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 뒤 동독 지역의 교육 개혁을 점검하며 미래 한반도 통일 시대를 대비하는 토론회가 최근 서울에서 열려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우월감이 아닌 열린 자세,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다가섰던 서독의 배려가 교육 통일을 안착시킨 것처럼 한국도 같은 자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았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남북한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통일이 되면 북한의 현 교육 체계는 어떻게 바뀔까? 김 씨 가족 우상화를 최우선으로 가르치는 북한의 교원(교사)들이 통일 뒤에도 계속 직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통일 뒤 북한의 낙후된 교육제도가 성공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독일 통일 뒤 동독에 있었던 교육 변화를 통해 통일시대 북한의 교육을 준비하는 토론회가 최근 서울에서 열렸습니다.
[녹취: 행사장 토론 소리]
‘통일 이후의 교육, 독일과 함께 논하다’는 주제로 열린 이 행사는 독일의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KAS) 한국사무소와 한국의 대표적인 탈북민 대안학교인 여명학교가 협력해 개최했습니다.
아데나워 재단의 슈테판 잠재 한국소장은 ‘VOA’에 독일 통일 직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교육 제도의 변화가 한국에서도 특별한 관심사이기 때문에 행사를 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녹취: 잠재 소장] “The educational system and the changes that have been undergoing in Germany right after unification…”
독일과 남북한 전문가들이 서로의 교육제도를 객관적으로 비교하면서 미래 한반도 통일에 대비하도록 다리를 놓고 싶었다는 겁니다.
이날 행사에는 독일 통일 뒤 동독의 교육 변화를 연구한 리타 니콜라이 베를린 훔볼트 대학 교수, 북한 교원 출신으로 남한에서도 교사로 활동중인 다양한 탈북민들이 참석해 토론했습니다.
니콜라이 교수는 독일 통일 뒤 동독지역의 학교구조, 교사 고용 현황, 학업 과정의 변화를 설명하며 ‘유연성’과 ‘실용성’, ‘가치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녹취: 니콜라이 교수] “독일어”
동독은 통일 뒤 서독의 교육과정을 지향하고 새로운 교육 제도를 도입했지만, 기존의 구조를 완전히 폐지하지 않은 채 동독의 가치를 존중하며 점진적인 개혁 절차를 밟았다는 겁니다.
특히 주마다 규모는 달랐지만, 대부분이 기존의 교사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민주시민교육 등 재교육을 통해 변화를 추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의 국가보위성에 해당하는 동독의 정보기관 슈타지와 연계된 교사들만 파면하고 대부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점진적 변화를 시도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동독 교사들은 서독 교사들에 비해 낮은 임금, 학교의 중요한 결정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참여하는 서독식 교육에 익숙하지 않아 많은 혼란을 겪었다고 니콜라이 교수는 지적했습니다.
[녹취: 니콜라이 교수] “독일어”
그 결과 일부 우수한 동독의 교사들이 서독으로 이주했고 교사들마다 요구하는 재교육 과정이 달라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는 겁니다.
또 동독의 어린 학생들은 새로운 교육 제도에 빠르게 적응했지만, 교사들은 상대적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 교원 출신 탈북민 교육 전문가들은 그러나, 학생들을 수령에 충성하는 혁명가로 키워내야 하는 북한 교원의 최우선 의무 때문에 북한은 통일 뒤 동독보다 더 큰 장애물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북한에서 영어 교원으로 8년을 가르친 뒤 탈북해 한국에서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한진희 여명학교 교사입니다.
[녹취: 한진희 씨] “교사 역할은 인민들을 당과 수령에게 충성하고 복종하도록 키워내는 북한 정권과 인민의 매개체이며 세뇌 교육의 실천자입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어려서부터 집중적인 사상교육을 시켜 성장할수록 김일성 가계를 숭배하고 사회주의를 지키는 총폭탄이 되어 북한을 강성대국으로 만들도록 교육시켜야 합니다.”
한 씨는 행사 뒤 ‘VOA’에 동독이 정치적 교사들을 해고한 사례를 북한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모든 교사를 해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교원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당에서 제시한 방침들을 그대로 적용하는 모두 정치적 성격을 띤 사람들이기 때문에 독일식 해고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겁니다.
