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노동당 안에 김정은 총비서 바로 아래 직책으로 ‘제1비서’를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측근들에게 역할을 나눠주며 보다 효율적인 통치 방식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다만 김 위원장이 권력을 넘기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이 노동당 ‘제1비서’를 신설하고 “당 총비서의 대리인”으로 규정한 데 대해 미국 전문가들은 ‘김정은식 위임통치’가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권력이 아닌 권한을 넘기는 것”
북한 지도부를 연구하는 미 해군분석센터 CNA의 켄 고스 적성국 분석국장은 2일 VOA와 전화 통화에서 “김정은이 자신을 둘러싼 측근들 사이에서 지도부 역학을 개편하고 있고, 그 중 하나가 지휘계통 하부로 권한을 넘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고스 국장] “Kim Jong Un is revamping the internal dynamics of the leadership, especially within the bubble around him, and part of that is devolving authority down the chain of command. Not power but authority.”
고스 국장은 “권력이 아닌 권한을 넘기는 것”이라며 “당 지도부를 더 폭 넓게 일상적인 의사결정과 정책 집행 업무에 포함시켜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통치를 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고스 국장] “I suspect that this 1st Secretary position is going to be a position that one helps alleviate some of the day-to-day responsibilities that Kim has for oversight of the party so that he could be freed up to look at larger vision issues.”
고스 국장은 “제1비서는 노동당 관리와 관련한 김 위원장의 일상적인 책임의 일부를 덜어주는 자리로 보인다”며 “김 위원장은 더 큰 문제를 다루고 비전을 구상할 여유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정은 권력 강화 인상 주려 해”... “건강상 문제 있을 수도”
미 중앙정보국 CIA 출신 수 김 랜드연구소 연구원은 2일 VOA에 ‘제1비서’ 신설 이유는 “회의 주재와 같은 노동당 내 김정은의 책임을 일부 덜어주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연구원] “One interpretation is that the change further cements KJU’s power. By delegating Kim’s responsibilities to a subordinate, the regime may wish to portray Kim’s influence and authority as having grown over the years.”
김 연구원은 이번 ‘제1비서’ 신설은 “수하에게 책임을 위임하는 결정을 통해 김정은의 영향력과 권력이 한층 커졌다는 인상을 주려는 당국의 시도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이번 결정이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정부는 지도자의 건강 문제를 시인하지 않으려 하겠지만, 이번 조치는 “김정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경우 ‘만약을 위한’ 대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 연구원은 하지만 이번 조치가 김 위원장의 절대 권력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결국 국내외적으로 김 위원장의 위상과 체면을 더 잘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제1비서... 김정은 최측근이 담당할 것”
아직 누가 당 제1비서에 임명됐는지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최측근이자 핵심 실세인 조용원 당 조직비서와 김덕훈 내각 총리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북한 지도부를 연구하는 미 해군분석센터 CNA의 사라 보글러 연구원은 두 사람 다 가능성이 있다며 “정치국 상무위원이 맡을 것이며 그 이하에게 위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녹취: 보글러 연구원] “It’s probably going to be someone within the politburo presidium. It would be hard to see this being delegated below.”
보글러 연구원은 따라서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당 부부장은 ‘제1비서’를 맡기에는 당내 직책이 낮다고 지적했습니다.
김여정 부부장은 지난 8차 당 대회에서 직책이 제1부부장에서 부부장으로 떨어졌고, 정치국 후보위원에서도 빠졌습니다.
“기존에 있던 역할 공식화 수순”
마이클 매든 스팀슨 센터 연구원은 ‘제1비서’와 같은 “이런 자리가 생기는 것은 비공식적으로 존재하던 권력 역학이 공식화되는 과정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 지도부가 6개월에서 1년 간 검증 과정을 거쳐 당대회나 당 규약 개정 등을 통해 공식적으로 새 직책을 부여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매든 연구원은 리병철 원수의 경우를 예로 들며, 역할이 뚜렷하지 않은 채로(amorphous role) 계속 승승장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매든 연구원] “He remains the regime’s paramount decisionmaker. We might view it as him outsourcing some work tasks, some minor decisions, to a trusted subordinate. Over the medium to long term KJU runs the risk of being co-opted or neutralized by vesting too much power into the 1st Secretary and we might see this 1st Secretary position redefined if that happens.”
매든 연구원은 “김정은이 여전히 최고의 결정권자”라면서 “중장기적으로 제1비서에게 권한을 너무 많이 줄 위험도 있다”며, “그 경우 제1비서의 역할이 다시 규정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매든 연구원은 북한 권력층을 연구하는 웹사이트 ‘노스 코리아 리더십 워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선대와 다른 통치 스타일”
한편 보글러 연구원은 김 위원장이 아버지인 김정일과 통치 방식을 차별화해 효율성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녹취: 보글러 연구원] “I think it is largely to do with efficiency and normalizing the running of the state. I think what we saw with Kim Jong Il is that everything was so centralized that things couldn’t efficiently run because things could get jammed up very quickly…”
김정일의 경우 중앙집권적 성향이 강해 업무가 순식간에 쌓이고, 부득이하게 생기는 행정적 문제들도 빨리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보글러 연구원은 그러면서 김정은 위원장이 이번에 ‘제1비서’ 신설한 것은 명령을 보다 빨리 처리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습니다.
고스 국장도 김정은이 공식적인 직책을 운영하는 방식이 아버지인 김정일과 할아버지 김일성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했습니다. 공식적인 권력 구조 안에서 권한을 분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스 국장은 집권 10년차를 맞은 김 위원장이 “자신의 위치에 대해 매우 자신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정권이 불안정하다면 권한 위임과 같은 조치는 상상할 수 없다”고 평가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