에 “북한은 모든 기회를 포착해 비핵화를 미루고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 한다”며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힐 전 차관보] “I think N Korea uses every opportunity to delay and try to make as a fait accompli status its nuclear program. My own view is that we need to make it clear to the N Koreans that we will not now nor ever accept them as a nuclear state.”

힐 전 차관보는 핵무기가 없어야 더 나은 미래가 온다는 점을 북한이 궁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007년 2.13 합의 직후 베이징에서 북 핵 6자회담 각국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사사에 겐이치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천영우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김정은 집권 핵개발 가속화... 2.29 합의도 폐기

한편,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집권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직후부터 핵과 미사일 개발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북한은 김정은 정권 출범 직후인 2012년 2월 베이징에서 열린 미국과의 회담에서 2.29 합의를 체결했지만 두 달도 안 돼 북한의 장거리 로켓 실험으로 무산됐습니다.

당시 합의는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영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임시 중단하고 미국은 북한에 식량을 지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곧이어 5월, 헌법에 ‘핵 보유국’을 명기하고 ‘핵무력, 경제건설 병진 노선'을 채택했습니다. 바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2년 재선하자 곧 3차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이 펼쳐지는 가운데 미-북 간 대화는 단절됐고 북한은 핵무기와 장거리 미사일 기술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북한은 추가 핵실험에 이어 화성 15형 시험발사를 계기로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오늘 비로소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 로켓 강국의 위업이 실현되었다고 긍지 높이 선포하셨다.”

첫 미-북 정상회담… 싱가포르 공동성명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2017년 북한은 첫 ICBM급 ‘화성-14형’을 쏘아 올렸고, 역대 최대 규모의 6차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미국을 계속 위협하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하며 전방위적인 압박 캠페인을 펼쳤습니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선 북한의 주요 시설을 제한적으로 타격한다는 의미의 ‘코피 전략’이 공공연하게 거론됐습니다.

미-북 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한국의 중재로 분위기가 반전되고,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첫 정상회담 이후 진전이 이뤄지지 못하다가 8개월 만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정상회담도 결렬됐습니다. 북한 비핵화와 이에 상응한 제재 해제 문제를 놓고 양측의 입장이 극명하게 대립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북한은 협상장으로 나오라는 미국의 거듭된 요청을 계속 거부하고 있습니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바이든 정부의 새 대북정책이 외교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며 북한이 이 기회를 잘 잡을 것을 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수 일, 수 개월간 북한의 말과 행동을 지켜볼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