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미국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미국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김현숙 기자 나와 있습니다.
진행자) 오늘은 어떤 주제에 대해 알아볼까요?
기자) 존 베이너 미 연방 하원의장이 금요일(25일) 돌연 하원의원직 사퇴를 발표했습니다. 미국을 방문 중인 로마 가톨릭 교회의 수장, 프란치스코 교황이 상, 하원 합동의회에서 연설한 후 바로 다음 날 나온 결정이라 더욱 놀라움을 안겼는데요. 오늘은 존 베이너 하원의장이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진행자) 먼저, 베이너 의장이 정치인으로서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살펴볼까요?
기자) 네, 베이너 의장은 1984년 미 중서부 오하이오 주 의원에 당선돼 활동하다가 1990년에 오하이오 주를 대표하는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중앙정치계에 첫발을 디디게 됩니다. 당시 베이너 의원을 포함해서 처음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공화당 소속 의원이 7명이었는데요. 이들 새내기 의원들은 하원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면서 ‘Gang of Seven’ 즉 ‘7명의 패거리’란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당시 하원에서 문제가 됐던 은행비리와 우체국 비리를 파헤치고, 하원 지도부가 논란이 되는 사안들에 대해 언론과 국민 앞에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촉구했었습니다.
진행자) 하원의원의 주된 임무가 법안을 만드는 건데, 베이너 의원이 추진한 대표적인 법안에는 뭐가 있을까요?
기자) 네, 베이너 의장은 13선 의원으로, 25년간 하원에 몸담으면서 하원 농업위원회, 관리 위원회 등에 소속돼 관련 법안을 주도했고요. 2001년에서 2006년까지 하원 교육, 노동 위원회 의장으로 활동하게 되는데요. 미국의 유명한 공교육 개혁법인 No Child Left Behind Act, 즉 ‘낙제학생방지법안’의 공동작성자로 이름을 올리며 교육개혁을 주도하게 됩니다. 결국 이 낙제학생방지법안은 초당적인 지지로 의회를 통과했고요. 2002년 당시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베이너 의장의 작은 고향 마을에 있는 한 공립고등학교에서 이 낙제학생방지법안에 서명해 화제가 됐었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베이너 의장 하면 의원 중에서도 눈물이 많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교황을 만났을 때도 몇 번이나 눈물을 보였죠?
기자) 맞습니다. 그런데 베이너 의장이 걸어온 인생사를 들어보시면 ‘아메리칸 드림’, 미국의 꿈을 이야기할 때마다, 또 미국인들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마다 왜 눈물을 보였는지 이해가 좀 되실 겁니다. 왜냐하면 베이너 의장은 밑바닥부터 시작한 자수성가형 정치인이기 때문이죠.
진행자) 베이너 의장의 개인사가 아메리칸 드림의 표본이 되는 가 보군요?
기자)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이너 의장은 1949년 오하이오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요. 성에서 알 수 있듯이 부모님이 독일계 이민자 출신입니다. 베이너 의장은 12형제 중 둘째인데요. 베이너 의장의 부인인 데비 여사가 베이너 의장과 연애 시절 그의 집을 처음으로 찾아가던 날, 길에 아이들이 많은 걸 보고 동네 아이들이냐고 물었더니 베이너 의장이 ‘다 내 동생들이다.’ 라고 대답해서 깜짝 놀랐다는 고백을 한 적도 있습니다. 베이너 의장은 이렇게 형제도 많은 데다 그렇게 부유한 가정이 아니다 보니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에서 바닥을 닦고, 음식을 나르며 자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미식축구 선수로도 활약했고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대학에 진학했지만, 밤에는 야간 청소부를 하며 대학생활을 이어갔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 때 부인인 데비 여사를 만나게 됐고 이후 두 사람은 40여 년간 부부로 살면서 슬하게 두 딸을 뒀습니다.
진행자)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정치계에 입문하게 된 건가요?
