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미국을 이끌어온 바락 오바마 대통령의 퇴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지난 8년 동안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맞서 회유와 압박 카드를 차례로 꺼내든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과 미-북 관계를 백성원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We could obviously destroy North Korea with our arsenals…”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의 ‘파괴’를 언급한 건 지난해 4월이었습니다. 미군의 무기로 북한을 쉽게 파괴할 수 있지만 동맹국인 한국을 고려해야 한다는 강도 높은 발언입니다.
북한 등 `불량국가' 지도자들과 조건 없이 만날 것이라는 8년 전 선거유세 때와 크게 달라진 태도입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I would and the reason is this…”
오바마 대통령이 내민 손을 뿌리친 건 북한이었습니다. 북한은 오바마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9년 4월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발사 한 뒤 두 달도 안 돼 2차 핵실험을 강행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우리의 과학자와 기술자의 요구에 따라 자위적 핵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2009년 5월25일 또 한 차례 지하 핵실험을 성과적으로 진행하였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제재에 나섰고, 북한은 2010년 11월 미국의 핵과학자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우라늄 농축시설을 전격 공개했습니다.
[녹취: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 언론 인터뷰] “I say hundreds and hundreds of clean modern looking centrifuges line up in doubles…”
현대식 우라늄 농축시설 안에 설치된 2천개의 원심분리기를 봤다는 헤커 박사의 증언. 북한이 플루토늄과 함께 우라늄을 이용한 핵 개발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든 건 이 때부터였습니다.
대북 압박으로 맞선 오바마 행정부. 그러나 대화의 끈을 놓진 않았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2011년 7월과 10월 고위급 회담을 열었고, 이듬해 2월 29일 북한의 핵 활동 중단과 미국의 식량 지원을 맞바꾸는 2.29 합의를 도출했습니다.
북한은 그러나 보름 만에 다시 장거리 로켓 시험 계획을 발표했고, 그 해 4월 13일 이를 행동에 옮겼습니다. “위성 발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녹취: 기자] “장거리 미사일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는 분명히 되지 않겠습니까? [녹취: 류금철 북한 우주공간기술위원회 부소장] “안 할 걱정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주 개발을 위해서 전용으로 개발한 로켓 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걸 무슨 탄도로켓 기술 개발을 위해 이용한다는 건 말도 되지 않습니다.”
2.29 합의가 파기되는 순간이자 북한을 압박해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내겠다는 이른바 “전략적 인내”의 출발이었습니다.
실제로 미 정부 전직 관리들은 미국의 대북 기조가 압박 쪽으로 옮겨가게 된 결정적 계기를 2.29 합의의 실패로 꼽습니다.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 입니다.
[녹취: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국무부 한국과장] “With the failure of the ‘Leap Day Deal’ in 2012, I believe that the leadership of the U.S. government lost any remaining hope that the North Koreans under Kim Jong Un might be willing to do [de]nuclearize…”
이후 1년도 채 안 돼 미-북 관계는 사실상 파국을 맞았습니다. 북한이 2012년 12월과 2013년 2월 또다시 장거리 미사일 시험과 3차 핵실험으로 각각 응수했기 때문입니다.
[녹취: 조선중앙TV] “우리의 국방과학 부문에서는 2013년 2월 12일 북부 지하 핵 실험장에서 제3차 지하 핵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즉각 이를 엄청난 도발 행위로 규정했습니다.
[녹취: 존 케리 국무장관] “This week’s test was an enormously provocative act.”
미국의 주도 하에 유엔 안보리는 핵.탄도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의 금융거래 금지를 골자로 한 결의 2794호를 채택했습니다.
북한은 그 해 4월 영변 5MW 원자로를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했고, 미-북 대화가 중단된 가운데 다음해에도 잇단 단거리 미사일 발사로 위력을 과시하려 했습니다.
