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11년째 살며 북한 정권의 반인도 범죄를 수집해 디지털 지도를 만드는 미국인이 있습니다. 미 북부 위스콘신주 출신의 댄 빌르펠드 씨가 그 주인공인데요. 북한 정권이 수 십 년째 운용하는 강제수용소에 충격과 도덕적 책임을 느껴 북한 주민들의 자유를 위한 일에 동참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의 김영권 특파원이 빌르펠드 씨를 만나 봤습니다..
[녹취: 경복궁 앞 차량 소리]
서울의 중심지인 경복궁 앞에는 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해 고층 빌딩들이 즐비합니다.
대부분 중앙난방장치가 되어 있어 한겨울에도 셔츠만 입고 따뜻하게 일할 수 있는 빌딩들입니다. 하지만 경복궁 바로 건너 편에 있는 한 작고 오래된 건물 사무실에 들어가면 여기 저기 간이 전기난로들이 켜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실내에서 두툼한 점퍼를 입고 일하는 직원들 모습만 보면 마치 북한 기록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양의 건물 안에 들어온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이 곳은 북한 내 반인도범죄 관련 증거들을 수집해 기록하는 민간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한 이 단체 이영환 대표는 공개처형 등 국제사회가 금지하는 인권범죄 정보와 장소들을 알아내 이를 디지털 지도로 시각화하는 게 핵심 활동 중 하나라고 설명합니다.
[녹취: 이영환 대표] “북한 정권의 인권 유린으로 사망하고 실종되신 분들이 매장된 곳들을 북한에 들어가지 않고 여기 남한에서 위성지도로 활용해 조사를 해 가고 있습니다.”
이 단체 사무실에서 다시 놀라는 것은 직원 가운데 절반이 미국과 영국, 캐나다에서 온 외국인들이란 겁니다.
[녹취: 영어로 회의하는 직원들 목소리]
미국 북부 위스콘신주에서 온 덴 빌르펠드 기술팀장도 이 가운데 한 명입니다.
[녹취: 빌르펠드 팀장] “My name is Dan Bielefeld and I’m originally from the U.S. but I’ve lived here…”
한국에서 11년째 사는 빌르펠드 팀장은 이 단체 출범과 함께 2년 반째 북한의 반인도 범죄 장소를 디지털 지도로 시각화하는 작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탈북민 인터뷰를 통해 북한에서 목격한 공개처형 장소와 매장지를 구글 위성사진에서 찾아내 이를 매핑-지도화하는 겁니다.
왜 이런 작업이 중요한지를 묻자 빌르펠드 팀장의 목소리가 커집니다.
[녹취: 빌르펠드 팀장] “Why is it important? It’s very good question! Actually, it’s important for many different reasons…”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북한 정권이 교체되거나 수뇌부가 바뀌는 상황, 혹은 체제 환경이 변화돼 북한사회가 개방되면 지난 60년 이상 김 씨 정권이 자행한 인권 범죄들에 대한 책임 추궁이 이어질 것이란 겁니다.
특히 재판이 열리면 증거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작업이 증거를 찾는 데 중요하고 또 피해자 가족이 실종된 사랑하는 가족의 소재를 찾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게 빌르펠드 팀장의 설명입니다.
동독 등 옛 동유럽 공산국가, 캄보디아, 르완다 등 반인도 범죄가 발생한 곳에서는 체제 환경이 바뀐 뒤 거의 예외 없이 국내 혹은 국제 법정이 세워져 책임자들을 처벌해 왔습니다.
이영환 대표는 빌르펠드 씨가 요즘 잘 나가는 정보·기술 전문가이자 넓은 인적 관계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기업에서 일했다면 더 좋은 환경에서 훨씬 많은 임금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영환 대표] “저희가 안전하게 조사하고 기록하고 그 자료들을 북한 당국이 뺏어가거나 훼손하지 못하도록 인터넷 보안을 설정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데이터 보안 측면에서 보안전문가가 필요한데요. 한국에서 특히 인권단체에서 고도화된 보안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전문인력을 찾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 전문가와 일하려면 상당히 많은 보수, 월급을 줘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헌신성과 어려움, 넉넉하지 않은 환경인데도 미국에서 한국까지 와서 이렇게 중요한 일에 찾기 어려운 분과 함께 일할 수 있게 돼, 저희가 조사하는 일이 굉장히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인데, 그 일은 댄 빌르펠드 씨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빌르펠드 팀장은 한국 음식과, 문화, 한국인들이 궁금해 십 수 년 전 휴가를 내 한국을 처음 찾았습니다. 당시 한국문화에 매료돼 한국을 더 공부하면서 한반도에 필연적 존재인 북한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빌르펠드 팀장] “When they are talking about six party talks…
처음에는 6자회담 등 핵 협상에 관심을 가졌지만, 대화를 위한 대화 공전에 피로감을 느끼다가 북한에서 관리소로 불리는 정치범 수용소, 식량난으로 인한 주민들의 영양실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겁니다.
