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4차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한 강력하고 실효성 있는 제재 조치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의 전직 고위 당국자들은 무기류와 사치품에 한정된 현행 제재의 범위를 확대해 이란식 제재와 같은 금융과 해운 제재 조치를 검토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곧바로 ‘중대한 추가 제재’를 담은 새로운 결의안 마련에 착수했습니다.
한국 정부 안팎에서는 북한이 지속적으로 핵 능력을 고도화 하고 있는 만큼 유엔 차원의 제재 외에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의 독자적인 제재의 수위와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21일 중앙통합방위회의를 주재한 한국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입니다.
[녹취: 박근혜 한국 대통령] “정부는 북한이 마땅한 대가를 치르도록 유엔 차원의 대북 제재를 비롯해서 가능한 모든 실효적 수단을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북 핵 6자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천영우 전 한국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WMD)와 사치품에 한정된 현행 제재의 범위를 확대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과거 이란에 가했던 ‘세컨더리 보이콧’ 수준의 강력한 금융 제재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천영우 전 수석은 핵 개발을 지속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북한으로 들어가는 현금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안보리 제재는 기존 리스트를 확대하는 수준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안보리 제재 이후 미국의 북한제재법을 통한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등 제3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고 봅니다. 몇몇 기업만 해서는 효과가 없고 이란에 했듯 북한 계좌를 가지고 있는 모든 은행들을 비롯해 북한으로 현금이 들어가는 모든 루트를 차단하는 포괄적인 제재를 취해야 북한에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세컨더리 보이콧’이란 정상적인 경제활동이라도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모든 기업이나 금융기관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조치입니다. 미국은 이 제재를 통해 이란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다는 평가입니다.
지난 12일 미국 하원을 통과한 대북 제재 강화법안은 북한의 회사나 금융기관을 직간접으로 지원하거나 이와 연관된 제3국의 금융기관들을 제재할 수 있도록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도입했지만 이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이나 불법 행위에만 국한돼 있습니다.
천영우 전 수석은 미국 등 국제사회는 그동안 이란에 가했던 제재의 10분의 1도 북한에 취하지 않았다며, 미국 정부는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을 제재하는 내용의 ‘세컨더리 보이콧’ 조치를 통해 북 핵 문제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중국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천영우 전 수석은 일각에서 제기하는 미국의 ‘BDA식 제재’의 경우 북한이 이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자금관리 방식을 변화시킨 만큼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녹취: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BDA 사태 이후 북한은 그런 제재를 피해 나갈 방도를 강구했어요. 계좌를 차명으로 여러 군데 개설해 숨겨둔 게 많기 때문에 어느 은행이 무슨 계좌를 갖고 있는지 밝혀내는 게 어렵고 다른 곳에 가서 계좌를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BDA식 제재는 해봐야 별 효과가 없다고 봅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2005년 9·11 테러 이후 제정된 애국법 311조를 적용해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BDA 은행을 ‘돈세탁 우려 금융기관’으로 지정해 북한의 통치자금 2500만 달러를 동결시켰습니다.
북한이 2007년 단계적 비핵화를 담은 2·13합의에 동의한 것도BDA의 제재 효과가 컸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북-중 접경지역 경제교류 실태와 거래관행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북-중 간 대금 결제는 국제사회의 금융 제재를 피할 수 있는 현금 결제와 물물교환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특히 국제사회의 금융 제재를 회피하는 방안으로 중국인 대리인을 활용한 계좌 개설이나 금융 업무를 대행하는 음성적 거래를 크게 늘린 것으로 보고서는 추정했습니다.
한국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북한의 통치자금이 중국 외에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에도 흘러가 있는 만큼 이들 국가들을 제재에 동참시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해운 제재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도 실효성 있는 제재 조치로 꼽힙니다.
한국 외교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이란에 취한 조치와 마찬가지로 유럽연합 국가들이 북한 선박이나 북한을 드나드는 제3국 선박에 대한 보험을 금지하고, 금수 대상 물품이 북한을 오가지 못하도록 한국과 일본 등 유관국이 북한을 드나드는 중국을 비롯한 제3국 선박에 대한 검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유엔 안보리는 북한에서 들어오고 나오는 의심화물이나 북한이 중재한 의심화물을 실은 선박에 대해서만 회원국들이 의무적으로 검색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권 문제도 북한 정권을 아프게 하는 제재 수단 가운데 하나로 거론됩니다. 북한인권 상황의 국제형사재판소, ICC 회부를 비롯해 핵과 미사일 개발에 국한된 현행 제재 대상을 인권 침해 관련자들로까지 확대하자는 겁니다.
한국 외교부 이정훈 인권대사입니다.
[녹취: 이정훈 외교부 인권대사] “이제 국제사회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만큼 뼈아픈 제재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실제 북한은 COI보고서가 발간된 이후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고 재작년 12월에 북한 인권 문제가 유엔 안보리 의제로 올라간 상황에서 제 생각엔 정치범 수용소와 해외 노동자 문제와 같은 북한 인권 문제를 포함한 포괄적이고 강력한 대북 제재 조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유엔총회는 2014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북한인권 상황을 ICC에 회부하도록 권고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이 같은 대북 제재가 성공을 거두려면 중국의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합니다. 북한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조치의 경우 중국 기업들이 주요 제재 대상이 되는데다, 북한인권 문제의 ICC 회부도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카드로 꼽히는 원유 공급 중단 역시 중국의 결단이 필요한 사안입니다.
김태우 전 한국 통일연구원장입니다.
[녹취: 김태우 전 원장] “대북 제재가 효과를 거두라면 북한 정권에 핵을 포기하라는 강한 메시지를 줘야 하는데 여기에는 중국의 물 샐틈 없는 공조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중국이 석유와 식량, 민간교류를 중단한다면 가장 효과가 크겠지만 중국이 해줄 가능성이 낮죠. 중국이 미국과 패권경쟁 벌이고 있고 미-일 동맹과 대결하는 정세 속에서 유일한 동맹국인 북한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죠.”
한국 정부 안팎에서는 중국이 과거보다는 강한 제재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있지만 북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강도 높은 제재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이 취할 수 있는 대북 제재 조치로는 북한의 외화벌이 수단인 노동자 송출이나 식당 운영 등에 대한 제재, 밀무역 통제 강화, 핵이나 미사일 생산에 전용할 수 있는 이중용도 물자에 대한 검열 강화 등이 꼽힙니다.
한국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이번 핵실험을 강행한 데는 중국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비핵화보다 북한 체제의 안정을 우선시하는 중국이 북한이 정말 아파할 대북 제재에 동참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의 외교가에서는 중국의 경우 북한을 포용하는 것이 미국과의 전략적 경쟁 구도에서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만큼, 북 핵 문제에 공조하는 것이 중국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김성한 전 한국 외교부 차관은 국제사회가 이번에도 강력하고 실효적인 제재를 마련하지 못할 경우 북한은5차, 6차 핵실험을 이어가며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이런 상황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바라는 중국의 국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중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고 김 전 차관은 강조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