미국 정부 내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급부상한 건 이 시기였습니다. 핵 문제와는 별개로 북한의 심각한 인권 실태를 비판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녹취: 존 케리 국무장관] “This is an evil, evil place that required enormous focus by the world.”
2014년 2월 케리 장관이 북한을 사악한 곳으로 규정한 데 이어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고위 관리들이 일제히 인권 문제를 시급한 해결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이후 미-북 협상에서 핵 문제뿐 아니라 인권과 반인도 범죄 문제까지 제기될 것으로 내다본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석좌의 전망은 그대로 들어맞았습니다.
[녹취: 빅터 차 석좌] “The main thing I think is different is that the human rights element has become a much bigger part of the U.S. policy…”
특히 인권 압박의 칼끝이 김정은 당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겨누자 북한 당국은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장일훈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그 해 10월 20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인권 압박에 극도로 불쾌한 심경을 거듭 드러냈습니다.
[녹취: 장일훈 전 북한 차석대사] “이거 뭐 우리 수뇌부 걸고 드는 데는 우리 진짜 참기 힘듭니다, 이거.” [녹취: 기자]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문제 말씀하시는 거죠? [녹취: 장일훈 전 차석대사] “예. 그것도 그래, 책임자 처벌이나 그 따위 문구가 들어간 거 그걸 가지고 얘길 하는데 이거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 이젠.”
2014년 말 북한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암살을 다룬 영화 ‘인터뷰’를 제작한 소니영화사를 해킹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응징을 예고했습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We will respond. We will respond proportionally and we will respond in a place and time and manner that we choose.”
엄중한 경고는 북한에 대한 각종 제재 조치를 담은 대통령 행정명령 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북한은 미-한 군사훈련을 임시 중단하면 4차 핵실험 계획을 중지하겠다는 제안으로 2015년을 시작했지만, 미 국무부는 두 사안을 연계할 수 없다며 거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비판 수위는 이례적으로 북한 정권의 붕괴를 언급하는 정도까지 강경해졌습니다.
[녹취: 오바마 대통령] “It is very hard to sustain that kind of brutal authoritarian regime in this modern world. Over time you will see a regime like this will collapse.”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패자의 넋두리'라고 비난한 북한은 이후 미사일 도발 빈도를 높이더니 이듬해인 1월6일 4차 핵실험과 함께 수소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녹취: 조선중앙 TV] “2016년 1월 6일 10시 주체조선의 첫 수소탄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다음달 ‘광명성 4호’ 위성 발사에 이어 9월 5차 핵실험이라는 강수를 두자 미국 내에서도 “전략적 인내”에 대한 비판이 확대됐습니다. 북한에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개발하는 시간만 벌어줬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오바마 행정부는 유엔 안보리에서 사상 최강이라는 제재 결의 2321호를 이끌어냈습니다.
동시에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북한 비핵화에 회의적 시각을 공개리에 내비치면서 핵 “동결” 쪽으로 대북정책의 방향을 트는 듯한 모습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녹취: 존 케리 국무장관] "The immediate need is for them to freeze where they are, to agree to freeze and not to engage in any more provocative actions…”
미국의 “동결” 제안을 장기 목표인 비핵화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절차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자칫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북한의 야심과 맞물려 군축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습니다.
문제는 북한의 태도입니다. 비핵화 목표를 담은 9.19 공동성명은 무효이며, 심지어 평화협정이 체결돼도 비핵화하지 않겠다는 속내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녹취: 북한 외교 관리] "우리 병진 노선은 세계 비핵화될 때까지 하루도 멈춤 없이 계속 전진한다 이겁니다.”
오바마 행정부는 ‘대북 제재와 정책 강화법’, 행정명령 13722호, 두 차례의 인권 제재 명단 발표 등 북한에 대한 압박 수위를 늦추지 않으며 집권 마지막 해를 마무리했습니다.
북한이 미국 정권 교체기에 맞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를 시사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오바마 식 대북접근’의 명암을 어떻게 이어갈지 주목됩니다.
VOA 뉴스 백성원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