빌르펠드 팀장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기사를 보면서 미국의 학교에서 배웠던 홀로코스트, 즉 옛 나치독일 정권의 유대인 대학살과 그들이 운용한 강제수용소가 떠올랐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빌르펠드 팀장] “Certainly, we all learned the Holocaust in Europe….”
“Never Again” 결코 다시는 지구상에서 이런 반인도 범죄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홀로코스트의 교훈이 과거가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빌르펠드 팀장은 북한은 다 나쁘고 외부세계는 다 좋다는 흑백 논리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며, 그러나 그런 강제수용소가 60여 년째 지구상에서 운용되고 있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스스로에게 용납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배운 자유의 소중함과 다양성의 가치를 탄압하는 북한의 실상이 자신에게는 불편한 존재로 다가왔다는 겁니다.
빌르펠드 팀장은 이후 여러 북한인권단체들의 활동을 도왔고 지난 2015년부터 전환기정의워킹그룹에서 디지털 지도뿐 아니라 기록 보안, 웹사이트 구축 책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빌르펠드 팀장과 함께 일하는 북한 출신의 오세혁 선임연구원은 가뜩이나 꼼꼼한 그의 잔소리가 요즘 더 심해졌다고 불평하면서도, 그의 노력에 고마움을 잊지 않았습니다.
[녹취: 오세혁 선임연구원] “좀 잔소리 많이 하는 사람이죠(웃으며) 왜냐하면 이메일 확인할 때 혹시나 보안 때문에 열어보지 말아야 할 파일이 있다거나 들어가지 말아야 할 웹사이트 같은 게 있거든요. 그런 데 들어가 봤는지 막 확인하고 있으면 저한테 잔소리 심하게 하죠 하하”
빌르펠드 씨가 여러 새로운 장비들과 기술, 소프트웨어를 발견해 이를 무료나 저렴하게 제공받도록 노력하고 있어 도움이 많이 된다는 겁니다.
최근 북한인권단체들에 대해 북한 당국의 해킹이 잦아지면서 빌르펠드 팀장도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이 단체에서 일한 지 한 달째인 최유림 씨는 잠시 화장실에 갈 때도 빌르펠드 팀장의 보안 원칙을 모두가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녹취: 최유림 씨] “단체 보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컴퓨터 비밀번호도 매우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고 매우 소중하게 지니고 있고. 잠깐 화장실에 갈 때도 비밀번호를 꼭 잠그고. 사소한 것부터 지키는 게 힘들지만 댄이 그만큼 보안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힘들지만, 따라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료인 영국인 세라 손 연구팀장은 빌르펠드 팀장이 최고의 기술 책임자일 뿐아니라 강한 열정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동료들에게도 좋은 격려가 된다고 말합니다.
[녹취: 세라 손 팀장] “He also has really strong passion for this work as well…”
빌르펠드 팀장과 동료들은 모두 북한의 미래 전환기 시대에 억울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고 정의가 세워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빌르펠르 팀장은 특히 기자에게 “왜 우리는 자동차나 KTX 고속열차를 타고 부산이나 대전을 가는 것처럼 북한에 가지 못하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면서 북한에 더 많은 자유가 생겨 북한 주민들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빌르펠드 팀장] “I would love to see more freedom in North Korea so that the North Korean people can determine their own future….”
빌르펠드 팀장은 북한 주민들이 지도자를 우상숭배 하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정권의 협박 없이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한국을 자유롭게 여행하는 세상. 우리가 KTX 기차를 타고 평양에 가서 북한 주민들과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길 간절히 염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