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한인 2세 감독이 어린 시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만든 영화 ‘미나리’가 화제입니다. 미국에 이민온 한인 가정의 삶을 그린 영화로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했는데요,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낯선 미국 땅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에게도 특별한 영화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안소영 기자입니다.
[영화 ‘미나리’ Trailer] “내가 했던 말 기억나? 미국에 가서 서로를 구해주자고 했던 말. ”
1980년대에 어린 두 남매를 데리고 희망을 찾아 미국으로 이민온 젊은 한인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입니다.
영화를 만든 한국계 미국인 리 아이삭 정 감독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인 가정이 아칸소 주에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 정착해 힘겹게 살아가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채소밭을 일궈 성공하겠다는 아버지를 따라 가족들은 이동식 주택에서 좌충우돌 여러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린 손주들과 뒤늦게 미국에 건너온 외할머니와의 이야기를 담은 장면들은 정겹습니다.
[영화 ‘미나리’ Trailer] “Oh, my pretty boy! I am not pretty, I am handsome.”
부부는 온갖 역경을 이기겨내고 마침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지만 곧 또 다른 난관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미나리’는 영화 속에서 어린 남매의 할머니가 키우는 채소로,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입니다.
정 감독은 실제로 자신이 어렸을 때 할머니가 야채를 키웠고 그 가운데 가장 잘 자랐던 것이 미나리였다며, 자신에게는 가족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
정 감독은 최근 ‘링컨 센터 필름’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미국 내 이민 가정이 겪는 세대, 문화, 소통의 문제를 조명해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려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정 감독] “I started to writing down a lot of memories, and it came to like about 80 memories.”
80여 개의 추억들이 떠올랐고 할머니의 실수로 집에 화재가 발생한 사건들을 영화에 그대로 담았다는 설명입니다.
미국 영화계에서는 ‘미나리’가 단지 한인 뿐 아니라 모든 이민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의 본보기가 되는 영화라며, 이보다 더 미국적인 영화를 본 적 없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AP 통신은 가족의 친밀한 풍경을 따스하고 잔잔하게 그려낸 영화라고 소개했고, ‘워싱턴포스트’는 절묘한 부드러움과 담백한 아름다움으로 이민자들의 이야기와 가족 드라마를 살린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자유를 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해 낯선 땅 미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에게도 영화 ‘미나리’는 특별해 보입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에 거주하는 한 탈북민 남성은 아직 영화를 직접 접하지는 못했지만 미지의 세계였던 미국에서의 자신의 정착 과정을 영화에서 다시 느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녹취: 캘리포니아 거주 탈북 남성] “북한에 있으면서 몰래 듣고 비디오 테이프 등으로 본 곳이 미국이었고, 그런 세상에 와서 살아가고 있고, 노력한 만큼 차이는 있겠지만 그 대가가 따라오니까요.”
시카고에 정착한 탈북민 김마태 씨는 남북한 사람 모두 어려움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강인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것 같다며, 이 영화 속에서 미국 사회에서 꽃을 피울 수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민자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하고 너그럽게 포용하는 미국은 축복 받은 땅인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녹취: 김마태 씨]“ 미국이라는 곳에서 물론 인종 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 선진국으로서 이민 온 사람들을 다 포용한다는 거, 그래서 우리 이민자들이 이 땅에서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울 수 있구나….”
영화 ‘미나리’는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대상과 관객상을 수상하며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후 지금까지 미국 영화협회 등 다수의 기관과 영화제에서 수상했습니다.
지난 3일엔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HFPA)가 주관하는 제78회 골든글로브상의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부문 후보작으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또 4일엔 미국배우조합상(SAG)의 앙상블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등 3개 부문 후보에 올랐습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인 감독이 만들고 미국 제작사가 제작했으며, 주연 배우 5명 가운데 3명이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대사 절반 이상이 영어가 아닌 외국어라는 이유로 글든글로브 영화상에서 작품상 대신 외국어 영화상 후보에 올라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VOA 뉴스 안소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