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한국 내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제재 외에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한반도 관련 뉴스를 심층분석해 전해 드리는 ‘뉴스 깊이 보기,’ 서울에서 김은지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의 외교가에서는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북 핵 6자회담 한국 측 수석대표를 지낸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와는 달리 김정은 정권의 핵 정책은 훨씬 더 과감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녹취: 천영우 전 외교안보수석] “북한은 김정은 집권 이후 천명한 핵-경제병진 노선에 따라 핵 개발을 지속해왔습니다. 국제사회는 그러나 북한이 정신차리기를 기대하면서 북 핵 문제를 사실상 방치해왔습니다. 북한은 자신들의 생존이 위협받지 않는 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핵 능력이 증강될수록 북한의 입장은 더욱 강화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은 지난 10년 간 5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 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왔습니다. 핵실험의 위력은 더욱 커졌고 주기도 짧아졌습니다.
북한은 핵 물질과 기폭장치, 운반체계로 요약되는 핵무기의 3대 요소를 빠르게 갖춰나가고 있다는 것이 한국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통일연구원 정성윤 연구위원입니다.
[녹취: 정성윤 연구위원]“핵 능력 고도화를 결정하는 3가지 요인은 핵 물질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느냐와 핵탄두 제조기술력, 다시 말해 작은 핵 물질을 가지고 손실률을 낮추면서 폭발력을 높이는 능력, 세 번째는 이를 운반하는수단인 미사일 능력을 의미합니다. 북한은 올해 들어 지난 8개월 동안 두 차례의 핵실험과 10여 차례 미사일 발사를 통해 핵 능력 고도화 기술을 빠른 속도로 축적해왔습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유엔 역사상 비군사적 제재로는 역대 최강이라는 제재 카드까지 꺼내 들었지만 북한의 핵 개발 의지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북한은 오히려 8개월 만에 5차 핵실험을 또 다시 단행하며 핵 무력 고도화를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추가 제재를 논의하고 있지만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바꾸기는 어려울 것이란 회의적인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대북 제재의 열쇠를 쥔 중국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입니다. 국립외교원 김한권 교수입니다.
[녹취: 김한권 교수] “중국이 대북 제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만약 강한 제재로 김정은 체제가 흔들릴 경우 자신들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손실이 올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동북아에서 나타나는 미-중 간 전략적경쟁 구도의 틀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의 이 같은 외교정책적인 방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동북아 지역을 둘러싼 이 같은 미-중 간 경쟁 구도는 북한의 전략적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특히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드 배치에 따른 ‘미-한-일 대 중-러’ 간 신 냉전 구도로 북한의 핵 개발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북한의 핵 개발은 반대하면서도 동시에 북한의 안정을 중시하는 중국의 이중정책이 북한의 핵 개발을 용인하고 있는 셈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국제사회가 지체하는 동안 북한의 핵 능력이 갈수록 고도화된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 내에선 북한이 핵 실전배치 준비의 마무리 차원에서 언제든 추가 핵실험을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미국의 랜드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이 오는 2020년까지 핵무기를 최대 100개 보유하고, 2020∼2025년까지 핵탄두 미사일을 실전배치할 수 있을것으로 전망했습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현재 북한은 완벽한 핵 억제력까지는 아니지만 핵을 운용하는 기술적 진전을 통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의 이른바 ‘게임의 규칙’을 바꿀만한 수준의 핵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한국 내에서는 이에 따라 북한의 핵 능력 고도화에 대응해 제재 외에 다양한 군사적 대안을 단계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 한국의 핵무장론이 대표적입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 핵 문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한국이 독자적 핵 무장을 통해 북한과 군사적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급속도로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핵우산으로는 막을 수 없고 미국의 핵우산에만 의존할 경우 한국의 안보와 외교적 자율성이 위축되게 됩니다. 한국은 세계 5위 원자력강국으로 만약 핵을 보유할 경우 북한보다 200배가 넘는 핵을 보유하게 돼 남북 간 핵 균형이 이뤄지게 되고 북한으로선 미국보다는 한국의 핵을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 문제에서 옵서버 위치로 전락한 한국이 북한을 직접 관리하게 됨으로써 한반도 문제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러나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어긋난다며 자체 핵 무장론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들어 모두 철수했던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배치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최근 정책 건의 보고서를 통해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미국의 전술핵을 한반도에 다시 들여오는 방안을 공식 건의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그러나 핵 확산 방지 차원에서 전술 핵 재배치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북한을 비핵화를 위한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입니다.
[녹취: 김동엽 교수] “제재를 넘어 군사적 옵션을 택할 경우 북한이 핵을 갖게 된근본적인 원인인 안보적 우려를 더욱 가중시켜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집니다. 따라서 보다 책임 있는 대화가 필요한데 북한의 안보적 우려, 즉북한의 생존을 보장하면서도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단호함이 모두 다 포함돼야 합니다.”
한국 외교가에선 최근 말레이시아에서 이뤄진 미-북 간 비공식 접촉이 사실상 양국 간 탐색적 대화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고, 미국의 차기 행정부 출범시 미-북 대화가 열릴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보이지 않는 한 대화를 거론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게 정부의 입장이라고 확인했습니다.
서울에서 VOA뉴스 김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