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태권도연맹(ITF) 수장 자리에서 물러난 북한의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지난 13년간의 ITF 활동을 회고하고 향후 거취에 대해 밝혔습니다. 북한 체육계 최고위 인사인 장 위원은 8일 VOA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남북 간 태권도 협력을 가속화시킨 것을 재임 시 큰 성과로 꼽으면서 올 가을 남북한 태권도인들의 교차 방문 계획을 처음으로 공개했습니다. 특히 북한 선수를 포함한 ITF태권도의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주요 과제로 꼽고, 태권도 종목의 올림픽 잔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말했습니다. 장 위원은 또 올해 초 심장 발작으로 위험한 고비를 넘긴 사실을 이례적으로 밝히면서, 자신의 뒤를 이어 IOC에서 활동할 북한 체육계 인사가 몇 명 거론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장웅 IOC 위원과의 인터뷰를 전해 드립니다. 백성원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장웅 명예총재님, 안녕하십니까?
장웅 명예총재) 네, 뭐 썩 시원치는 않지만 그럭저럭 지내고 있습니다.
기자) 글쎄요, 시원치 않다는 건 아무래도 건강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건 잠시 후에 제가 다시 여쭤보도록 하고요. ITF 신임 총재가 최근에 선출됐고요. 장 총재께서는 종신 명예총재가 되셨는데, 이렇게 조직의 공식 수장 자리를 물려주시게 된 배경은 뭔가요?
장웅 명예총재) 기본은 한 2~3년 전부터 빨리 이제 젊은 피가 들어와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제 일생 신조 자체가 제 때 물러나야 한다, 그것이 사회에 기여하고 가족에게도 기여하고 동무들에게도 기여하는 것이라는 신조입니다. 그런데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갑자기 건강이 좀 나빠졌습니다. 갑작스러운 사망이라든가 이런 일이 생기면 좀 혼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한 겁니다.
기자) 지금 극단적인 말씀까지 하셨는데, 물론 건강 문제가 굉장히 개인적인 문제긴 합니다만, 구체적으로 심장이 많이 안 좋으시다, 이런 얘기도 들었습니다.
장웅 명예총재) 예. 정상이었는데, 올해 2월 갑자기 심장 발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구급병원에 앰뷸런스로 실려가고 뭐 좀 소동이 있었습니다.
기자) 평양에서 수술도 받으셨다는 얘기도 있었는데요.
장웅 명예총재) 예, 예. 들어가서 급한 수술은 했습니다.
기자) 알겠습니다. 물론 말씀 드린 대로 건강이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지만 워낙 국제적으로 활동해오신 분이라 이게 너무 사적인 영역으로만 남기도 좀 어려운 것 같아서 제가 외람된 질문을 좀 드려봤고요.
장웅 명예총재) 예, 괜찮습니다.
기자) 한국에서는 특히 북측의 대표적인 스포츠 외교관인 장 총재께서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나시면 남북 스포츠 교류, 더 나아가서 미국, 이런 국제사회와의 활발한 교류 역시 뒷걸음질 치는 건 아닌가, 이런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거든요. 괜한 걱정인가요?
장웅 명예총재) 예, 그건 공연한 우려고, 공연한 의구심입니다. 제가 뭐 우리나라를 대변하는 그런 스포츠 외교관은 되지 못하는 거고, 그저 한 명의 병사로서 일을 열심히 하느라고 했습니다. 그러다 나니까 국제적인 지위도 좀 구축이 되고 인맥이 많이 형성됐으니까 다른 데서 보는 시각에서는 평양의 장웅 IOC 위원이 체육을 대변하다시피 대외활동을 한다 그러는데 실상은 그렇진 않습니다. 지금 젊은 세대들 많이 나왔고, 제가 죽거나 없어진다고 해서 공화국에서의 스포츠 외교가 단절되거나 잘못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기자) ITF 총재를 2002년부터 하셨으니까 거의 13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 자리에 계셨는데요. 오랫동안 조직을 이끌어오시면서 어려웠던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이 문제만큼은 정말 힘들었다, 이렇게 기억되는 일들이 있으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장웅 명예총재) 처음에 최홍희 총재님 유언으로 해서 국제태권도연맹(ITF) 고위 상층 6명을 최홍희 총재 세상 떠나기 한 3일 전 침대 옆에 불러놓고 유언을 남기는 자리에 제가 참가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뜻밖에, 제가 농구선수였는데 태권도라는 전혀 파악 없는 여기에 발을 들여놨습니다. 최고의 난관이 ITF 상층 인물들과 민족협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처음에 오니까 왜 북조선 체육 부위원장, 그러니까 차관이죠, 서방에서는 차관하던 농구 선수 출신이 왜 ITF 수장이 되느냐, 이런 문제들이 좀 많았습니다. 이런 뒷소리도 많았고. 걸음걸음 그저 장애가 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3년 되니까 그들 모두의 마음을 제가 얻었습니다. 심장을 얻었다, 다시 말하면. 인생 말년에 시험 친 거나 같습니다. 마음 얻는 게 가장 곤란했습니다.
