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내세운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이 전망했습니다. 뱁슨 씨는 북한이 경제 분야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면 시장경제를 용인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새해를 맞아 `VOA’가 준비한 인터뷰 시리즈, 오늘은 북한경제 전문가인 브래들리 뱁슨 전 고문을 김정우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지난해에는 북한이 두 차례나 핵실험을 하고 여러 차례 미사일을 쏘는 도발을 감행하면서 한반도 정세가 크게 악화했습니다. 이 때문에 유엔과 미국 등 개별국가들의 제재를 통한 대북 압박이 크게 강화됐는데요, 지난해 북한경제의 실적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뱁슨) 지난해 유엔 안보리가 북한을 제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음에도 불구하고 북한경제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국제사회가 제재안을 만들 때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죠. 먼저 무역 부분을 보면 수출이 많이 줄어들지 않았어요. 특히 석탄은 여전히 북한의 돈줄이 됐죠. 또 북한이 제재를 피하려고 수출 품목을 다변화했다는 점도 특징인데요. 북한은 국내에서 가치를 붙여 외부에 팔 수 있는 품목, 예를 들면 의류 제품 수출에 눈을 돌렸습니다. 제재를 피할 수 있는 길을 찾은 결과죠. 저는 역설적으로 대북 제재가 오히려 북한이 자신들의 경제정책을 이익이 나는 방향으로 다시 조정하는 계기를 줬다고 봅니다. 그런가 하면 물가와 환율도 비교적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난해 북한경제가 큰 혼란을 겪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죠. 그밖에 특징적인 것은 바로 시장경제입니다. 중앙정부의 통제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시장경제가 매우 활발하게 움직였죠. 이 부분에서 활동이 활발했고요. 또 많은 혁신도 이뤄졌다고 보는데요. 사실 이런 시장경제가 지난해 북한인들의 경제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올해 신년사에서 경제 부분과 관련해서 눈길을 끄는 내용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뱁슨) 중요한 것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신년사에서도 경제발전을 강조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번 신년사에서도 경제 부문이 많은 분량을 차지했죠. 하지만 김 위원장이 새롭게 내세운 것이 없어서 실망했습니다. 지난해 7차 당 대회에서 나온 내용을 정리하고 강조한 수준이었어요. 특히 시장경제와 이것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나 관련 정책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었는데, 이건 아직도 북한이 시장경제 요소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길 꺼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니까 이번 신년사에서는 경제 부분과 관련해 대내외에 반향을 일으킬 만한 제안은 없었습니다.
기자) 그래도 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다양한 경제 목표들을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전력 생산이나 화학공업, 농업, 수산업 등에서의 성과를 강조했는데요, 이런 사업 목표들이 달성될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보십니까?
뱁슨) 이런 목표를 이루는 데는 일단 중앙정부가 어느 부분을 우선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북한이 가진 자본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실 저는 외부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제시한 목표를 북한 정부가 모두 달성할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입니다. 특히 유엔 제재가 북한이 무역 실적을 올리고 경제 건설에 필요한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데 어려움을 줄 겁니다. 다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자강력을 강조했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시장경제 활동을 더 풀어줄 가능성도 있고요. 또 외화벌이를 위해 그동안 수출에 주력하던 자연자원을 국내경제 분야로 돌리면 중앙정부가 몇몇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겁니다.
기자) 방금 제재가 미치는 영향을 언급하셨는데, 올해 북한경제를 전망할 때 역시 대북 제재를 빼놓을 수 없겠죠? 대북 제재가 올해 북한경제에 미칠 영향, 어떻게 보십니까?
뱁슨) 말할 것도 없이 외화벌이에 큰 타격을 줄 겁니다. 새로 통과된 대북 제재 결의가 충실히 이행된다면, 특히 중국이 제재 결의를 철저하게 집행하면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달리 볼 필요도 있는데요. 앞서 말했지만, 대북 제재가 오히려 북한에서 시장경제가 확산하고 발전하는 데 기회를 줄 수도 있다는 겁니다. 특히 '돈주' 같은 북한 내 신흥자본가들이 외부 상황을 돌파하려고 더 효과적이고 혁신적인 돈벌이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를 통해 북한 안에서 시장경제가 더 확산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바로 이 부분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기자) 국제사회 제재 외에 올해 북한경제가 직면할 어려움으로 어떤 것들을 들 수 있을까요?
뱁슨) 외부의 정치적 환경을 들 수 있죠. 구체적으로 미국과 한국에서 정치적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가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미-북 관계, 남북 관계가 북한경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는데요. 연초에 미국은 새 행정부가 들어서고, 또 한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게 되면 이를 계기로 올해 북한과 두 나라 사이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 또 이 관계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지금 완전하게 중단된 남북 경제협력에 변화가 있을 수도 있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북한경제를 전망하는 데 외부 정치환경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기자) 북한 내 시장경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셨는데요, 이와 관련해서 올해 주목해야 할 부분으로 뭘 들 수 있을까요?
뱁슨) 사실 북한 정부가 현재 시장경제를 어느 정도 용인하기 때문에 북한 안에서 지금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특히 '돈주'의 활동이 사업이나 장사 뿐아니라 금융업으로 확산하는 것에 주목합니다. 경제활동에 돈을 대는 금융업이 북한에서는 크게 발달하지 않았는데요. 최근 돈주들이 이 분야까지 진출하는 것이 아주 흥미로운 현상입니다.
기자) 지난해 역사상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과의 경제협력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올해 전망은 어떻습니까?
뱁슨) 이것도 기본적으로 외부 정치환경의 영향을 받을 텐데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경제개발을 촉진하는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특히 중국은 북한에서 시장경제가 확산하는 것을 좋아할 겁니다. 왜냐하면, 시장경제 확산이 중국이 북한의 경제개발을 지원하는 데 있어 핵심 정책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중국 당국은 대북 제재가 오히려 북한 내 시장경제 확산에 일조하는 현상을 좋게 볼 가능성도 있습니다. 러시아와의 협력관계도 관심거리이긴 한데, 이건 미국-러시아 양자관계에 달렸다고 봅니다. 미국에 러시아에 우호적인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 미-러 관계가 좋아질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러시아가 북한과의 정치경제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데 눈을 돌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기자) 기본적으로 제재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선 북한경제가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적은데요. 이런 상황에서 경제발전을 위해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뱁슨) 현 상황에서는 북한이 어느 정도 시장경제의 생성과 발전을 용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장경제를 점점 더 인정해 주면서 규제나 금융 부분에서 시장과 중앙정부의 관계를 투명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부동산 소유권을 예로 들어 보면요. 북한에서는 원칙적으로 집 같은 부동산을 소유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부동산 소유권을 비공식적으로 사고 파는 현상이 북한 안에서 확산하고 있습니다. 만일 북한이 이런 부동산 소유권 같은 시장경제적 장치들을 양성화하거나 용인하면 경제를 살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으로부터 새해 북한경제 전망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대담에 김정우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