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 이달로 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VOA는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맞아 탈북민들이 한국에 정착하는 과정의 명암과 한국 정부의 탈북민 정책의 현주소를 짚어 보는 특집을 다섯 차례로 나눠서 보도합니다. 오늘은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맞기까지 탈북민 정착의 변천 과정과 한국사회에 정착한 탈북민 사회의 명암을 짚어 보겠습니다. 서울에서 박병용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통일부는 북한이탈주민, 탈북민 7명이 지난 11일 제3국을 거쳐 입국하면서 이날을 기준으로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 3만5명을 기록해 ‘탈북민 3만 명 시대’가 열렸다고 밝혔습니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숫자는 지난 2001년 처음으로 1년에 천 명을 넘어선 뒤 지속적으로 증가해 2009년에는 1년에 2천914명까지 늘었습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고 이듬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집권하면서 한 해 전의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1천275명에 그쳤습니다.
가장 큰 원인은 북한 당국의 국경단속 강화였습니다.
해마다 탈북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온 북한인권정보센터 김인성 팀장입니다.
[녹취: 김인성 팀장/ 북한인권정보센터] “탈북자들 인터뷰에 따르면 경비대가 자주 교체되고 과거와 달리 경비대가 국경을 넘겨준 사실이 들통나면 제대 후에도 교화소에 간다든지 강한 처벌을 받게 돼 경비대원들이 아주 확실한 경우가 아니면 가능한 한 탈북자들을 넘겨주지 않으려고 하죠.”
그런데 올해 들어 변화가 변화가 오고 있다는 분석입니다. 한국 통일부는 김정은 정권이 들어선 직후 북한 당국의 탈북 통제가 강화됐지만 체제에 대한 불만 등으로 올해 들어 10월까지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은 1천154명으로 지난해보다 21% 증가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와 함께 탈북을 하는 동기에도 변화가 감지됩니다. 지난 90년대 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경제적인 동기로 먹고 살기 위한 ‘생계형 탈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삶의 질이나 미래를 생각하는 ‘이민형 탈북’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4월 중국에서 일하던 북한 식당 여종업원 13명의 집단 탈북과 지난 8월에 공개된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태영호 전 공사의 탈북이었습니다.
또 이들 외에도 북한 관료나 외화벌이 일꾼, 해외파견 노동자들의 탈북이 수시로 한국 언론에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들의 탈북은 북한에서도 이른바 출신성분이 좋고 중산층 정도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감행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탈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에 따라 북한 주민들에게 미치는 심리적 영향이 클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한국 국책연구기관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박병광 박사입니다.
[녹취: 박병광 박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정치적 망명의 성격, 단체 망명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 그리고 북한체제에 대한 충성도의 이완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겠죠.”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들이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돈을 보내는 것은 한국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이 송금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먹여 살릴 뿐아니라 장사밑천이 돼서 장마당을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지난해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가 탈북민 4백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0명 가운데 6명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문제를 관찰해온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임순희 연구원입니다.
[녹취: 임순희 연구원/ 북한인권정보센터] “본인이 조금 더 힘들고 어렵지만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나 죄책감 때문에) 일하면서 저축했다든가 모아둔 돈이나 혹은 가끔은 빚을 내서라도 가족에게 보내는 케이스들은 여전히 많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
3만 명이 넘는 탈북민들이 북한에 보내는 돈은 한 해 최소 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됩니다.
대부분의 탈북민은 남한사회에서 새롭게 적응하고 정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탈북민의 경우 생활고와 사회적 차별에 고통을 겪다가 범죄에 빠지기도 합니다.
성공적으로 남한사회에 적응해 북한 가족을 먹여 살리는 송금이 탈북민의 ‘빛’이라면 범죄에 빠지기까지 하는 경우는 탈북민이 안고 있는 ‘그림자’입니다.
올해 한국의 국정감사에서 법무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 51명이던 탈북민 출신 교도소 수감자가 올해 8월 현재 129명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또 최근 10년 간 ‘비보호 탈북민’도 2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비보호 탈북민은 한국 정부의 정책 지원을 받을 수 없는 탈북자인데 이들은 2011년 이후 큰 폭으로 증가했습니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 가운데 2천여 명은 해외로 떠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탈북민의 실업률은 일반 한국민보다 3배나 많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탈북민들이 남한사회에 건강하게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남한사회에서의 차별을 의식해 북한에서 왔다는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감춤으로써 정체성에 혼란을 가져오고 그 때문에 적응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분석입니다.
탈북민인 김병욱 북한개발연구소장은 정체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한 주민들이 탈북민들을 고향이 북한인 한국 국적자로 하루 빨리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와 함께 최근에는 한국 정부의 탈북자 지원정책이 일방적인 적응과 동화 방식에서 전환돼 남북통합의 관점에서 정책틀이 전면 재조정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습니다.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이제 그냥 착하게, 한국사회에 문제 일으키지 말고, 돈 벌면서 살아가라’고 하는 보호중심의 탈북민 정책은 탈피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의 제안입니다.
[녹취: 김흥광 대표/NK지식인연대] “역동적인 삶을 통해서 그리고 사명감을 가지고 탈북민 사회가 서로 협조하면서 상호보완하고, 자립을 지원하면서 통일을 준비해 가는 그런 탈북민 사회가 존재해야 되고, 그런 탈북민 사회를 통해서 탈북민들의 삶이 외관상으로 볼 때도 굉장히 성숙된 모습, 열정적인 모습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지원정책의 근본틀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최근의 탈북민 경향과 관련해 북한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권력기반 강화 차원에서 ‘공포정치’가 진행되고 있고 북한 내부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면서 연쇄 탈북이 이뤄지는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도 올해 들어 늘어난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과 관련해 김정은 체제의 균열 조짐인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이 같은 현상이 양적, 질적 측면에서 심각한 붕괴 징후로 보기는 아직 어렵다며 최근의 연이은 엘리트들의 탈북이 북한체제의 붕괴로 이어지는 방아쇠와 같은 요인이 될지 여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이 같은 고비의 상황에서 한국 통일부는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계기로 기존의 탈북민 정책 방향을 ‘사회통합형’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통일부의 새로운 ‘사회통합형’ 정책에 한국의 탈북민 사회가 이목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박병용입니다.
한국 내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맞아 준비한 기획보도, 내일 이 시간에는 두 번째 순서로 탈북자 지원정책의 현황과 문제점을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