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이 열린 톈안먼 광장은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공간입니다. 중국 근대사의 큰 획을 그은 역사적 행사들이 이 곳에서 열렸는데요, 한국 언론들은 특히 김일성 북한 주석이 과거 마오쩌둥과 함께 섰던 톈안먼 성루에 박근혜 대통령이 자리한 것은 한-중 관계의 변화를 상징한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김영권 기자가 톈안먼 광장의 역사를 되돌아 봤습니다.
중국이 3일 군사굴기를 과시한 톈안먼 광장은 중국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입니다.
명나라 영락 18 년인 1420년에 승천문으로 세워졌다가 1651년 청나라 순치 때 ‘천하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의미의 현 톈안먼으로 재건됐습니다.
100만 명 이상을 넉넉히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급의 광장 규모 때문에 이 곳에서는 닫혀있던 자금성 문이 열린 뒤 중국 근대사의 역사적 행사들이 많이 열려 왔습니다.
1919년 반봉건주의 혁명운동인 5.4운동이 이 곳에서 시작됐고 중국에 사회주의 국가를 선포하는 첫 열병식이 1949년 10월 1일 역시 톈안먼 광장에서 열렸습니다.
당시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와 주더 등 혁명 동지들과 톈안먼 성루에 올라 “중국의 인민이 일어섰다”고 선언했습니다.
[녹취: 마오쩌둥] “중국어…”
마오쩌둥은 이후 1959년까지 열병식을 계속했고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1954년과 1959년 두 차례 초청돼 톈안먼 성루에서 열병식을 지켜봤습니다.
바로 그 장소에서 김일성 주석의 손자인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아닌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3일 중국 지도자와 나란히 서서 열병식을 참관한 겁니다.
이는 달라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과 한-중 관계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관측통들은 지적합니다.
중국의 톈안먼 광장 열병식은 1959년 이후 멈췄다가 덩샤오핑이 1984년 부활시켰습니다. 이후 개혁개방이 본격화되면서 건국 50주년인 1999년, 60주년인 2009년에 톈안먼 광장에서 열병식이 열렸습니다.
전례로 보면 중국의 열병식은 2019년에 열려야 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진핑 정부가 전승절 70주년을 맞아 중화민족의 부흥을 과시하는 이른바 ‘대국굴기’의 목적으로 열병식을 개최했다고 지적합니다.
국제사회에서 톈안먼 광장은 중국의 민주화 성지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989년 톈안먼 광장에서 정치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 등 시민들의 시위를 탱크 등을 동원해 무력으로 진압했습니다.
[녹취: 톈안먼 민주화 시위 소리]
이 유혈 진압으로 적어도 수 천 명이 사망했지만 중국 당국의 강경 조치로 중국 내부에서는 지금도 이 시위를 언급 조차 할 수 없습니다.
중국의 인권운동가들과 예술가들은 톈안먼이 공산당 정부의 업적 과시가 아닌 국민이 주인인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톈안먼’이란 단어의 의미 그대로, 국민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