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 "북한에서 음력설 크지 않아...명절이면 고향 생각"

탈북자들이 지난해 1월 설에 앞서 경기도 파주 임진각을 방문해 차례를 지내고 있다.

오는 12일은 음력 정월 초하루로 한민족의 전통적인 명절입니다. 탈북민들은 북한에서는 음력설을 크게 기념하지 않지만 그래도 명절을 맞아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난다고 밝혔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10일 민속 명절인 설 명절을 소개하며, 북한 주민들이 조상과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고 명절 음식을 먹으며 다양한 행사와 민속놀이를 즐긴다고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은 북한에서 음력설, 구정은 크게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북한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였던 아버지와 함께 탈북한 이현승씨입니다.

[녹취:이현승] “원래는 구정을 잘 안 쇠었거든요. 정책이 계속 바뀌어서는 1월 1일을 기본 설날로 쇠다가 김정일이 한 번 바꾸라고 해서 음력설을 쇠었는데, 딱히 구정을 국가적 명절로 보냈던 기억은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봉건의 잔재’라며 음력설을 쇠지 않았지만, 1989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음력설을 휴일로 지정해 주민들이 양력설과 음력설을 모두 쉬게 됐습니다.

이현승 씨는 10일 VOA에 북한에서는 명절 때라도 가족들이 모이기 힘들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이현승] “설날 같은 경우에도 모이기 힘들거든요. 1월1일도 모이기 힘들고 음력 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친척들은 지방에 계시는 분들도 있고 평양에 있는 분들도 한 번 모이기는 쉽지 않습니다. 북한 정권 자체가 명절날 가족들 모이는 것도 사실 다 불편해 하거든요.”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2014년 탈북해 미국에 정착한 김마태 씨는 음력 설 명절 때 국가에서 특별히 공급 나오는 것도 없고, 일반 주민들은 먹고 살기 바빠 명절을 기념하기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녹취:김마태] “자연히 돈 버는 날이 명절이 되고 말겠죠 결국은. 명절이고 1월 1일이고 우린 관계 없었다. 그 때 당시로서는 국가적인 모든 게 헝클어져 가지고 외화벌이 하는 저 같은 사람들은 명절에도 관계없이 일을 해야 했습니다. 꼭 돈을 벌어야 호구지책이 되고.”

김마태 씨는 겨울에는 물 때를 맞춰 조개를 캐서 중국 무역선에 파는 일을 했다며, 음력설을 잘 쇠지 못하곤 했다고 기억했습니다.

설은 맞은 북한 아이들이 지난해 1월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다.

영국에서 탈북 인권운동가로 활동하는 박지현 징검다리 대표는 설 명절 때 맛있는 음식을 먹길 바랬다고 기억했습니다.

[녹취:박지현] “설 명절이 되면 아이 때 엄마들이 떡이래도, 찰떡이나 입쌀떡 이런 걸 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큰 선물 같은 걸 크게 안 바랬지만, 그런 걸 해주기를 바랬던 그런 기억들이 나요.”

박 대표는 또 북한에서는 설 명절도 정치적, 사상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박지현] “북한에는 개인적인 소망이라는 게 크게 없잖아요. 북한이 개인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이기 때문에, 새해를 맞으며 나는 공부도 더 열심히 해서 경애하는 아버지, 김일성 장군님에 보답하는 학생이 되겠다. 또 일하는 사람들도 새해에는 일을 열심히 해서 과제도 완수하고 당에 충실하겠다.”

비록 북한에서 크게 기념하지 않는 음력 설이지만, 그래도 두고 온 가족들과 고향 생각이 유난히 나는 때입니다.

[녹취:박지현] “저희는 마음이 무거운 사람들이에요. 명절이 되도 부모님들 산소에 가서 술 한잔도 부어 드릴 수 없는. 생각이 많아지는, 그리움이 많아지는, 우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새해겠지만 저희에게 명절은 우울한 날이죠.”

이현승 씨는 명절 때면 미국에서 가족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따로 갖는다고 말했습니다.

[녹취:이현승] “(생각이) 안 날 수가 없습니다. 북한에 두고 온 가족들, 친척들도 많이 생각이 나고 또 저희도 이제 명절 때 음식을 하면서 고향을 향해서 인사를 드리고 그렇게 합니다. 다양하게 북한에서 해먹던 음식들 위주로 해서, 가족분들 할아버지, 할머니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그런 추억을 가지고..”

이현승 씨는 새해에 코로나 등으로 인한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북한 주민들이 신심을 잃지 않고 좋은 날을 기대하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김마태 씨도 북한 주민들에 좋은 일들이 가득하길 기원했습니다.

[녹취:김마태] “새해에는 운이 닿아서 국가적으로나, 자기 일하는데서나 행운이 있길 기원합니다.”

박지현 징검다리 대표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대신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하며, 북한 주민들이 어렵겠지만 건강하게 버텨주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