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서 15년 동안 도피 생활을 해온 탈북자가 최근 현지 경찰에 체포돼 추방 위기에 처했습니다. 러시아 인권단체가 구명운동을 펼치고 있고, 러시아 언론도 이 사연을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조은정 기자가 보도합니다.
러시아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도피 생활을 해온 탈북자가 북한으로 강제송환될 위기에 놓였다고 러시아 유력 일간 ‘코메르산트’와 현지 매체 ‘폰탄카’가 5일 보도했습니다.
이들 매체는 54살의 북한인 최명복 씨가 지난달 경찰에 체포됐고 현지 법원은 31일 그를 추방하라는 판결을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법원의 결정은 2월 10일 집행 예정인 가운데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이 최 씨 구명에 나섰습니다. 러시아 내에서 소송을 추진하는 한편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유럽인권재판소 ECHR에 최 씨 추방을 막아달라는 보호 신청을 한 것입니다.
최 씨의 법적 대리인인 ‘메모리알’ 소속 변호사는 지난 2일 러시아연방보안국 FSB 직원들이 최 씨를 찾아가 러시아어로 된 문서에 서명할 것을 종용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연방보안국 직원들이 최 씨에게 북한에 두고 온 아들과 부인에게서 사진과 편지를 받으려면 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러시아어를 모르는 최 씨가 이에 응했다는 것입니다.
이 서류는 최 씨가 난민 신청을 포기하고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서류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담당 변호사는 밝혔습니다.
현재 외국인 불법 체류자 수용소에 머물고 있는 최 씨는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의 안위를 걱정해 한국행은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메모리알’에 따르면 최 씨는 러시아 극동 아무르 주 틴다 시에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벌목공으로 일했습니다. 하지만 임금을 받지 못하자 숙소 경비원을 매수해 도망쳐 로스토프 시에서 숨어 지냈고, 2005년에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이동했습니다.
최 씨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건설 노동을 하며 지냈고, 현지인 아내와 가정을 꾸려 3살과 5살 난 아들도 뒀습니다.
러시아와 북한 당국은 지난해 2월 ‘불법입국자와 불법체류자 수용과 송환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1993년에서 1997년까지 주한 러시아대사를 지낸 게오르기 쿠나제 씨는 `코메르산트’에, 해당 협정이 러시아에서 망명을 신청하는 북한인들의 상황을 어렵게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쿠나제 전 대사는 과거에는 인권단체들이 즉각 목소리를 높여 탈북자의 북한 송환을 막았지만, 이제 양국 간 조약 체결로 탈북자가 자동송환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인권단체 ‘시빅 어시스턴스’에 따르면 지난 2004년에서 2014년 사이 러시아에 망명을 신청한 북한인 211명 중 2명만 망명이 승인됐고, 1년까지 임시망명을 신청한 170명 중에는 90명이 승인됐습니다.
‘시빅 어시스턴스’는 “북한과 맺은 러시아의 모든 조약은 러시아에 도움을 청하러 온 이들에 대한 범죄”라며 “옛 소련 시절처럼 러시아가 사람들을 고문과 죽음의 상황으로 넘기는 것이 부끄럽다”고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최근 밝혔습니다.
앞서 ‘포린 폴리시’는 10여 년 간 중국과 러시아를 떠돌며 갖은 고생을 겪다 지난해 말 마침내 미국에 도착한 탈북 남성의 사연을 소개한 바 있습니다.
VOA 뉴스, 조은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