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을 만나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시간입니다. 아프가니스탄 통역사 출신 푸드트럭 운영자,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를 만나보시겠습니다.
고난과 역경을 뒤로하고 이제는 미국인의 한 명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살아가는 난민들의 이야기, ‘나는 미국인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숙입니다.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가 끊이지 않는 중동의 아프가니스탄. 끊임없는 총성과 포화 속에 많은 사람이 희생되는 그곳에서 목숨을 내어놓고 미군을 위해 일했던 아프간 남성이 있습니다. 영어 통역사로 미군의 귀와 입 역할을 했던 이 남성은 3년이 지난 지금은 총성이 오가는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서 중동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의 얼굴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데요. 오늘은 아프가니스탄의 영어 통역사에서 미국의 푸드트럭 운영자가 된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씨의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현장음: 워싱턴 DC '페르시아의 맛' 푸드트럭]
평일 점심시간. 각종 푸드트럭이 워싱턴 거리 곳곳에 늘어서서 배고픈 직장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맛 햄버거에서부터 베트남 국수와 한국의 비빔밥까지, 전 세계 음식 박람회가 열리는 듯 트럭의 모양도, 트럭에서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도 다양한데요. 중동 음식을 파는 ‘페르시아의 맛’이라는 간판의 푸드트럭에서 오늘의 주인공 모함마드 씨를 찾았습니다.
[현장음: 워싱턴DC '페르시아의 맛' 푸드트럭]
유창한 영어로 주문을 받는 모함마드 씨, 밝은 표정에 싹싹한 태도 때문일까요? 푸드트럭 앞엔 손님들이 긴 줄을 이루고 있는데요. 손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음식 맛 또한 좋은 것 같습니다.
[녹취: 여자 손님] “저는 닭고기를 넣은 빵을 시켜서 먹었는데요. 아주 맛있네요. 이 푸드트럭 음식은 처음 먹어보는데 괜찮아서 또 올 것 같아요.”
[현장음: 워싱턴 DC '페르시아의 맛' 푸드트럭]
이란인 동업자는 뒤에서 고기를 굽고, 재료를 준비하고, 모함마드 씨는 주문을 받는 등 손발이 착착 맞아 움직입니다. 더운 날씨에 좁은 트럭에서 일하면서도 모함마드 씨 얼굴엔 웃음이 가득합니다.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누구나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게 되면 보통 밑바닥부터 시작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에서 처음 일하게 된 곳은 닭고기 전문 식당인데요. 정말 열심히 일했죠. 청소로 시작해 계산원 자리에 오르고 또 주방에서 요리까지 하게 됐어요. 거기다 지금은 이렇게 동업자와 푸드트럭까지 운영하게 됐습니다.”
푸드트럭에서 일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텐데, 모함마드 씨는 푸드트럭을 시작하면서도 식당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합니다.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가족을 먹여 살리려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밖에 없었어요. 식당 월급으로 다섯 식구 생활비를 대기가 빠듯하더라고요. 그래서 식당에서 일하면서 동시에 푸드트럭에서도 일하기 시작했죠. 그런데 두 일자리가 비슷한 점이 많아요.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점에서 다를 게 없죠. 푸드트럭은 이란 출신의 난민과 함께 일하는데요. 그 친구는 영어를 못하기 때문에 주로 요리를 하고요. 저는 손님들의 주문을 받고 계산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런데 많고 많은 푸드트럭 중에서 어떻게 ‘페르시아의 맛’이라는 이 푸드트럭에서 일하게 된 걸까요?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아주 우연히 이 푸드트럭을 만나게 됐어요. 3년 전에 식당에서 일하며 다른 일자리를 찾고 있었는데, 길을 가다 보니까 중동 음식을 파는 푸드트럭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찾아가서는 푸드트럭 주인한테 혹시 동업자가 필요 없느냐고 물었죠. 그 사람은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흔쾌히 같이 일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푸드트럭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이렇게 푸드트럭에서 손님들을 맞은 모함마드 씨는 원래 아프가니스탄의 영어 통역사 출신인데요. 미국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미국에 오겠다는 건 정말 중대한 결정이었습니다. 평생을 살던 곳을 떠나 전혀 모르는 곳으로 가야 하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연합군과 미군을 위한 영어 통역사로 일했는데요. 당시 통역사들은 탈레반이나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극단세력의 표적이었습니다. 아프간 정부나 해외 연합군을 위해 일하는 통역사들을 살해하거나 납치하는 경우가 무척 많았죠. 내가 누구인지 또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지면 저뿐만 아니라 제 가족까지 위험해지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함마드 씨가 미국에 오기로 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전 당시 미군과 일하면서 미국에 대한 일종의 환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미국에 오면 최고의 직장을 찾고, 최고의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고 있었죠. 그래서 미국에 오기로 결정했어요.”
그래서 모함마드 씨는 2014년 9월에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미국에 오게 됐습니다. 아프간 정부군과 미국 정부를 위해 일한 아프간인 중 난민이 될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미국 정부가 허락한 특별비자(SIVs)를 통해 미국에 입국하게 된 겁니다.
미국에 온 후 아이가 또 한 명 태어나면서 모함마드 씨는 다섯 식구의 가장이 됐습니다. 많은 자녀의 아버지가 되는 것은 큰 축복이었지만, 난민이나 다름 없는 처지의 모함마드 씨에게 가족들을 돌봐야 하는 건 큰 부담이기도 했습니다.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처음에 미국에 와서는 직업 찾는 일에 집중했어요. 사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은 일만 하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담 속에 시작하게 된 푸드트럭 사업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녹취: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푸드트럭 사업은 사실 예측을 할 수 없어요. 푸드트럭이 가는 장소나 시간대에 따라 무척 다르죠. 주말의 경우 관광객들이 많다 보니까 주중보다는 매출이 더 많고요. 그래도 전반적으로 현재 사업이 잘되고 있습니다. 푸드트럭을 하나 더 시작할 생각을 하고 있어요.”
[현장음: 워싱턴 DC '페르시아의 맛' 푸드트럭]
모함마드 씨의 푸드트럭을 찾는 손님 중에는 정기적으로 찾는 단골들도 제법 생겼습니다.
[녹취: 남자 손님] “이란과 아프간 음식을 팔고 있는데 제가 이 지역 요리를 아주 좋아하기도 하고요. 이 푸드트럭이 맛있게 잘해서 자주 찾고 있습니다.”
모함마드 씨는 손님들과 친구처럼 대화하기도 하는데요. 손님들 역시 난민들이 운영하는 푸드트럭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녹취: 남자 손님 2] “이민자들, 특히 난민들은 미국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난민 신분으로 미국에 오고 있고요. 제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보면, 난민으로 온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열심히 일하고, 미국 사회에 기여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모함마드 씨도 그런 것 같고요.”
손님으로부터 미국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모함마드 씨, 하지만 미국에서의 처음 정착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미군 통역사로 일하며 기대했던 미국과 현실에서 부딪히는 미국은 많이 달랐고, 가족들 역시 어려움을 겪었죠. 하지만 모함마드 씨는 어려움을 하나하나 이겨나가며 현재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네, 미국에 정착한 난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나는 미국인입니다', 오늘은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통역사 모함마드 마슈크 도우라티 씨의 첫 번째 이야기와 함께했습니다. 다음 주에는 모함마드 씨의 두 번째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김현숙이었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