기자) 네, 베이너 의장은 대학 졸업 후 플라스틱과 포장 관련 일을 하는 작은 사업체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마을 입주민 대표회의의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처음으로 공직에 오르게 되고요. 이후 오하이오주 의회를 거쳐 연방하원까지 진출하게 되죠.
진행자) 연방하원으로 출마하게 된 게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다고요?
기자) 맞습니다. 그런데 여기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지지자들이 연방 하원의원에 출마하라고 추천을 했지만 베이너 의장은 곧바로 마음을 결정하지 못하고 한 달간 시간을 달라고 한 후 매일 아침 성당에 가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베이너 의장이 어릴 때부터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거든요. 한 달간의 기도 끝에 하원의원 도전을 결심하고 또 선거에서 당선되면서 중앙 정계에 진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진행자) 성당에서 한 달간 기도한 끝에 연방 하원의원이 될 수 있었던 베이너 의장, 그런데 의원 직을 그만둔다고 밝히기 직전에는 또 교황을 만나지 않았습니까?
기자) 맞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4일 미 연방의회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했는데요. 교황의 이번 연설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존 베이너 하원의장의 초청으로 이뤄졌습니다. 베이너 의장은 하원의장이 되기 전부터, 그러니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부터 무려 20년 동안 교황의 미 의회 연설을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하는데요. 오랜 노력이 결실을 이뤄서 그런지, 이날 무척 감격한 모습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연설하는 동안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기도 했고요. 감정에 북받친 모습을 보여서 화제가 됐습니다.
///Sting///
진행자) 미국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존 베이너 미 연방 하원의장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베이너 의장이 다음 달 말로 하원의원과 하원의장직을 모두 내려놓는다고 밝혔는데요. 사실 하원의장직은 매우 높은 자리 아닙니까?
기자) 맞습니다. 미 연방 하원의장은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에 이어 미국 정치 서열 3번째 자리입니다.
진행자) 베이너 의장이 이런 하원의장으로 선출된 게 지난 2011년이죠?
기자) 맞습니다. 베이너 의장은 1990년에 연방하원 생활을 시작한 이후, 공화당 의원총회 의장과 하원대표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했고요. 공화당이 하원의 다수당이 되면서 2011년에 하원의장에까지 오르게 됩니다.
진행자) 베이너 의장이 전임 하원의장이었던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으로부터 하원의장이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사용하는 ‘의사봉’을 건네받는 순간을 들으셨는데요. 베이너 의장은 투표 절차에서 241표를 얻어 173표를 얻은 낸시 펠로시 의장을 누르고 하원의장에 당선됐습니다. 공화당이 다수당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긴 했죠. 보통 다수당 지도자가 하원의장이 되거든요. 베이너 의장은 이때도 눈물을 보이며 감격해 했는데요. 하지만 이후 여러 가지 난제가 산적한 하원을 이끌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그리고 올해 초에 세 번째 하원의장 자리에 올랐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기자) 맞습니다. 베이너 의장은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공화당이 자신을 재추대하기로 의견을 모으면서 재임이 문제 없이 성공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강경 보수세력인 티파티를 중심으로 베이너 의장의 지도력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는데요. 티파티 의원들은 베이너 의장이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법이나 예산안 처리 등에서 강경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오바마 대통령과 타협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최근에도 일부 보수 의의원들로부터 하원의장 직에서 사퇴하라는 압박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진행자) 베이너 의장, 사퇴 이후에 앞으로 어떤 행보를 이어갈까요?
기자) 네, 베이너 의장은 의원직 사태를 발표하긴 했지만 그 이후 계획에 대해선 아직 계획을 밝히지 않았는데요. 사퇴 성명을 보면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식당 주인의 아들이었던 자신에게 기회를 준 미국에 감사하고 축복한다.’ 라고요. 베이너 의장은 정치계를 떠나지만, 많은 미국인은 베이너 의장을 정치인이기 이전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주인공으로 기억할 것 같습니다.
진행자) 네, 미국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사퇴를 발표한 존 베이너 미 연방하원의장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김현숙 기자 잘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