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비핵화에는 핵무기 뿐만 아니라 미사일, 생화학무기 폐기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유엔 안보리 산하 등에 새로운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고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이 밝혔습니다.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은 22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북한의 비핵화 절차는 과거 어느 사례보다 큰 규모가 될 것이라며 IAEA의 역량을 뛰어넘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1, 2차 북 핵 위기 당시 영변 핵 시설 사찰을 주도했던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을 김영남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북한은 추가 핵, 미사일 시험을 금지하고 풍계리 핵 실험장 폐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긍정적인 진전이라고 생각하지만 큰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협상을 위한 환경을 개선하는 데는 중요한 진전이었습니다. 하지만 북한이 중단하겠다고 한 실험들이 매우 빨리 재개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북한의 발표에는 어떤 것을 폐기하겠다거나 없애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기자) 풍계리 핵 실험장은 이미 노후화됐기 때문에 큰 의미가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그런 주장이 있는 것은 맞지만 저희는 해당 핵 실험장이 실제로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합니다. 저는 북한이 또 다른 핵 실험장은 없으며 다른 핵 실험장을 만들 계획이 없다고 밝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다면 아마 최고의 약속이 됐었을 겁니다.
기자) 핵 실험장을 폐기한다고 밝혔는데 약속을 번복하고 해당 시설에서 실험을 재개하는 게 쉽습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북한이 말하는 폐기라는 단어의 뜻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현재 두 가지 사안이 있는데 하나는 미사일 실험입니다. 미사일의 경우는 언제라도 실험을 재개할 수 있습니다. 핵 실험장의 경우는 북한이 말한 폐기가 어떤 의미인지에 달려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폐기는 핵 실험장의 출입문을 닫는 것뿐만 아니라 실험에 필요한 모든 도구들을 폐기하는 겁니다. 쉽게 실험을 재개할 수 없도록 말이죠. 문제는 이를 검증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북한이 말한 폐기는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정치적이라고 판단합니다.
기자)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은 유엔 안보리 산하에 기구를 만들어 북한의 핵 폐기를 감시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비핵화라는 단어의 의미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새로운 기구를 만들되 IAEA 역시 일부 임무를 맡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현 상황은 핵무기나 핵 물질에 대한 감시만을 하는 게 아니라 폐기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단계입니다. 비핵화라는 단어에는 북한의 미사일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이를 검증하는 내용도 담겨 있길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IAEA의 전문성을 뛰어 넘는 문제가 됩니다. 또 화학무기, 생물무기와 같은 다른 대량살상무기(WMD) 역시 폐기돼야 할 텐데요. 화학무기의 경우 화학무기금지기구(OPCW)가 있지만 생물무기를 전담하는 기구는 없습니다. 따라서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의해 폐기돼야 하는 모든 것들을 검토해보고, 이를 총괄하는 기구가 IAEA나 OPCW 등에 임무를 맡기는 게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IAEA의 역량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제3의 기구가 신설돼야 한다는 뜻인가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완전히 새로운 국제기구가 신설될 필요는 없지만 북한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 따라 특별 기구가 생기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북한의 비핵화가 현실이 된다면 가장 큰 규모의 비핵화 사례가 될 겁니다. 국제사회가 지금까지 비핵화에 나서고 검증에 나섰던 어떤 사례들보다도 말이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일정 기간 동안 운영될 특별 기구가 설립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들에 대한 폐기 절차가 이뤄진 다음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이나 화학무기금지조약(CWC)에 따라 사찰 활동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저는 유엔 안보리 산하에 특별 기구를 만드는 데 동의합니다.
기자) 최근 IAEA는 북한 핵 시설에 대한 사찰 준비는 몇 주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핵 사찰을 위해선 어떤 절차를 밟게 되는지 소개해주시죠.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몇 주보다는 오래 걸리겠지만 나아갈 단계들이 있습니다. 우선 검증을 위해선 북한이 어떤 시설들에서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알아야 합니다. 북한이 핵 관련 시설을 전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핵 시설에서 어떤 핵 물질을 만들고 어떤 과정을 거쳐 이 물질을 핵무기로 만드는지 말이죠. 또한 핵무기 관련 모든 연구시설, 그리고 원심분리기 등을 만드는 제조 시설 역시 공개해야 합니다. IAEA는 이후 해당 시설들을 방문해 실제로 모든 활동이 동결됐는지 파악하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쉬운 과정이고 매우 빠른 시간 안에 진행할 수 있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IAEA에 사찰을 요구했을 당시 사찰 과정은 1달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라크 역시 비슷했죠. IAEA가 할 수 있는 역량이 되는 부분입니다.
기자) 어려운 부분은 그 이후라는 뜻인가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어려운 점은 실제 폐기를 하고 북한이 공개한 시설들이 사실이 맞는지 검증하는 과정입니다. 시간이 꽤 걸리는 작업입니다. 저는 이 과정을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새로운 검증 방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이동식 핵 연구시설이나 관련 사회기반시설을 파악하기 위해서 말이죠. 모든 절차는 북한의 핵 관련 시설이 동결된 다음부터 이뤄질 텐데요. 아마 모든 작업은 몇 달이 아니라 몇 년이 걸리게 될 겁니다.
기자) 북한의 전면적인 핵 시설 공개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검증이 성공할 수는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 북한이 공개한 사실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를 보면 제대로 된 공개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2005년 핵 시설 공개 당시에도 마찬가지였죠. 저희는 처음부터 완전한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과거 사례들로부터 배웠습니다. 북한이 이번에는 자신들이 비핵화에 대해 진지하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공개가 이뤄진 다음에야 어떤 검증 절차를 밟아야 할 지 계획할 수 있습니다.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으로부터 핵, 미사일 시험 중지와 핵시험장 폐기를 선언한 북한의 의도와 비핵화를 위한 검증 절차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김영남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