한 씨는 따라서 기존의 많은 교원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안정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대안들을 찾는 게 중요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한진희 씨] “저는 솔직히 일단 다 아우르게끔 교사를 그대로 시키되 편차는 있는 거죠. 자격도. 혁명 관련 과목을 가르친 교사들은 본인이 나가겠다고 하면 나가는 것이고 급여가 낮더라도 한국에 오니까 상담이나 사회복지 등 행정업무가 많으니까 그런 부분들을 적용해서, 그래도 교육에 있던 분들이니까 (그런 것을) 시키는 게 낫고. 저도 영어를 했습니다만 영어나 수학은 재교육을 시켜서 그냥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역시 탈북민 출신으로 교육대학원에 재학 중인 이심일 여명학교 교사는 남북한의 판이한 학교문화 차이를 이해하면서 긍정적인 것을 접목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심일 씨] “북한은 국가주도의 교육이고 교수자가 교육의 주체라면, 한국은 학습자! 학생이 교육의 주체가 되겠죠. 실제로 교사의 권위보다는 학생과 학생의 인권, 학부모의 권위가 훨씬 높기도 하고. 북한은 그 반대라는 거죠. 한국은 교사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수업하려는 시도들이 있고, 수업 분위기도 자유롭죠. 북한은 수업시간에 졸지도 못하고 엄격하거든요. 한국은 그런 게 적고 교사와 학생 관계도 굉장히 유연하고 그런 반면에 사교육이 너무 많고 교사의 행정업무가 너무 많다. 북한의 경우는 행정업무가 적은 편인데 교육에 필요한 물품 자체가 거의 없고 너무 국가 중심이다. 그러니까 교사는 국가가 정해준 지식을 전수하는 자로서의 역할 밖에 할 수 없는. 성격이 많이 다르죠.”
이날 전문가들은 한반도 통일 뒤 실력 있는 북한 교원들의 남한 이주 가능성, 남북한의 판이한 교육 격차를 우려하면서도 남한의 일부 부정적인 교육 문화를 그대로 옮겨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습니다.
역시 북한 역사 과목 교원 출신인 서울통일교육센터의 엄현숙 박사는 북한의 교육제도가 매우 후진적이긴 하지만, 이를 무조건 무시하는 태도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엄현숙 박사] “한국 내 사범대학, 학생을 양성하는 대학에서는 북한의 모든 것을 무시하는 태도를 종종 느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통일되면 북한 선생들 다 쓸모없으니까 남한 교사들이 왕창 필요할 거다. 그래서 필요한 자격과정을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교원과 학생 측면에서 북한 사회 자체가 굉장히 저평가되었다는 겁니다. 어찌 됐건 북한 사회 모두를 무시하고 통일은 다 우리가 한다는 마인드는 (북한에서) 선생을 했던 제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아데나워 재단의 잠재 한국소장은 독일이 40여 년 분단하고 베를린 장벽이 세워진 지 28년 만에 통일한 것과 비교하면 분단 70년이 넘은 한반도는 더 큰 진통이 따를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니콜라이 교수는 이에 대해 “열린 마음과 서로 배워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녹취: 니콜라이 교수] “독일어”
과거 동독에서 가르치길 원했던 서독의 교사들은 열린 자세와 자원하는 마음, 동독 재건에 기여하고 싶은 의지가 매우 강했다는 겁니다.
특히 동독인들과 소통하며 서로 배우기를 원했고 일방적 도움이 아닌 서로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의미를 찾았다고 니콜라이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또 시간이 흐른 뒤 자원했던 서독인 교사들을 설문 조사한 결과 “동독에서의 시간은 굉장히 어려웠지만, 매우 의미 있고 소중하며,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답변이 많았다는 겁니다
한진희 씨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남한 교사들이 먼저 따뜻하게 품는다면 북한의 교원들도 이를 환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한진희 씨] “이질감을 해소하고 그러니까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가 너무 다르잖아요. 다름을 인정해주라. 저는 이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통일이 되어서 북한 교사들과 같이 교사 생활을 할 때 영어를 좀 모른다고, 컴퓨터로 문서 작성을 좀 할 줄 모른다고 그런 나라에서 살았으니까 모른다고 하시지 마시고 비난을 할 시간이면 좀 더 도와주시고 케어를 해 주시고 따뜻하게 품어주시면 저희 북한 선생님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마워할 것입니다. 같이 아우르고 어울리면서 한민족의 통일된 모습을 보여드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탈북민 출신 교사들은 그러나 투자가치를 너무 금전적으로 계산하는 교육 문화, 사교육의 병폐, 교사들의 과도한 행정업무 등 한국의 부정적인 교육 문화는 북한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행사를 공동 주최한 여명학교의 조명숙 교감은 행사장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것을 보면서 사람과 사람의 통일에 희망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조명숙 교감] “아카데믹한 게 아니고 사람의 통일이니까. 사람들이 통일 과정에서 어떤 마음과 어려움을 겪고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를 독일의 경험을 통해 배우고, 또 우리는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어떻게 서로 공동체가 될 준비를 해야 하는지를 배우기 위해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정말 많은 분들께서 와 주셔서 아 아직 한국에 희망이 있구나. 지금은 통일이라는 얘기를 꺼내기도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 안에서 노아의 방주처럼 욕을 먹으면서도 뭔가 준비하는 이런 모임에 와 주신 거 너무 감사하고 격려가 됐어요”
조 교감은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 우월적 지위에서 내려다보며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한국인들이 잘 배울 수 있도록 친절하게 대하는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며, 독일이 통일을 먼저 이룬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데나워 재단은 독일의 기독교민주당(CDU)과 연계된 정당 단체로 자유와 정의, 연대감을 중시하며 민주와 법치 가치 등을 전 세계에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