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회고록을 냈습니다. 재임 시절 북한의 핵 문제와 미국인 억류 사태 등을 해결하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과 일화들이 생생히 담겼습니다. 백성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많은 주민이 비참한 가난 속에 사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전체주의 국가”
“기아에 허덕이면서도 빈약한 자원을 핵무기 개발과 이웃과의 대적에 소진하는 정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10일 출간된 새 회고록 ‘힘든 선택들’에서 북한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한국을 “억압적이고 호전적인 북쪽 이웃 곁에 사는 부유한 선진 민주국가”로 표현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북한에 대한 회고는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이후 진행된 핵 문제 해결 노력이 무산되는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수많은 약속이 오갔지만 결국 북한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추출을 막지 못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집권 초기와 맞물린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묘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당시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부르며 정책을 급선회했고, 이후 북한이 인접국을 위협하는 상당수 핵무기를 제조한 것이라며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어 국무장관 시절 미-북 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 등을 대가로 북한에 비핵화를 촉구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북한이 거부할 경우 대북 압박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고, 특히 중국의 동참을 유도하려는 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전략은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 유엔의 추가 대북 제재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성과로 이어졌다고 떠올렸습니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09년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여기자 2명을 석방시키기 위해 미국 정부가 기울였던 노력도 상세히 기술했습니다.
당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앨 고어 전 부통령,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등이 석방을 이끌어내기 위한 대북 특사로 거론됐었지만 북한은 이미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1994년 김일성 사망 때 위로 편지를 보낸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전직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국제적 관심도 끌고 싶었을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남편과 이 문제를 논의했고, 그가 여기자 석방 임무를 기꺼이 맡기를 원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다만 북한의 나쁜 행동을 보상하거나 동맹국들의 우려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백악관 내부에 적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북한에게도 미국인 석방을 정당화할 이유가 필요했고 이 문제가 북한과 걸린 다른 사안에까지 악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직접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고 밝혔습니다.
또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방북단이 김정일 위원장과 사진을 찍을 때 지었던 무표정한 표정 역시 사전각본에 따른 것이었다는 사실도 소개했습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 직후 중국이 보였던 애매한 태도를 상기시키며 중국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안정을 내세우는 중국 당국이 정작 안정을 엄청나게 흔든 노골적인 공격을 암묵적으로 용인했다는 비판입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을 소개하며 한국을 비롯해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완 등을 국민에게 막대한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는 민주국가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전세계에서 가장 폐쇄되고 억압적인 나라로 남아 있다며, 김정은 체제 하에서 상황이 오히려 더욱 악화됐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
“많은 주민이 비참한 가난 속에 사는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전체주의 국가”
“기아에 허덕이면서도 빈약한 자원을 핵무기 개발과 이웃과의 대적에 소진하는 정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10일 출간된 새 회고록 ‘힘든 선택들’에서 북한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한국을 “억압적이고 호전적인 북쪽 이웃 곁에 사는 부유한 선진 민주국가”로 표현한 것과 대조적입니다.
북한에 대한 회고는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 이후 진행된 핵 문제 해결 노력이 무산되는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수많은 약속이 오갔지만 결국 북한의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추출을 막지 못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집권 초기와 맞물린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묘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당시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부르며 정책을 급선회했고, 이후 북한이 인접국을 위협하는 상당수 핵무기를 제조한 것이라며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어 국무장관 시절 미-북 관계 정상화와 평화협정 체결 등을 대가로 북한에 비핵화를 촉구하면서도 실현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북한이 거부할 경우 대북 압박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고, 특히 중국의 동참을 유도하려는 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전략은 2009년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 유엔의 추가 대북 제재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이끌어 내는 성과로 이어졌다고 떠올렸습니다.
클린턴 전 장관은 2009년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 여기자 2명을 석방시키기 위해 미국 정부가 기울였던 노력도 상세히 기술했습니다.
당시 지미 카터 전 대통령, 앨 고어 전 부통령,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등이 석방을 이끌어내기 위한 대북 특사로 거론됐었지만 북한은 이미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1994년 김일성 사망 때 위로 편지를 보낸 클린턴 전 대통령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전직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국제적 관심도 끌고 싶었을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남편과 이 문제를 논의했고, 그가 여기자 석방 임무를 기꺼이 맡기를 원했다고 회고했습니다.
다만 북한의 나쁜 행동을 보상하거나 동맹국들의 우려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백악관 내부에 적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북한에게도 미국인 석방을 정당화할 이유가 필요했고 이 문제가 북한과 걸린 다른 사안에까지 악영향을 줘서는 안 된다고 판단해 직접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고 밝혔습니다.
또 클린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방북단이 김정일 위원장과 사진을 찍을 때 지었던 무표정한 표정 역시 사전각본에 따른 것이었다는 사실도 소개했습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 직후 중국이 보였던 애매한 태도를 상기시키며 중국의 모순이 그대로 드러난 사례라고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안정을 내세우는 중국 당국이 정작 안정을 엄청나게 흔든 노골적인 공격을 암묵적으로 용인했다는 비판입니다.
클린턴 전 장관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을 소개하며 한국을 비롯해 일본,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타이완 등을 국민에게 막대한 경제적 혜택을 제공하는 민주국가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전세계에서 가장 폐쇄되고 억압적인 나라로 남아 있다며, 김정은 체제 하에서 상황이 오히려 더욱 악화됐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