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순교자, 평화 인간가치 수호에 이바지”

프란치스코 교황이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서울 도심에서 100만 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순교자 124위의 시복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은 모든 한국인에게 큰 기쁨의 날이라며 순교자들의 유산은 평화와 인간가치 수호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김환용기자가 보도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윤지충 바오로 등 순교자 124위 시복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시복은 가톨릭 교회가 순교자들을 복자로 선포해 공경의 대상으로 추앙케 하는 의식으로 교황이 순교자의 땅에 와서 직접 시복 미사를 거행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시복 미사는 바티칸에서 교황청 시성성 장관 추기경이 교황을 대리해 거행해왔기 때문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4위의 순교자들을 앞으로 복자라고 부르고 법으로 정한 장소와 방식에 따라 해마다 5월 29일 축일을 거행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시복 선언을 했습니다.

이번에 복자에 오른 이들은 제사를 거부해 참수형을 당한 윤지충을 비롯해 한글 교리를 통해 평등사상을 전파한 정약종 그리고 12살 어린 나이에 순교한 이봉금 등 조선 조정의 천주교 박해로 희생된 사람들입니다.

시복 선언이 끝나자마자 참석자들의 환호와 함께 124위가 그려진 대형 걸개 그림이 공개됐습니다.

교황은 강론에서 오늘은 모든 한국인들에게 큰 기쁨의 날이라며 순교자들의 유산은 이 나라와 온 세계에서 평화와 진정한 인간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Pope beatifies 124 Korean martyrs…act1 hyk 8-16-14[녹취: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순교자들이 증언한 애덕과 모든 이를 향한 연대성, 이런 모든 것들이 이제 한국인들에게 그 풍요로운 역사의 한 장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선의를 지닌 모든 형제자매들이 더욱 정의롭고 자유로우며 화해를 이루는 사회를 위해 서로 화합해 일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함께 순교자들의 모범은 막대한 부유함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 받지 못하는 사회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 준다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시복 미사에 앞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시복 미사를 위해 서울 시청을 출발한 교황은 예정에 없이 중간에 차에서 내려 유가족들의 손을 맞잡았습니다.

유가족들은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며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게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교황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가족이 전한 편지를 자신의 주머니에 직접 챙겨 넣기도 했습니다.

이번 미사에는 세월호 유족 4백 명을 포함해 공식 인원만 17만 명, 광화문 일대 백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거행됐고 인터넷 등을 통해 150개 나라에 생중계됐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복 행사가 끝난 뒤 이날 오후엔 장애인등을 위한 천주교종합복지시설인 충북 음성 꽃동네를 방문해 오갈 데 없는 처지에 있는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했습니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날인 15일 충남 당진 솔뫼성지에서 열린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반도 분단 문제에 대한 청년들의 질문에 누가 이기고 지는 게 아닌 남북한이 언제나 한 가족인 것을 생각해야 한다며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고 형제자매들이 하나로 뭉치고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Pope beatifies 124 Korean martyrs…act2 hyk 8-16-14[녹취: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북한에 있는 형제들과 같은 언어를 쓴다는 것이 여러분들에게 첫 번째 희망의 요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교황은 이어 남북간 화해와 평화를 위한 기도를 제안하고 참석자 모두와 함께 1분여 동안 묵상기도를 했습니다.

솔뫼성지는 한국인 천주교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난 생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