기자) 예, 그런 어려운 문제들이 있었고, 반면에 어렵더라도 좀 문제가 풀려서 결국은, 성과로 남게 된 일들, 그래서 또 보람을 느꼈던 순간들, 10년 넘는 기간 동안 있으셨겠죠, 당연히.
장웅 명예총재) 우선 제일 큰 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내가 약자로 ‘ITF’ 프레지던트가 됐다고 그러니까 처음에 이거 너 국제테니스연맹 회장 됐냐, 다 그럽니다. ITF라는 종족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이제는 그들 속에 ITF하면 테니스가 아니라 국제태권도연맹이라는 게 각인돼 있습니다. 이게 저로서는 가장 자부심을 갖는 일입니다.
기자) ITF 인사들과 얘길 나눠보니까 특히 태권도계의 극심한 반목, 또 갈등, 이런 부분들을 가라앉히는데 장 총재께서 큰 역할을 하셨다, 이렇게 평가를 하는 얘기들을 들었는데요. 특히 한국 주도의 세계태권도연맹, WTF와 뭔가 협력의 물꼬를 트는데 성과가 몇 년 동안 있었죠, 분명히?
장웅 명예총재) 가장 중요한 것이 왜 태권도가, 민족도 분열이 됐는데 태권도까지 분열돼 있냐, 이겁니다. 이게 제가 처음 ITF라는 황무지, 제가 전혀 알 수 없는 데 발을 들여놓고 생각한 겁니다. 그래서 당시 총재로 계시던 김운용 박사하고 토론을 했습니다. 이거 태권도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그러면 이제 후대에 우리가 지탄을 받는다, 후대에. 김운용 선생이 저보다 5년 위인데, 김운용 선생님 대에 이게 뭔가 해결이 나야 되지 않겠냐,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40년 역사에 처음으로 2003년 대구 유니버시아드 할 때 8월 20일인가 MOU(양해각서)를 만들어서 사인을 했습니다. 이게 첫 번째 문건이고, 다음 번 문건이 조정원 박사가 WTF 총재로 된 다음에 2006년 도하에서 12월2일 아시안게임 때 다시 MOU를 또 사인을 했습니다. 그 다음에 가장 큰 것이 지난해, 구체화된 것이 지난해 8월21일 남경에서 제2차 청년올림픽 경기 기간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 관리가 참가한 데서 MOU가 아니라 의정서를 채택한 겁니다. 의정서는 법적 구속력이 있죠. 그래서 의정서 채택한 것이 결국 두 태권도연맹 사이의 불화를 가시고 화목을 도모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방금 말씀하신 8월달 WTF와 주고받은 의정서, 거기서 사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건, 북측 선수들을 포함한 ITF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 가능성이 열렸다 라는 점이었는데, 당장 목표로 잡았었던 2016년 브라질올림픽은 좀 이르다는 말씀은 지난 번에 저희하고 인터뷰에서 하셨고요. 그럼 2020년 도쿄올림픽 때까진 뭔가 좀 진전이 있을까요?
장웅 명예총재) 도쿄 올림픽 경기 문제는 지금 IOC와 WTF와 협상이 추진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참가하겠냐, 이거는 좀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도쿄 올림픽 때야 꼭 WTF, ITF 같이 참가하게 해야 합니다.
기자) 복잡한 문제라고 방금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질문을 사실 많이 받게 되는 데요. 그게 ITF는 독자적인 올림픽 출전을 추진하는 반면에, 다시 말해서 ITF가 WTF 옷으로 갈아입지 않고 ITF 간판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걸 그대로 달고 올림픽에 출전하겠다 라는 입장인 반면에 WTF는 그건 아니고, WTF라는 우산 아래 ITF가 합류하는 방식, 그런 방식으로 올림픽에 출전한다, 이런 차이점이 있는 거 아닌가요?
