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자유권위원회, 북한에 29개 인권 침해 사안 해명 요구

미국 뉴욕의 유엔 본부 건물 (자료사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Human Rights Committee. HRC)가 총 29건에 달하는 질의서를 최근 북한 정부에 보냈습니다. 생명권 침해 등 다양한 사안에 대해 북한 당국에 해명을 요구했는데, 북한은 거의 20년째 당사국 의무인 국가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보도합니다.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의 이행 상황을 감독하는 자유권규약위원회(HRC)가 지난 23일 북한 정부에 ‘보고 전 쟁점목록(LOIPR)’을 보냈습니다.

쟁점목록은 173개 당사국이 국가 보고서를 위원회에 제출할 때 참고하는 지침서로, 국가들은 이 쟁점목록의 요구에 따라 보고서를 제출합니다.

위원회는 총 29개 분야에 걸쳐 북한 당국에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어떻게 시행하고 보호하며 입법 조치를 하는지 관련 정보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특히 국제법적 효력이 있는 이 규약을 국내법보다 우선하기 위해 북한 당국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북한 법원이 실제로 관련 조항을 적용한 사례들을 제시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국제법과 헌법보다 노동당 규약을 상위개념으로 적용해 인권 침해를 정당화한다는 국제사회의 지적에 대해 북한 당국에 직접 해명을 요구한 겁니다.

위원회는 또 북한의 당과 사회안전성 등 정부 내 만연한 것으로 알려진 부정부패 척결을 위한 조치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조치가 집회와 이동의 자유 등 국제규약 이행 의무를 무시하거나 생명권을 침해했는지 여부 등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아울러 성분차별 등 다양한 차별 행위 근절을 위해 어떤 입법과 조치를 했으며 가정 폭력 등 여성 폭력, 특히 구금 시설 내 성폭행과 강제 낙태 등 여성에 대한 잔인하고 모욕적인 대우에 대해 북한 당국이 어떤 법적 대응과 처벌을 했는지 물었습니다.

또 “모든 인간은 고유한 생명권을 가지며, 이 권리는 법률에 따라 보호된다”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6조에 근거해 북한 당국의 생명권 침해 문제에 관해 5개 항에 걸쳐 자세히 질의했습니다.

특히 ‘강제실종’ 사안에 대해 국제 인권 기준을 적용해 형사 처벌하는지, 또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를 통한 책임자 처벌, 관련 개인의 송환 등 당국이 강제실종 해결을 위해 지난 회기 동안 어떤 조치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가령 한국 정부가 지난 2019년 북한으로 강제 추방한 탈북 선원 2명에 대한 조치, 한국전쟁 전시 납북자 문제, 1969년 대한항공 여객기 납치사건 등의 해결 노력, 북한 당국이 코로나 유입을 막기 위해 무단 월경자에 대해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보도 등에 대해 해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겁니다.

아울러 최근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과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표현의 자유 침해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 당국에 설명을 요구했습니다.

주민들의 정보 접근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과 국가 전복 등 반체제 행위에 관한 처벌 관련 법률이 어떻게 상호 연계되는지, 선전선동부의 구체적인 역할은 무엇인지, 정부 밖에서 정보를 찾거나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행위를 범죄시하고 사형 등 가혹한 처벌을 한다는 지적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한 겁니다.

위원회는 총 6쪽에 걸쳐 북한 주민들의 기본적 자유권 침해에서부터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지역 내 방사선 오염 우려에 대한 해명 등 다양한 질의를 했습니다.

앞서 비정부기구 차원에서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 북한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던 민간단체들은 우려했던 사안들이 대부분 쟁점목록에 반영됐다며 반겼습니다.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28일 VOA에, 생명권 보장과 관련해 다양하고 구체적인 질문이 담긴 게 특징이라며 북한 인권 개선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신희석 법률분석관] “두리뭉실한 질문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이런 사안들에 대해 해명하라고 하기 때문에 그 자체가 북한 정권에 대한 압박이 됩니다. 물론 북한 당국이 성실하게 답변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래도 북한이 부정확하고 왜곡된 답변을 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가 기록으로 남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북한의 내부 사정이 드러날 수도 있고,”

북한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1981년 비준했지만, 2002년 보고서를 끝으로 거의 20년째 국가보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위원에 한국인 최초로 선출된 서창록 한국 고려대 교수는 앞서 VOA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정권이 국제법을 위반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우려한 바 있습니다.

[녹취: 서창록 위원] “북한이 국가보고서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국제법을 어기고 있는 상태입니다. 진정도 할 수 있는데, 그 진정은 개인이나 시민사회가 해야 합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북한이 시민적·정치적 규약에 가입돼 있고, 본인들이 그런 진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마이클 커비 전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장은 과거 VOA에,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권리가 무엇인지 조차 모르기 때문에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조사위의 최종보고서와 세계인권선언 등을 주민들에게 보내 이를 깨닫도록 돕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