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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서 슬그머니 사라지는 '강성대국'


지난 4월 북한 평양 거리에서 걸린 '강성대국' 구호. 하지만 최근에는 '강성대국' 선전이 북한 매체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다.(자료사진)
지난 4월 북한 평양 거리에서 걸린 '강성대국' 구호. 하지만 최근에는 '강성대국' 선전이 북한 매체에서조차 사라지고 있다.(자료사진)
북한이 국가적 목표로 내세웠던 ‘강성대국’ 구호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경제난이 계속되면서 북한 당국도 더이상 강성대국을 내세울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야심차게 내세웠던 ‘강성대국’ 구호가 북한 선전매체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한국의 `연합뉴스’가 최근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조선중앙방송’ `평양방송,’ 그리고 대남 매체인 ‘우리민족끼리’ 같은 북한 매체를 분석한 결과 최근 한 달 가까이 ‘강성대국’ 구호를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한의 지인들과 정기적으로 전화통화를 하는 한국의 탈북자 김은호 씨는 강성대국이라는 구호가 더이상 통하지 않자 구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탈북자 김은호] “김정일 사망 직전까지 내놨던 구호인데 이제는 북한 주민들이 강성대국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챘거든요. 따라서 당국도 강성대국이라는 표현을 점차 안한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강성대국’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때는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북한은 수 십만 명이 굶어죽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 을 겪고 있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무부 북한 담당관을 지낸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는 ‘고난의 행군’ 와중에 주민들을 달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바로 ‘강성대국’ 구호였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 “I THINK BASICALLY…"

강성대국의 목표 시점이 2012년으로 설정된 것은 지난 2007년입니다.

그 해 11월 평양에서 열린 ‘전국지식인대회’에서 최태복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는 “2012년은 김일성 동지의 탄생 100돌이 되는 뜻 깊은 해”라며 “2012년까지는 강성대국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강성대국은 북한의 국가적 목표이자 통치이념으로 떠올랐습니다. 북한 당국이 제작한 ‘강성대국 총진군가’입니다.

[녹취: 조선중앙방송] “강성대국 영마루로…"

북한은 지난 6년간 군사적, 경제적으로 강국이 되겠다며 일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우선 2006년과 2009년 두 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또 2009년에는 태평양으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데 이어 올 4월에도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경제 분야에서는 지난 해 1월 ‘경제개발 10개년 전략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외국에서 1천억 달러의 외자를 들여와 식량난과 에너지난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평양의 수뇌부는 이 같은 경제개발 계획을 총괄할 ‘국가경제개발 총국’ 을 창설하는 한편 산하에 외자 조달을 담당할 ‘조선대풍 국제투자그룹’도 설립했습니다. 또 20년간 방치됐던 류경호텔도 다시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같은 군사적 측면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뤘는지 몰라도 경제적 측면에서는 실패 했다고 지적합니다. 북한경제 전문가인 한국의 기은경제연구소 조봉현 연구위원의 말입니다

[녹취: 조봉현 연구위원] “정치, 군사적으로 강성대국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실제로 경제 분야가 더 중요한데, 경제는 더 악화됐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강성대국보다는 한 단계 낮춰서 강성국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김정일 정권 때 시작된 북한의 식량난과 물가난, 외화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 (WFP)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서는 어린아이와 노인 등 전체 인구의 30%에 해당되는 6백만여 명이 하루 3백그램의 식량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 발생한 홍수와 태풍으로20만 명이 넘는 수재민이 발생했습니다.

또 지난 해까지 1kg에 2-3천원 선이었던 북한 내 쌀값은 현재 5천원까지 치솟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탈북자 김은호 씨의 말입니다.

[녹취: 탈북자 김은호] “쌀값이 더 올랐어요. 김정일 시대에는 3천원대였는데 김정은 시대 들어서 5천원까지 올랐어요.”

노동자의 평균월급이 3천-5천원 선인 점을 감안하면 북한 주민들은 극심한 물가 오름세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김정은 정권은 집권한 지 열달이 다 되도록 이렇다할 경제개혁 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서울의 민간단체인 북한전략센터의 김광인 소장은 북한 당국이 경제개혁에 필요한 준비가 덜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광인 소장] “여건이 성숙돼야 하는데 지금 북한은 여건이나 준비가 전혀 안돼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농자재와 농기계를 국가가 뒷바침 해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못됩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 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안되는 것이죠.”

북한이 거창한 구호를 내세웠다가 성과 없이 끝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북한은 1980년대에도 ‘사회주의 경제건설 10대 전망’을 내놓고, 10년 안에 주민들에게 이밥에 고깃국을 먹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그로부터 2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식량난을 겪고 있습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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