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는 실태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북한 노동자들이 정규직 직원이 아니라 용역계약으로 채용돼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연철 기자가 보도합니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 아시아센터가 30일 ‘유럽연합 내 북한 강제 노동, 폴란드 사례’ 예비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오는 7월 최종보고서가 나오기에 앞서 발표된 이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지난 2014년 폴란드의 한 조선소에서 화재로 사망한 북한 용접공 전경수 씨 사례를 북한 노동자들이 유럽연합 내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리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습니다.
폴란드 노동당국의 조사 결과, 사고 현장에 감독관이 파견되지 않았고, 전 씨에게 방화복 같은 보호장비가 지급되지 않는 등 다수의 불법적인 관행들이 발견됐다는 겁니다.
또한, 전 씨는 하루 평균 12시간 씩 주 6일 근무했지만 임금 대부분은 북한 당국이 가져갔다는 겁니다.
전 씨는 근로계약서를 직접 작성하지 않았고, 월급명세서도 받지 못했으며, 여권도 북한인 관리자에게 압수당했다고, 보고서는 밝혔습니다.
보고서는 전 씨 뿐 아니라 폴란드에서 함께 일한 동료들도 강제 노동의 피해자라고 지적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폴란드는 유럽에서 북한 노동자에게 취업 허가를 가장 많이 내주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2008년부터 2015년까지 북한 노동자에게 취업 허가서 총 2천783건을 발급했습니다.
또한, 북한 노동자 고용과 관련 있는 32개 업체 중 28개사가 북한 노동자를 고용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보고서는 폴란드 노동 당국이 2010년부터 조사한 결과, 77건의 불법고용 사례가 적발됐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에는 북한 노동자들을 취업 허가와 다른 직장과 직종에 파견하는 것을 비롯해 근로계약서 미작성, 임금 체불, 연장근로수장 미지급, 휴가 미지급 등이 포함됐습니다.
보고서는 임금이 중개회사를 통해 지불된다며, 북한 노동자는 자신의 실제 급여가 얼마인지 모르며, 개인 은행 계좌도 소유할 수 없으며, 아주 적은 현금을 받을 뿐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어 보고서는 이번에 파악된 북한 해외노동자 파견 형태의 특징 중 하나로 북한 당국과 현지 기업들이 맺는 복잡한 관계를 꼽았습니다.
북한이 능라도 무역총회사 등을 통해 폴란드 기업과 계약을 맺지만, 이들 기업들은 중개자 역할을 맡아 또 다른 현지 기업들에게 노동자를 파견하는 다단계 구조를 보여준다는 겁니다.
보고서는 특히, 북한 노동자 대부분이 파견되는 직장에 정규직원으로 고용되는 것이 아니라 용역 계약으로 고용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북한 근로자들이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상대적으로 제약이 덜한 민법상의 고용계약을 적용 받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풀이했습니다.
보고서는 이 같은 관행이 노동법 위반일 뿐 아니라 시민적 정치권 권리에 관한 협약과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협약 같은 국제인권조약에도 위배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밖에 보고서는 북한 노동자들을 채용하는 폴란드 기업 중 일부가 유럽연합 지역발전기금을 지원받고 있다는 점도 확인됐다며, 이를 통해 유럽연합 기금이 간접적으로나마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용됐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VOA 뉴스 이연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