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을미년이 저물어 갑니다. VOA는 올 한 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주요 관심사들을 정리하는 특집보도를 준비했습니다. 남북관계, 북한 내부 권력구도, 미-북 관계, 북한인권 등 모두 네 차례에 걸쳐 보내 드리는 특집보도,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남북관계를 살펴봅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입니다.
한반도가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은 2015년,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컸습니다. 남북한이 모두 큰 의미를 부여하는 해인 만큼 경색 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던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란 희망적인 관측 때문이었습니다.
한국 박근혜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올해 신년사 발언입니다.
[녹취: 박근혜 대통령]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기반을 구축하고 통일의 길을 열어갈 것입니다.”
[녹취: 김정은 제1위원장] “중단된 고위급 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 해의 막바지에 다다른 지금, 남북관계는 북한의 도발과 대화, 교착 상태가 반복되면서 답보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지난 8월 북한의 비무장지대 (DMZ) 지뢰 도발로 야기된 군사적 대치 국면은 올 한 해 남북관계에서 가장 긴박했던 순간으로 꼽힙니다.
당시 준전시 상태를 선포한 북한 매체의 발표와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한국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녹취: 조선중앙TV] “김정은 동지께서는 전선 지대에 준전시 상태를 선포함에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하셨습니다.”
[녹취: 박근혜 대통령]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선조치 후보고하기를 바랍니다.”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5년 만에 벌어진 남북 간 교전으로 악화일로를 걷던 남북관계는 8.25고위 당국자 접촉을 계기로 극적인 전환을 맞게 됩니다.
북한의 최후통첩 마감 시한을 불과 2 시간여 앞두고 남북의 최고 지도자를 대신한 고위 정책결정자들이 43시간의 마라톤 협상 끝에 북한의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 약속이라는 합의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남북은 당국회담 개최와 이산가족 상봉 합의, 민간교류 활성화라는 3개 항에도 합의했습니다. 당시 한국 측 수석대표였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의 발표 내용입니다.
[녹취: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당국자 회담을 서울 또는 평양에서 빠른 시일 내에 개최하며 앞으로 여러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였다.”
한국 정부는 일관된 원칙으로 북한의 사과를 받아냄으로써 도발의 악순환을 끊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입니다.
[녹취: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북한은 불안과 위기를 조성하고 양보를 받아내 왔는데 우리 정부에서는 이것이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도 확인하였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남북이 현 정권 들어 처음으로 정례회담 개최에 합의함으로써 한반도 긴장 완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도발 후 먼저 회담을 제의하고 나흘 간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한 것은 1차적으로는 체제 위협으로 간주해온 ‘확성기 방송 중단’을 관철하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한국 국방부 군비통제차장을 역임하며 남북 군사회담 대표로 참석했던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원 센터장입니다.
[녹취: 문성묵 한국국가전략원 센터장] “북한이 확성기 방송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2000년대 초부터 계속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해왔어요. 천안함 폭침에 대한 5.24조치로 확성기를 세웠을 때 북한이 얼마나 반발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어요. 확성기를 과대평가할 필요도 없지만 확성기 자체가 (북한에게) 갖는 위력과 상징성이 상당하다고 봐야죠.”
한국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내년 5월 36년 만에 열리는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대외정세를 유리하게 가져가기 위한 의도도 반영된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8.25합의의 경우 지난 10월 북한의 당 창건 70주년을 계기로 한 중국과의 관계 회복 시도와 미사일 발사 자제, 그리고 미국에 대한 평화협정 논의 제의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방북 협의 등 일련의 유화적인 대외 행보 속에서 봐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8.25 합의에 따라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차질 없이 성사되고, 다양한 분야에서의 민간교류도 이뤄졌습니다.
한국 통일부에 따르면 올 한 해 북한을 방문한 한국 국민은 개성공단 관계자들을 제외하고 지난달까지 1 천800 명에 육박해 지난해에 비해 3배이자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풀릴 것이란 기대감도 잠시, 8년여 만에 재개된 1차 남북 당국회담이 후속 회담 일정조차 잡지 못한 채 성과 없이 끝나면서 남북관계는 또 다시 교착상태에 빠졌습니다.
금강산관광 재개부터 먼저 합의하자는 북한과 한국 국민의 신변안전 보장 등 선결조건이 해결돼야 한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이 팽팽히 맞섰기 때문입니다. 1차 남북 당국회담 수석대표로 나선 황부기 통일부 차관의 브리핑입니다.
[녹취: 황부기 통일부 차관] “관광 재개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합의문에 먼저 명시를 해야 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기 때문에 실질적인 협상에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하는 것은 내년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경제적 성과를 마련하고 선대에 중단됐던 교류협력 사업을 재개함으로써 통일 지도자로서의 업적을 선전하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했습니다.
도발과 대화를 반복하며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북한의 행보는 1년 내내 지속됐습니다.
연초 김정은 제1위원장의 신년사를 통해 남북정상회담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관계 개선 의지를 밝힌 북한은 한국 정부의 대화 제의에는 응하지 않은 채 미국과 한국의 연합군사훈련과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 유엔 북한인권 서울사무소 개소 등에 강하게 반발하며 위협 수위를 높였습니다.
급기야 두 차례에 걸쳐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발사를 감행하며 핵 능력 다종화에 나섰습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과거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달리 김정은 제1위원장의 대남 행보는 강온 전술의 주기가 짧고 변동 폭이 커 예측이 어려운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이 같은 예측 불가능한 대남 행보로 광복 70주년을 맞아 남북관계 개선을 통해 통일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한국 박근혜 정부의 구상은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 11일 열린 1차 당국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북한에 제안한 통일 기반 조성을 위한 민생, 환경, 문화 분야 협력사업을 의제로 다루려 했지만 금강산관광 재개 문제에 막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러나 8.25합의를 계기로 마련된 남북 간 대화 동력을 살려 통일 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간다는 방침입니다. 지난 17일 관훈토론회에 참석한 홍용표 통일부 장관입니다.
[녹취: 홍용표 통일부 장관] “차근차근 8.25합의 모멘텀을 이어나가겠다는 방침 하에 앞으로 대남 전략을 어떻게 끌어가고 대화를 어떻게 끌어갈지를 검토해 나갈 것입니다.”
하지만 내년도 상반기 남북의 정치일정과 금강산관광과 5.24조치에 대한 양측의 첨예한 입장 차로 남북관계가 개선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입니다.
서강대학교 김영수 교수입니다.
[녹취: 서강대 김영수 교수] “금강산관광 재개는 5.24조치의 철회를 의미하므로 5.24조치 철회는 북한 사과 없이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한국 박근혜 대통령의 뜻입니다. 남북의 최고정상이 그렇게 합의하지 않는 이상 차관급이든 장관급 회담을 통해서는 합의할 수 없다고 봅니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내년 4월 한국의 총선과 5월 북한 당 대회 등으로 남북 모두 현재 국면을 유지하며 상황을 관리 하려 할 것이라며 내년 5월까지는 남북관계가 답보 상태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한국 내 일각에서는 북한이 내년 7차 당 대회를 앞두고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남북관계에서 일괄타결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김광진 연구위원입니다.
[녹취: 김광진 연구위원] “당 대회를 앞두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등 전략적 도발을 할 가능성과 함께 다른 한편으론 경제난과 당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기 위한 치적을 위해 대남, 대외 관계에서 적극성을 발휘해 실익을 챙기려는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 다른 한국 정부 당국자는 그러나 북 핵 문제의 진전 없이는 큰 틀에서의 남북관계 개선이 쉽지 않은 만큼, 향후 남북관계는 핵에 대한 북한의 태도 변화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