장웅 명예총재) WTF라는 우산 아래 참가해도 이건 방법이 없습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의 현재 인정 연맹이 28개이기 때문에, 그 인정된 연맹 28개 안의 범위에서 세부종목을 늘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WTF 모자를 쓰고도 레슬링처럼 두 개의 종목, 두 개의 세부종목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런 여유가 있습니다. 이건 이제 아마 IOC와 WTF와 토론을 하면 크게 문제될 거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여전히 ITF가 WTF 옷으로 갈아입지 않고 가능한 방법이 있다라는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장웅 명예총재) 예, 그겁니다.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움직임이 지금 많습니다. 이렇게 안 하면 WTF도 불리하고 ITF도 불리하다.
기자) 그 부분에 대해선 WTF도 공감을 한 상황인가요?
장웅 명예총재)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영원한 종목은 없습니다, 이제는.
기자) 알겠습니다. WTF와 합의한 의정서 가운데 당장 시범단 파견 부분은 현실화됐고요, 지난 5월에 러시아에서 열린 WTF 주최 세계대회에 ITF 선수들이 무대에 섰었고요. 저도 관심 있게 지켜봤습니다만, 그럼 이게 정례화되는 겁니까?
장웅 명예총재) WTF가 다시 한번 요전에 조정원 총재 선생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무주에 초청하는 편지를 보내왔고, 올해 10월이나 11월에 성사시켜 보자 하고 보내왔습니다. 그렇게 하고 WTF 시범단을 평양에 파견하고, 이런 거 뭐 크게 힘들 거 없지요, 그거는.
기자) 그럼 조직의 공식 경기는 사실 2년 남았는데, 그 때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올해 안에라도 남측, 북측 주도하에 두 태권도연맹의 상호 방문이 이뤄질 수 있다, 이런 얘긴가요?
장웅 명예총재) 예, 예.
기자) 그럼 구체적으로 말씀을 해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러니까 ITF는 서울로 가고, WTF는 평양에서, 이런 그림이 연출될 가능성이네요.
장웅 명예총재) 그런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자) 어느 정도 얘기가 진척이 됐습니까?
장웅 명예총재) 이제 아마 WTF에서 소식이 있을 겁니다. 먼저 초청을 했으니까 소식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먼저 초청을 했으면, ITF 쪽에서도 답장을 하셨겠죠, 물론? 긍정적으로 답장을 하셨나요?
장웅 명예총재) 예, 긍정적으로, 아 그거 좋은 것이다, 의정서에 있는 건 우리는 다, 뭐냐 하면 ‘프로토콜 오브 어코드’에 있는 건 다 집행해야 된다는 입장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건 우리 둘이만 한 게 아니라 IOC 위원장, IOC 관리들이 참가해서 사인한 것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시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 태권도 것들 보라, 문건에는 다, 의정서에는 사인해 놓고 또 옥신각신 한다, 이런 말 들으면 안되죠, 이젠.
기자) 물론 뭐 구체적인 부분까지 아직 얘기가 오가진 않았겠지만 한 팀 구성은 몇 명으로 한다, 혹은 ITF 시범단 내에 북측 선수들뿐만이 아니라 지난번 시범단 구성원처럼 다른 나라 선수들 몇 명이 들어갈 수도 있고요. 그런 형식적인 문제를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계시는 게 있지 않을까요?
장웅 명예총재) 그건 이제 새 총재가 아마 할겁니다.
기자) 네. 10월 혹은 11월달에 순차방문이 됩니까, 아니면 동시방문이 됩니까? 그것도 여전히 미정인가요?
장웅 명예총재) 제 생각에는 순차방문이 될 것 같습니다.
기자) 왜냐하면 지난번 박근혜 대통령의 8.15경축사에서도 남북간 문화교류를 열거하면서 그 안에 태권도라는 예시를 분명히 제시했기 때문에, 그 때 이미 이걸 염두에 두고 한 말씀이 아니었을까요?
장웅 명예총재)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건 남쪽에서 WTF와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그 내용은 전 모르겠습니다.
기자) 네. 이제 지난달 26일부로 ITF 종신 명예총재가 되셨고, 원칙적으로는 여전히 이 자리가 조직의 최고위직인 걸로 알고 있거든요. 앞으로 어떤 부분에 특히 힘을 기울이실 계획이신지요?
