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범수용소 내 스승 은혜 못 잊어, 북한 박해 멈춰야"

엠네스티 인터네셔널이 공개한 북한 요덕 수용소 위성사진

한국 주재 미국대사관이 최근 한국의 스승의 날을 맞아 과거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의 지방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던 캐슬린 스티븐스 전 대사와 제자의 추억을 담은 동영상을 소개했습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출신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이 동영상을 보면서 학대가 일상이던 수용소 내 학교에서 사랑을 베풀어줬던 한 스승이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머리를 짧게 자른 한국의 중학생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 보입니다.

[녹취: 스티븐스 전 대사] “I went to Korea for the first time in 1975 as part of the Peace Corps Middle School Education program.

스티븐스 전 대사가 1975년부터 2년 동안 미국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 충남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을 때 촬영한 사진입니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주한 미국대사관이 최근 한국의 ‘스승의 날’을 맞아 공개한 동영상에서 “짧게 민 머리로 외국인 선생님을 바라보던 어리고 호기심이 가득했던 학생들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습니다.

스티븐스 전 대사는 당시 한국은 선생님을 존경하는 문화로, 자신이 예산 거리를 거닐 때 학생들이 먼저 다가와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하며 인사를 했다면서 학생들과 주말에 산에 가고 소풍도 갔던 즐거운 추억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스티븐스 전 대사] “Being a 선생님 was a respected thing and I think it still is today but certainly back then it was astonishing to me to walk down the street of the 예산 and have students come to a halt and bow and say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당시 예산중학교 학생으로 스티븐스 전 대사로부터 영어를 배웠던 백승엽 한국 가천대학교 교수는 영상에서 선생님의 애정과 노고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감사와 존경을 표시했습니다.

[녹취: 스티븐스 전 대사] “당시 시골 중학교 학생이었던 저는 미국의 선생님으로부터 미국어를 직접 배운다는 생각에 아주 기분 좋게 신나게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40년 전 저희들에 대한 애정과 노고가 있었기에 저희 예산중학교 졸업생들이 사회에서 이만큼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선생님 늘 건강하시고 유쾌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교사를 존중하는 문화는 미국 등 전 세계가 비슷하지만, 유교 문화가 깊은 남북한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나 10살 때 가족을 따라 함경남도의 15호 요덕관리소 혁명화 구역에 수용돼 10년을 보냈던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19일 VOA에, 해마다 ‘스승의 날’을 맞으면 선생님들에 대한 악몽과 추억이 교차한다고 말했습니다.

2007년 5월 21일 한국 서울에서 열린 북한 정치범수용소 인권탄압 실태조사 '잔인함의 집결' 발표 기자회견에서 당시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강철환(오른쪽) 공동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가족이 집단생활을 하는 관리소 혁명화 구역에도 학교가 있었지만, 교원은 모두 국가보위성 소속으로 학생들을 대개 인간 취급하지 않고 죄인이자 강제노동의 수단으로 학대했다는 겁니다.

[녹취: 강철환 대표] “수용소 안의 학교라는 게 사실은 무늬만 학교이지 아이들 통제하고 일 시키고 죄수 취급하는 그런 곳인데, 거의 학대 정도가 아니라 범죄 수준으로 아이들을 구타하니까요. 왜냐하면 거기서 (정치범과 가족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 자체가 죄가 되니까.”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는 최종보고서에서 지난 50년간 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수 십만 명이 죽고 지금도 4개 수용소에 8~12만 명이 있을 것으로 파악된다며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관리소)에서 수감자들에게 가해지고 있는 끔찍한 참상은 20세기 전체주의국가의 수용소에서 벌어졌던 비극과 유사하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강 대표는 이런 구타와 학대가 일상이었지만 당시 관리소 학교에서 물리 과목을 가르치던 ‘김기운’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무지막지한 교원들과 달리 김 선생은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줬다는 겁니다.

[녹취: 강철환 대표] “(김) 선생님은 우리를 아이로 학생으로 봐주셨고 적대분자든지, 적대세력의 자녀로서 학대 대상으로 본 게 아니고 그야말로 학생으로 봐주신 거죠. 실제로는 굉장히 따뜻하게 대해 주셨고, 말은 좀 세게 하셔도 뒤에 가서 등도 두들겨 주시고 열심히 하라고 하고. 인격적으로 정말 훌륭하셨고 아이들을 정말 사랑으로 대해 주셨어요.”

특히 벌레와 쥐를 먹으며 영양을 보충해야 할 정도로 굶주림에 시달렸던 학생들에게 김기운 선생은 수용소 내 규정을 어기며 몰래 음식을 나눠주곤 했다고 강 대표는 회고했습니다.

[녹취: 강철환 대표] “토끼 같은 것을 잡아서 선생들이 요리해 먹는데, 그것을 아이들이 먹지 못하게 하죠. 그런데 그 선생님은 너네 먹으라고. 그렇게 몰래몰래 챙겨 주셨어요. 영양실조가 오는 게 보이니까. 그런데 사실 그런 것도 그렇게 하면 안 되거든요 규정상. 고기를 버리면 버렸지 죄인들에게 그런 걸 주지 못하게 되어 있으니까.”

당시 만 13살이었던 강철환 소년은 김기운 선생님의 이런 사랑을 통해 절망 속에서 희망을 봤다고 말합니다.

[녹취: 강철환 대표] “수용소에서 사람들을 학대하는 위치에 있던 사람일지라도 본의 아니게 (상부로부터) 강요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저는 김기운 선생님을 보면서 그걸 느꼈어요. 악한 곳에 서 있다고 해서 다 악한 사람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죠.”

그러나 김기운 선생은 학생들에게 베풀었던 행위들이 발각돼 학교에서 퇴출당됐고, 다음에 온 교원이 학생들을 너무 잔인하게 학대해 김 선생님의 소중함을 새삼 더 깊이 깨닫게 됐다고 강 대표는 회고했습니다.

김기운 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과거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감명 깊게 읽었다고 밝힌 강 대표의 자서전 ‘평양의 어항’에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강 대표는 주한미국대사관이 최근 제작한 스티븐스 전 대사의 ‘스승의 날’ 동영상을 보면서 김기운 선생님이 떠올랐다며 이 기회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강철환 대표] “가장 인생에서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상황 속에서 우리들을 인간적으로 대해 주시고,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력을 하셨고 가끔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던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아마 그 순간 선생님의 그런 사랑이 없었다면 많은 아이들도 정말 고통스럽게 더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훌륭한 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늦었지만 건강하게 오래오래 계속 사시고 앞으로 더 행복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강철환 대표는 아울러 북한 수용소 보위원 등 국가보위성 관리들에게 이 말을 꼭 당부하고 싶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강철환 대표] “사람을 악하게 대하라고 정권이 그렇게 압력을 가할지라도 그런 것들이 전혀 부질없고 전혀 쓸모없는 것이다. 최대한 관대하게 사람들을 잘 대해주는 것이 훗날 본인에게도 좋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더 좋은 곳이지 그렇게 사람을 괴롭히고 통제하고 고문하고 이런 것들이 정상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간부들이나 통제하는 사람들이 이런 점을 잘 인식했으면 좋겠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