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유력 언론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북한으로 이주한 일본 내 한인들을 조명하는 장문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신문은 일본 정부가 9만3천 명에 달하는 북한 내 일본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일본 정부가 북한 당국에 의해 납치된 것이 확인된 자국민 17명의 송환을 위해 기울이고 있는 노력은 국제사회에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1950년대 말부터 이뤄진 북송 ‘재일조선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관심은 납북자 문제에 비해 훨씬 덜 하다고 미국의 `로스앤젤레스타임스’ 신문이 보도했습니다.
이 신문은 24일 ‘9만3천 명의 사람들이 과연 자발적으로 일본을 떠나 북한으로 갔을까?’ 란 제목의 글에서, 1959년에서 1984년 사이에 진행된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특히 이 중에는 조선인과 결혼한 6천 명 가량의 일본인 부인들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신문은 북한 정부와 일본 내 친북단체인 조총련이 적극 추진한 재일조선인 당시 북송사업에 일본 정부가 깊숙이 연루돼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호주국립대학교의 동아시아 역사전문가인 테사 모리스-스즈키 교수는 이 신문에, 당시 북송사업이 식민지 주민들을 고국으로 돌려보내는 인도주의적 노력으로 비춰졌지만, 그 배경에는 다른 동기가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적십자 기록 등을 살펴보면, 당시 일본 당국자들은 일본 내 조선인들을 식민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원치 않는 잔재이자 나라 재정에 부담을 주는 존재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모리스-스즈키 교수는 일본 정부가 북송사업에 대해 전적으로 북한 당국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지만, 이런 논리는 역사적으로 말도 안 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북송 ‘재일조선인’ 9만3천 명의 문제를 북한에 제기하는 것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신문은 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가 총리로 재임하던 당시 북송사업이 승인되고 시작됐다며, 이 때문에 아베 총리가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아울러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일본에서 적국인 북한으로 이주시키는 문제에 대해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던 점도 의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북송사업 피해자 문제를 공론화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일본 내 비정부기구 ‘모두 모이자’의 가와사키 에이코 대표의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가와사키 대표는 재일조선인 출신으로, 17살 때인 지난 1960년 북송선 클리리온 호를 타고 북한으로 가서 43년 간 살다가 지난 2003년 탈북했습니다.
가와사키 대표는 북송 재일조선인들의 사연을 널리 알려 일본과 북한의 행동을 이끌어 내고자 한다고 이 신문에 밝혔습니다.
가와사키 대표는 지난해 9월 유엔 인권이사회 회기 중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 주최로 열린 행사에 참석해 북송된 ‘재일조선인’들의 사연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가와사키 대표와 북한인 남편 사이에 태어나 역시 탈북해 일본에 정착한 이소라 씨는 `LA 타임스’에 “일본 정부와 북한 정부, 적십자 간 회의가 열려야 한다”며 “북송된 재일조선인들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어야 하며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