장웅 명예총재) 그거 뭐 최고위직은 아니고, 현직 총재는 아니니까. 그저 물러나는 총재니까 선물로 하나 준 것이고. 계속 IOC와 WTF와 일해 주십사 하는 부탁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런데 IOC 위원은 사실 1999년 이전에 선출된 경우는 정년이 여든 살 까지라, 총재님 연세를 고려하면 3년 뒤에는 그 자리에서 물러나셔야 되는 게 맞는 건가요?
장웅 명예총재) 예, 물러나면서 명예총재로 넘어갑니다.
기자) 아, 그렇습니까?
장웅 명예총재) 예, 명예총재는 명예총재로서 또 자기 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표결권만 없고 발언권도 있고 대우도 그대로고 회의도 그대로 참가합니다.
기자) 그렇다면 북측에서는 그 이후를 위한 준비, 다시 말해서 장웅 IOC위원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새 올림픽위원회 위원 추천 작업을 하고 있진 않나요?
장웅 명예총재) 아마 내적으로 준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많이 건의도 했고.
기자) 리용선 총재께서 올해 북측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단 사실을 얼마 전에 직접 들었는데요. 이번에 또 ITF라는 국제 스포츠 조직의 수장이 되셨고, 그래서 혹시나 리 총재가 북측 내부에서는 IOC 위원 차기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거 아닌지, 그 부분이 사실 좀 궁금했습니다.
장웅 명예총재) 그거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아, 그건 아닌가요?
장웅 명예총재) 예, ITF 총재로서 IOC 위원은 좀 힘듭니다. 아직 인정 종목이 아니기 때문에 그건 힘듭니다. 후임자로 거론되는 젊은이들은 많습니다. 몇이 있습니다.
기자) 저희가 들어서 알만한 분들인가요?
장웅 명예총재)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습니다. 지금 맹활동하는 젊은이들 속에서, 이 스포츠계 젊은이들 속에서 아마 후임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알겠습니다. 앞서도 잠깐 언급을 하셨는데요. 태권도도 한 때 올림픽에서 퇴출 위기를 겪었었고요. 그런 위기가 다시 올 수도 있다, 이런 말씀을 언제 하셨고, 앞서 인터뷰에서도 그런 부분을 잠시 비치셨습니다.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좀 더 설명을 해 주시겠습니까?
장웅 명예총재) 우선 IOC 기준에서 이탈하지 말아야 됩니다. 탈선하지 말아야 됩니다. 경기뿐 아니라 연맹 운영, 관리, 이 모든 면에서 IOC 기준에서 탈선하면 안됩니다. 레슬링이 쫓겨난, 문 밖에까지 거의 나가게 된 게 바로 거기에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어느 누구나 잘못하면 쫓겨난다 이겁니다.
기자) 예. ITF 명예총재로서, 동시에 IOC 위원으로서 제안하는 태권도의 올림픽 잔류 전략이라고 할까요, 그런 건 어떤 게 있을까요?
장웅 명예총재) 협조를 잘 하고, 우리가 IOC 위원장과 한 약속을 잘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기자) 그 약속이라는 게 ITF와 WTF의 협력 부분 말씀하시는 건가요?
장웅 명예총재) 네. 내적으로 IOC 위원장이 조정원 총재한테 한 얘기가 있고, 잘 해 나가라고. 올림픽 이념에 맞게 타협하고 화목해라, 그겁니다. 그리고 올림픽에도 분쟁을 일으키지 말고, 서로 올림픽에도 들어오도록 서로 노력을 해라, 그겁니다.
기자) 알겠습니다. ITF 명예총재로서 거처는 그럼 어디가 됩니까? 지금은 일단 본부가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 살고 계신데, 계속 빈에 주재를 하시는 건지, 아니면 평양으로 복귀를 하시는 건지?
장웅 명예총재) 예, 당분간 (빈에) 있고, (신임 총재가) 자리 잡을 때까지. 새 총재가 오면 평양으로 돌아가야죠.
기자) (신임 총재가) 다시 오는 시기가 6개월 뒤로 제가 들었는데, 그럼 6개월 뒤에 평양으로 복귀하시나요?
장웅 명예총재) 늦으면 6개월, 빠르면 그저 한 3개월, 그렇게 보겠습니다.
