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한 정부가 북한 문제에 대한 조율과 공조를 연일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양국의 대북 인식이 이견을 넘어 단절된 상태라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 한 달도 안 된 상태에서 이어지는 한국 정부의 낙관적 대북관과 대미 제안이 동맹 간 대북 전략 조율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백성원 기자가 미 전직 관리들의 진단을 들어봤습니다.
미국과 한국이 정상 간 전화 통화와 정부 논평 등을 통해 “같은 입장”의 중요성을 연일 강조하고 있지만, 양국 대북 접근법의 접점보다 간극이 훨씬 크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며 비핵화 전략을 고심하는 단계에서 한국 정부가 트럼프 전 대통령식 접근법에 대한 선호를 공공연히 드러낸 것은 동맹국에 부담을 주고 양국 간 확연한 온도차만 노출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미 정부에서 북한 문제를 다뤘던 전직 관리들은 적어도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와 “미-북 정상회담 필요성”에 대한 미-한 간 인식은 차이를 넘어 완전히 “단절(disconnect)”됐다는 평가까지 내리고 있습니다.
백악관과 청와대의 대북 접근법 “단절”을 구체적으로 경고한 인사는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부소장입니다.
[마이클 그린 CSIS 선임부소장] “There appears to be a disconnect between the Blue House and the Biden administration on North Korea –at least on two points. President Biden was very clear as a candidate that he would not meet with Kim Jong Un until there were concrete and verified evidence of a real and not rhetorical denuclearization. By calling for the Singapore statement as the basis for Biden’s diplomacy, the Blue House is talking to domestic audiences but not really gauging accurately where the Biden administration is.”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을 지낸 그린 부소장은 VOA에 “바이든 대통령은 말뿐이 아닌 실질적 비핵화의 구체적이고 검증된 증거가 있을 때까지 김정은과 만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후보 시절부터 분명히 해 왔다”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따라서 “청와대가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합의를 바이든 행정부 외교의 기반으로 삼으라고 촉구하는 것은 국내용일지는 몰라도 바이든 행정부의 방향을 정확히 측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문재인 한국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2018년 싱가포르 미-북 회담을 7번이나 언급하며,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회담 공동선언을 계승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그 대화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이뤘던 성과를 계승해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트럼프 정부에서 있었던 싱가포르 선언은 비핵화와 한반도평화 구축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선언이었습니다.”
또한 정의용 한국 외교부 장관도 인사청문회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질의응답 과정에서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인 싱가포르 합의를 기반으로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 출범한 미 행정부가 동맹과의 조율을 통해 대북 접근법을 구체화하기도 전에 나온 한국 고위 당국자들의 이같은 공개 발언은 워싱턴에서 냉담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린 선임부소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의 외교를 지지한다고 확신한다”면서 “하지만 청와대는 미국 현 행정부가 믿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공화당원들조차 속으로는 믿지 않던 트럼프 대통령의 공상을 영속시키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마이클 그린 CSIS 선임부소장] “I am certain that the Biden administration supports diplomacy with North Korea, but the Blue House is perpetuating a Donald Trump fantasy that the current administration does not believe was real and that Republicans quietly never believed, despite their support for Trump.”
반면, 소수나마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한 정상 간 대면 방식을 비교적 높게 평가하며 여기서 나온 합의를 새 대북 전략의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는 전직 관리의 목소리도 없진 않습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사임한 뒤 차관보 직무를 수행했던 수잔 손튼 전 차관보 대행이 대표적입니다.
손튼 전 차관보 대행은 VOA에 “(미-북) 싱가포르 선언은 완벽하진 않지만 좋은 출발점”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도 그렇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수잔 손튼 전 국무부 차관보 대행] “The Singapore Summit declaration is not perfect, but it is a good start and that’s what I think the Biden administration should say.”
하지만 민주·공화 양당 행정부에서 대북 강온 전략을 오랫동안 두루 경험한 워싱턴 정가의 이른바 ‘올드 타이머’들 가운데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제안을 공유하는 인사는 많지 않습니다.
1, 2차 핵 위기를 거치며 협상을 통한 ‘단계적 접근법’으로 북 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협상의 주역들과 워싱턴의 ‘대화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김정은 위원장과의 개인 외교와 협상은 득보다 실이 컸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미 정부 바깥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을 성공으로 간주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고, 많은 이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이런 접근법을 계승할 것이라는 한국의 희망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이든 행정부 관리들도 비슷한 견해를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Very few experts outside the government see the Trump approach as a success, which makes them deeply skeptical about Seoul's hope that the Biden administration will continue Trump's approach. I suspect that officials in the Biden administration have a similar view.”
또한 이를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 증강과 중·단거리 미사일 시험을 결국은 허용한 트럼프 대통령의 접근법에 대한 미-한 간 이견”으로 규정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There is also a difference of views about the Trump approach on North Korea, which ultimately allowed North Korea to continue to build up its nuclear weapons arsenal and test medium- and short-range missiles.”
워싱턴 조야에서 미-한 전략 공조의 기본 전제를 흔들 수 있는 근본적인 이견으로 우려하는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변함없는 신뢰입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8차 당 대회에서 거듭 천명한 핵 무력 증강 계획은 북미 회담이 결렬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해 신뢰를 나타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위원장의 어떤 평화에 대한 의지, 대화에 대한 의지, 그리고 비핵화에 대한 의지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9·19 평양공동성명 계기 기자회견에서도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직접 밝힌 바 있다”며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공동선언,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직접 확인한 바 있다"며 같은 의견을 내놨습니다. 18일에는 이보다 더 나아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세계 모든 지도자들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마이클 그린 CSIS 선임부소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높다는 한국 정부의 거듭된 주장을 싱가포르 정상회담 계승 이견에 이어 미-한 대북 인식의 두 번째 “단절”로 꼽았습니다.
