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로로 잡혀 강제노역을 했던 한국 군인들이 한국 법원에 북한 정부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소송을 내 이겼습니다. 한국 법원이 김 위원장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해 손해배상을 명령한 첫 판결입니다. 서울에서 김환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김영아 판사는 7일 한모 씨와 노모 씨가 북한과 김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들은 한 씨와 노 씨에게 각각 2천100만원, 미화로 약 1만7천500달러를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했습니다.
한 씨 등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북한군의 포로가 돼 정전 후에도 송환되지 못하고 내무성 건설대에 배속돼 노동력을 착취당했다며 2016년 10월 소송을 냈습니다.
노 씨는 2000년, 한 씨는 2001년 각각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소송을 주도한 민간단체 ‘물망초 국군포로 송환위원회’는 “북한과 김정은에 대해 한국 법원의 재판권을 인정하고 손해배상을 명령한 첫 판결”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한 씨와 노 씨는 재판에서 “50년 가까이 이뤄진 장기간의 불법 행위는 인권말살적”이라며 “북한이 원고 1인 당 6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강제노역 피해를 본 시기에 통치자였던 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으며 자손인 김 위원장이 손해배상 채무를 상속받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상속 비율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이 책임져야 할 손해배상금은 원고 1인당 2천246만원”이라며 “이 가운데 일부 금액을 청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법원은 소장을 접수한 지 약 2년 8개월 만인 지난해 6월 첫 변론준비 기일을 열어 심리한 결과 북한과 김 위원장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북한 정부와 김 위원장에게 소송이 제기된 사실을 알릴 방법이 없어 결국 법원은 소장을 공시송달한 뒤에 사건을 심리했고, 이 때문에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공시송달이란 소송 상대방이 서류를 받지 않고 재판에 불응할 때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게재한 뒤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입니다.
피고에게 소장을 공시송달하고 사건을 심리할 경우 원고 측이 제출한 증거만을 바탕으로 사건을 심리하고 이 과정에서 피고 측의 주장은 반영되지 않게 됩니다.
재판이 끝난 직후 한 씨는 “국군포로 문제에 한국 정치권이나 사회가 관심을 갖지 않아 섭섭했지만 어쨌든 이런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돼 감사하다”고 소감을 말했습니다.
물망초 소속 구충서 제이앤씨 대표변호사는 “사단법인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이 북한에 지급할 저작권료 약 20억원을 현재 법원에 공탁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채권 압류와 추심 명령을 받아내 추심한 금액을 한 씨와 노 씨에게 지급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은 2005년 북한 저작권 사무국과 협약을 맺어 ‘조선중앙TV’ 영상을 비롯한 북한 저작물을 사용할 때마다 저작권료를 지급해왔습니다.
이에 따라 2008년까지 약 8억원이 송금됐으나 이후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으로 대북 제재가 시행되면서 송금이 막히자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은 저작권료를 법원에 공탁해 왔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환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