기자) 그러나 ITF 내부에서는 IOC와의 협력 문제도 있고, 그런 연결 고리 역할로서 장 명예총재께서 계속 빈에 거주하시기를 원하는 목소리도 있는 거 같습니다.
장웅 명예총재) 예, 그게 좀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답을 좋게 해 줍니다. 연구하겠다 하고.
기자) 연구하고 계신가요?
장웅 명예총재) 연구하겠다 하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얘기합니다. 여기 있으면 내가 또 힘이 든다, 너희는 여름에 전부 수영하러 가고, 겨울엔 스키 타러 가고, 나는 일요일도 없이 12년 11개월 27일인가 내가 일했는데, 이 동안에 내가 휴식한 일요일은 꼭 하루다, 올해 2월22일 일요일입니다. 21일날 심장 발작하고 다음날 누워있으라 해서 하루 누워있은 게 다다. 그럼 말 못하죠.
기자) 13년 동안 그러면 하루 쉬셨군요. 그나마 병가로.
장웅 명예총재) 하루 쉬었습니다, 하루. 비행기타고 여행할 때가 그저 거의 휴식하는 거나 같습니다.
기자) ITF 총재로 계시면서 북측 ‘조선태권도시범단’의 미국 공연을 성사시키셨죠?
장웅 명예총재) 네, 두 차례.
기자) 예, 2007년, 2011년, 미국 태권도타임스 정우진 대표와 공동 노력을 기울이셨던 걸로 아는데, 북측 시범단의 두 차례 미국 방문, 어떤 의미가 있었다고 회고하시나요?
장웅 명예총재) 미국 인민들에게, 미국이, 제일 싫다고 그러면서 미워하는 북조선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다 하는 걸 보여줬습니다. 이게 성과입니다, 이게. 제가 1983년부터 미국을 10여차례 다녔는데, 제가 10여차례 다닌 거 보다 결국은 애틀랜타 올림픽 참가한 거 하고 시범단 간 것이 미국 시민들에게 주는 인상, 역량, 이것이 수백 배 컸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사실 정치 문제와 스포츠 문제는 또 별개이기 때문에 정치 문제에 대해선 또 다른 반응들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게 또 당연한 거고요. 그 시범단 방미가 말씀하신 대로 두 차례 성사가 된 뒤에 지금 뭐 4년 넘게 추진은 하고 있는데 이뤄지지 않고 있거든요. 어떤 문제가 가장 걸림돌이죠?
장웅 명예총재) 뭐 걸림돌이라고는 별로 없습니다. 지금 또 추진을 하는 것 같은데, 정우진 사장 선생이 추진을 하고, 태권도 시범단, 조선태권도시범단의 미국 방문은 지금 추진 중에 있는 거 같습니다. 11월경 될 것 같은데 거기 힘든 게 뭐 없죠. 사증 신청하고, 사증 주고 가고, 그 다음에 또 미국 태권도인들 평양 오고 답례하고 하면 되는 겁니다.
기자) 예. 항간에선 사실 (평양에서) 당 창건일, 중요한 행사가 있기 때문에 10월 중에 혹시 또 장거리로켓 발사나, 이런 군사적인 문제 때문에 문화교류가 또 막히지 않을까, 이런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장웅 명예총재) 그건 글쎄 그 때가서 봐야 아는 거고. 로켓 문제도 얘길 하자면 할 얘기가 있는데 그건 뭐 정치 문제니까 구태여 여기서 섞어놓을 필요는 없는 거고.
기자) 끝으로 향후 남북간 스포츠 교류 전반에 대한 장 명예총재님의 바람을 좀 전해주시죠.
장웅 명예총재) 스포츠 교류가 최근에 활발히 됐고, 공화국에서 정치하고 스포츠 명백히 갈라서 지금 하고 있죠. 이번에 보다시피 정치가 극한 상황에 갔을 때도 유소년 팀 남쪽에서 두 팀이 와서 평양 5.1경기장에서 경기를 제대로 다 하고 마치고 돌아갔습니다. 이거 분명히 정치, 스포츠를 갈라서 잘 하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이제 여러 가지 행사들이 있으니까, 또 최근 전반적인 움직임을 보게 되면 스포츠 교류도 될 수 있고, 스포츠 협력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예. 장 총재님, 중요한 직책 하나를 이제 내려놓으셨는데, 앞으로도 건강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장웅 명예총재) 예,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나 덜어놓으니까 얼마나 마음이 가벼운지, 우선 부담이 없어지니까 한결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