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북한관련 화제성 뉴스를 전해드리는 ‘뉴스 풍경’시간입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은 미국의 최대 명절인 ‘땡스기빙데이’를 어떻게 보냈을까요? 고향을 그리워하면서도 같은 처지의 탈북자 혹은 가족들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는데요. 장양희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민간단체 ‘미주 탈북자동지회’는 탈북자단체로는 드물게 100여 명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올해 설립된 이 단체는 캘리포니아 지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의 미국정착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 활동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미국 내 연고가 없는 탈북자들의 가족이 되어주는 것이 이 단체의 설립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난 10월 한국의 최대명절인 추석에는 단체 설립 후 처음으로 30여 명의 탈북자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며 한인들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지난 22일에는 미국의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맞아 다시 나눔의 시간을 가졌는데요 이 단체 김창호 대표가 손수 식단을 짰습니다.
[녹취: 김창호] “우리 사람들 옛날 북한에 조개 먹던 생각이 나거든요. 대합조개 같은 거. 겨울에 특히 많이 잡히거든요 가마니 펴놓고 휘발유 넣고 개스 넣고..조개 다 익죠 그렇게 앉아서 먹는 재미 그래서 우리 이번엔 조개를 먹어보자 하더라고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와이프 랑 같이 새벽시장 돌았거든요. 없는 돈이지만 굴이나 대합조개나 여느 때 먹지 못했던.. 명절 쇨 수 있는 거..
김창호 씨는 형편이 넉넉지는 않지만 이렇게라도 탈북자들을 챙길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한국을 거쳐 지난 2007년 미국에 입국해 로스앤젤레스 멕시칸 재래시장에서 안마소를 운영하는 김 씨는 조촐하게나마 이렇게 베풀 수 있는 건 지난해 보다 가게 수익이 늘었기 때문이라며 감사해 했습니다.
김 씨는 열두 살과 열네 살인 아들과 딸이 학교생활에 충실해 학업성적이 우수하다면서 힘든 이민 생활에서 가장 보람된 일이라고 말합니다.
[녹취: 김창호] “정말 우리 애들이 열심히 공부를 잘 하거든요. 그래서 내 후년이면 대학 가거든요? 어두운 곳에서 왔지만 애들이 너무 잘 따라가니까 고맙고요.”
지난 2010년 미국에 정착해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 샬롯츠빌에서 세탁물관리와 수선집을 운영하는 찰스 김 씨는 지난해보다 가게 수익이 두 배 늘었습니다.
하루 10시간, 휴일 없이 일하는 찰스 김 씨는 같은 탈북자인 부인과 함께 추수감사절을 맞아 모처럼 편하게 쉬면서 조촐한 식사를 나눴습니
[녹취: 찰스 김] “칠면조 너무 커서 안 사고 봉조개 샀어요 조개. 한 박스 사다가 불에다 구워놓고 와이프하고 와인한잔 먹고 있어요(웃음) 나는 군대 복무를 바다 웅진 바다에서 했기 때문에, 와이프가 해산물을 좋아해서 ..”
김 씨는 최근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옷 수선 주문이 너무 많아 일을 도울 직원을 찾고 있습니다.
김 씨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년도 올해만 같았으면 좋겠다면서도 옷 수선을 도와줄 사람을 꼭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찰스 김] “올해와 같이 건강한 삶을 주고 행복한 삶을 주고 아무 변화 없이 지냈으면 좋겠고요, 북한이 빨리 통일되면 좋겠고요. 귀중한 사람 한 명 좀 보내줬으면 좋겠습니다.”
1996년 탈북해 2010년까지 한국에 거주했던 송모 씨는 미국으로 이주해 조지아주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송 씨는 미국에 온 후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이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최근 조지아주에 이주한 탈북자들과 함께 식사하며 고향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녹취: 송 모씨 ] “이때 까지 혼자서 명절 보내는 것 보다 같이 동향 분들이 만나서 새롭죠. 외롭게 혼자 명절 보내는 것보다 나으니까. 감사하죠. 7년 되가는데 동향 분들과 같이 보내는 게 처음이에요.”
송 씨는 이번 추수감사절에 처음 쉬게 됐다면서 2017년이 특별히 감사한 해라고 말합니다. 성실히 일한 덕분에 승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녹취: 송 모 씨] “새로운 파트에 옮겨 와가지고 총괄적으로 지위가 모든걸 맡겨준대 대해서 감사한 면은 많습니다. 승진 많이 했죠. 두 단계 뛰었으면 많이 했죠. 남들에 비하면 많이 올랐죠.”
버지니아주에서 6년 동안 거주해온 30대 탈북 여성 김모 씨는 올 한해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학업을 마쳤지만, 취직이 어려워 고민하고 있는데요 탈북 후 한국에서 살았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의 길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김 씨는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교회에서 중요한 사역을 맡게 된 것이 감사한 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내 탈북자들은 난민 자격으로 입국한 사람과 한국을 거쳐 입국해서 노동허가만 받은 사람, 학생비자로 공부해 졸업 후 1년 동안 일자리를 찾는 사람 등 신분이 다양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미국정착을 목표로 앞만 보고 달려갑니다. 그렇게 한 해를 살다가 이렇게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이 되면 마음 깊이 묻어 둔 고향이 그립기 마련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탈북자동지회 김창호 씨는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를 꿈에서 종종 뵙니다.
[녹취: 김창호] “북한에 형한테 돈을 보내면서 그랬거든요, 내가 아빠한테 해 준 게 없어서 .. 돌아가신 묘를 최고로 잘 만들어라, 비석도 최고로 예쁘게 만들고.. “
김 씨는 고향이 그리워 종종 컴퓨터를 켜고 위성사진으로 지구촌 곳곳을 살펴볼 수 있는 ‘구글 어쓰’에서 고향을 찾습니다.
[녹취: 김창호] “정말 그렇게 형한테 말해놓고 구글 인터넷 들어가서 혹시나 보일까 해서 봐요. 우리 집하고 뒤에 산에 모시는데…… 집은 보이는데 아버지 산소가 어딘지 딱 짚어서 못하겠더라 고요. 아버지 너무 보고 싶고.. 꿈에서 보면 밝은 모습으로 왔으면 좋겠어요.”
찰스 김 씨도 북한에 가족을 두고 나왔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탈북 여성과 미국에서 새 삶을 꾸렸지만 이맘때면 가족들이 보내준 사진을 벽에 걸어놓고 이맘때면 망향가를 부르기도 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들의 마음고생을 보상해줄 것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해온 김 씨는 명절을 맞아 고향에 계신 부모 형제에게 다시 한번 마음을 전합니다.
[녹취: 찰스 김] “아 고향에 계신 우리 부모 형제……얼마나 춥고, 일개인의 독재로 인해서 힘들게 고생하는데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고 이제 밝은 세상이 올 테니 그때 만나서 맘껏 회포를 나누고 행복하게 살 날을 기대하며 오래오래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VOA 뉴스 장양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