[마이클 그린 CSIS 선임부소장] “The statement that Kim Jong Un has the intention to denuclearize his country has no basis in reality. Kim Jong Un stated that he supports the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which is different –essentially saying North Korea will denuclearize when the United States does.”
그린 선임부소장은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은 현실에서 어떤 근거도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한반도 비핵화를 지지한다는 김정은의 발언은 미국이 비핵화를 하면 북한도 그렇게 하겠다는 뜻일 뿐”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김정은이 말한 “조선반도 비핵화”가 “북한의 핵 포기”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이런 사실은 워싱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의용 장관이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시절 김 위원장이 ‘핵 포기’를 약속한 것처럼 미국에 전달한 것이 최대압박 기조를 이어가던 트럼프 행정부 대북정책 급전환의 “원죄”가 됐다는 진단과 비판이 이어져 왔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는 “미 정부 안팎의 전문가들 중에, 정권을 움직일 특별한 강제 조치가 없는 이상, 북한이 이 시점에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There are not many U.S. experts, either inside or outside the government, who believe North Korea will give up its nuclear weapons at this point, unless extraordinary measures are taken to compel the regime to do so.”
오히려 “김정은은 8차 당 대회 때 강력한 핵무기 역량 확보를 북한의 오랜 전략적, 지배적 목표로 상기시키고, 핵무기 프로그램을 북한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것으로 묘사하면서 핵 억지력을 계속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이는 핵무기 포기 의지나 의도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In that speech, Kim reminded us that the acquisition of a robust nuclear weapons capability has long been the DPRK's "strategic and predominant goal." He went on to describe the nuclear weapons program as "the exploit of greatest significance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nation” and promised to “further strengthen our nuclear deterrence.” That does not sound like a man who has any "will" or "intention" to give up the weapons that he sees are vital to the preservation of his regime.”
토머스 컨트리맨 전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담당 차관보는 “정치인과 외교관은 때때로 낙관적 견해를 공개 표명할 필요가 있지만, 김정은의 의도에 대해선 누구도 단언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토머스 컨트리맨 전 국무부 차관보] “It doesn’t bother me that politicians and diplomats need sometimes to be publicly optimistic, but no one can speak with certainty about Kim Jong-un’s intentions.”
따라서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의 진정성은 북한과 미-한 사이에 구체적이고 상호적인 조치를 취하는 신중한 협상 절차를 통해 시험해 봐야 하고, 미국과 한국은 상당한 진전과 북한의 방해 가능성에 모두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토머스 컨트리맨 전 국무부 차관보] “The sincerity of his wish to denuclearize the DPRK needs to be tested through a careful negotiation process, in which both the DPRK and the US/ROK make specific, reciprocal steps. And the US and ROK must be prepared for either significant progress as well as the possibility of the North stonewalling.”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정의용 외교부 장관,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 한국 정부 인사들이 잇따라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가운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에 대한 동맹과의 협의와 조율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9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란 문제든 북한 문제든 미국이 너무 빨리 움직여서 동맹국들과 파트너들이 미국과 함께 가지 않는 것이 리스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의 파트너와 동맹국들도 우리의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근본적인 목표는 그것들을 조화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 전직 외교 당국자들은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미-한 간 극명한 견해차가 이같은 전략적 목표 달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CSIS 선임부소장은 “미국과 한국 정부가 현실적인 판단을 공유할 때까지 대북 전략을 서로 조정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마이클 그린 CSIS 선임부소장] “It will be difficult for the United States and Korea to coordinate on North Korea strategy until the two governments establish a shared picture of reality.”
그린 소장이 말하는 “현실적인 그림”은 물론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식 정상회담에 관심이 없으며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전혀 믿지 않는다는 전제를 말합니다.
다만, 토머스 컨트리맨 전 차관보는 “미국과 한국의 일반적인 협상 입장이 북한의 의도에 대한 똑같은 견해를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한국과 미국 정부 간 세밀한 양자 협의와 지속적인 미-한-일 동맹 강화가 필수”라고 설명했습니다.
[토머스 컨트리맨 전 국무부 차관보] “A common US-ROK negotiating position does NOT require them to have identical views about the North’s intentions. It does require detailed bilateral consultation between Seoul and Washington, as well as a constant strengthening of the US-ROK-Japan alliance.”
컨트리맨 전 차관보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미-한 당국 간 긴밀하고도 구체적인 논의와 입장 조율이며,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일치된 접근법을 내놔야 한다는 데 전직 관리들은 이견이 없습니다.
리비어 전 수석부차관보는 “북한을 평가하고 정책 접근법을 도출하는 데 있어 한국과 미국은 많은 차이가 있고, 이 문제도 그중 하나”라며 “대북정책 재검토 과정에서 이같은 동맹 간 인식차 문제가 다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수석부차관보] “There are a number of differences between Seoul and Washgton when it comes to assessing North Korea and prescribing policy approaches. This is one of them, and the gap in perception between the allies will have to be addressed as part of the policy review process.”
현재 바이든 행정부는 역대 정부의 대북정책을 두루 살피면서 새로운 접근법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다만,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같은 국내 현안 해결이 시급하고 대외적으로 중국, 러시아, 이란 문제 등에 집중하고 있어 북한 문제는 뒷전으로 밀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돼 왔습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2일 이런 지적과 관련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거론하며 미국의 시급한 우선순위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에 계속 전념하고 있다”며 “다음 조치를 언제 보게 될지 시간표를 제시하지는 않겠지만 조율은 계속되고 있고 아주 활발하다”고 설명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