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문가들은 지난해 북한경제가 부진했던 요인으로 가뭄과 북-중 무역 감소를 꼽았습니다. 북-중 무역이 큰 폭으로 감소한 가운데 가뭄으로 농업과 수력발전이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입니다.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북한의 실질 국내총생산, GDP가 전년 대비 1.1%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이는 지난 2007년 이후 최저치로,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경제가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겁니다.
한국의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도 ‘2015년 북한경제 종합평가와 2016년 전망’ 보고서에서 지난해 북한의 생산활동이 전년보다 소폭 감소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지난해 북한경제의 부진 요인으로 우선 가뭄을 꼽습니다. 2013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이어진 가뭄으로 농업 부문이 타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국내총생산 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5분의 1입니다.
권태진 GS&J인스티튜트 동북아연구원장입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가뭄이 이어지면서 연초부터 농업용 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의 저수율이 굉장히 낮았습니다. 여기에다 영농철 시작까지 비가 거의 오지 않아 물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이 지난해 작황에 타격을 준 자연적인 요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북한 지역의 평균 누적 강수량은 144.9mm로 평년의 81% 수준에 그쳤습니다.
이모작과 가을 농사에 영향을 미치는 5월의 경우 선봉과 김책 시 두 곳을 제외한 북한 지역의 평균 강수량은 평년의 55%에 불과했습니다.
권태진 원장은 농자재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점도 지난해 작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권태진 원장] “가뭄이라는 자연적인 요건과 함께 농업 부문에 필요한 농자재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점도 지난해 농업 부문 부진의 요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비료로, FAO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비료 공급량이 그전에 비해 많이 줄었습니다. 또 농업용 트랙터를 비롯한 농기계를 가동하는 데 필요한 연료 공급이 부진했던 것도 농업 부문 부진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북한의 곡물 생산량은 2010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542만t (FAO, 조곡 기준)으로 추산됐습니다. 이는 전년에 비해 약 9%, 최근 5년 평균에 비해서는 3% 감소한 겁니다.
이 가운데 쌀 생산량이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해 전년보다 26% 줄었습니다. 옥수수는 3% 감소했습니다.
북한의 극심한 가뭄은 수력발전에도 타격을 미쳤습니다. 2013년부터 계속된 가뭄으로 댐의 수위가 낮아진 데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가뭄이 지속되면서 상반기 수력발전소의 가동률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수력발전은 북한 전력 수급의 60%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에 따라 화력발전용 석탄 공급을 크게 늘려 수력 발전의 감소를 만회하려 했지만 발전 설비의 노후화와 중유 부족으로 전력 공급을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한국의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김경술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김경술 선임연구위원] “설비 노후화도 문제지만 화력발전소 가동에 필요한 중유 공급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북한의 화력발전소는 석탄과 중유를 일정한 비율로 섞어서 가동하도록 설계돼 있는데 중유가 부족하다 보니 발전소의 가동 여건이 악화돼 기계적인 무리가 많이 가고 발전소의 성능이나 출력 저하로 이어지는 것이죠.”
가뭄과 함께 지난해 중국으로의 수출이 감소한 점도 북한경제의 부진 요인으로 꼽힙니다.
이는 중국의 경기 침체와 국제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지하자원의 수출이 크게 감소한 데 따른 겁니다.
중국 해관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대중 수출은 24억 9천만 달러로 전년 대비 12.6% 줄었습니다.
석탄과 철광석은 북한의 대중 수출품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으로, 지난해 석탄 수출액은 전년보다 7.8%, 철광석은 68%나 감소했습니다. 석탄의 수출 감소 폭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수출물량을 크게 늘렸기 때문입니다.
철광석은 2005년 이후 북한의 두 번째 수출상품이었지만 지난해 처음으로 5대 수출품목에 포함되지 못했습니다.
수출 감소에 따른 외화 부족은 수입 감소로 이어져 북한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입니다.
산업연구원 이석기 선임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이석기 선임연구위원] “북한 제조업의 경우 설비가 부족하고 낙후돼 있어 제조업의 설비를 확충하고, 생산을 늘리기 위해선 투자가 필요합니다. 현재 북한의 사정상 투자가 늘어나기 위해선 중국으로부터의 기계나 설비 수입이 필요한데 기계류의 수입이 감소하면 북한의 전반적인 투자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섬유류나 화학제품의 수입이 줄면 당장 생산에 차질을 주기 때문에 수입의 감소는 북한 제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일부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국산화 정책과 일부 품목에서 생산력이 제고된 점이 수입 감소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북한이 설비와 중간재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하는 점을 감안하면 수입 감소는 북한의 산업 생산에 부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설명입니다.
중국 해관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대중 수입 (원유 제외)은 29억 5천만 달러로 16.4%나 축소됐습니다. 북한의 대중 수입이 감소한 것은 2009년 이후 처음입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북한의 주요 대중 수입품목인 전자기기와 기계류, 수송기계류, 플라스틱, 섬유재료 수입이 모두 감소했습니다.
한국은행에서 북한경제를 담당했던 이영훈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대중 무역 감소가 북한의 시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녹취: 이영훈 수석연구원] “북한 시장에서 거래되는 소비재 상당 부분 특히 공산품의 경우 80~90%가 중국산이므로 중국과의 무역이 줄어든다는 것은 그만큼 북한 시장에서의 거래 규모가 줄어든다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해의 경우 북한 당국 주도의 시장화가 지속되는 등 시장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이 여전히 추진됐다는 점에서 무역 감소에 따른 시장에서의 부정적인 영향은 크지 않았을 것이란 관측도 나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지난해 북한의 산업 가운데 생산활동이 가장 활발한 부문으로 건설을 꼽았습니다.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추진된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와 과학기술전당, 미래과학자거리 등 대형 건설사업에 노동력과 자원이 집중적으로 투입됐기 때문입니다.
이영훈 수석연구원은 북한 돈으로 약 100억원이 투입된 미래과학자거리 건설과 동일한 규모의 투자가 이뤄질 경우 북한의 경제성장률은 0.5%포인트 오르는 효과가 있다고 추정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올해 북한경제의 경우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 강도와 북-중 무역의 회복 여부, 기후조건과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해 크게 좌우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