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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따라잡기] 전미총기협회 (NRA)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애틀란타에서 열린 전미총기협회-ILA 리더쉽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애틀란타에서 열린 전미총기협회-ILA 리더쉽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뉴스의 배경과 관련 용어를 설명해드리는 ‘뉴스 따라잡기 시간’입니다. 미국 중앙 정치권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전미총기협회(NRA)가 지난 3일부터 연례 총회를 열고 있습니다. 6일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참가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4년 연속 이 행사에 나와 연설하는데요. 뉴스 따라잡기 오늘 이 시간은 NRA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김정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여가 단체에서 총기 소유권 옹호 단체로 변신한 NRA”

NRA는 ‘전미총기협회’를 뜻하는 영어 ‘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줄임말입니다. NRA는 지난 1871년 일종의 여가 단체로 출범했습니다.

[음향: 남북전쟁 전투]

미국 남북전쟁 당시 미 육해군신문의 편집장이었던 윌리엄 코넌트 처치와 북부군 소속 조지 우드 윈게이트 장군은 연방군 병사들 사격술이 형편없음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결국 남북전쟁이 끝난 뒤인 1871년, 사격술 훈련을 목적으로 NRA를 만듭니다.

NRA는 처음엔 여가 단체로 출범했지만, 1934년 총기 관련 법에 대한 정보를 회원들에게 우편으로 보내는 것으로 로비 단체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로비’는 특정 이익 집단을 위해 정치인들을 설득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NRA는 1934년 전국 총기법과 1968년 총기 통제법을 지지했습니다. NRA는 특히 총기 통제법이 통과된 뒤인 지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정치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1975년 NRA는 산하에 로비 전담 부서를 새로 설치했고, 1977년 정치인들에게 후원금을 제공할 정치행동위원회(PAC)를 만들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NRA는 미국 안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로비 집단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재 NRA는 웨인 라피에르 부회장이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있습니다.

“NRA의 힘 - 천문학적인 예산과 회원”

NRA는 한 해 2억 달러가 넘는 예산을 씁니다. 이는 미국 내 여타 총기 소유 옹호 단체들의 예산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습니다.

미국 민간 조직인 책임정치센터 집계에 따르면 NRA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지난 2016년 총기 소유권 옹호를 위한 로비에 약 300만 달러를 썼습니다. 또 정치권에 100만 달러를 직접 기부했고, 정치 광고 집행 등이 포함된 외부 비용으로 5천400만 달러를 썼습니다.

전문가들은 NRA의 힘이 바로 이런 막대한 돈에서 나온다고 지적합니다.

[녹취: NRA 광고]

전문가들은 NRA가 조직 회원들을 통해 정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지적합니다. NRA 회원들은 선거에서 후보들의 총기 소유권 지지 여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NRA는 총기 소유권에 대한 성향에 근거해 정치인들을 A등급에서 F등급까지 분류합니다. A등급은 NRA에 가장 우호적인 정치인이며, F는 가장 적대적인 부류입니다.

이런 분류는 선거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선거에서 NRA에 적대적인 후보가 NRA 지지를 받는 후보를 이기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분명한 현실입니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 2016년 NRA가 지지하거나 반대한 후보 가운데 약 72%가 NRA가 원하는 대로 당락이 결정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논란이 많은 NRA 회원 규모”

지난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NRA 측은 회원 수가 5백만 명을 넘어섰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도 NRA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가입 회원 수가 500만 명에 달한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이들이 회원 수를 부풀린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일부 전문가는 NRA 회원 수를 약 200만 명에서 300만 명 사이로 추정합니다.

NRA 회원에는 유명한 사람이 많습니다. 세라 페일린 전 공화당 부통령 후보, 유명 영화배우 톰 셀렉, 그리고 우피 골드버그 씨도 NRA 회원입니다.

미국의 대배우로 평가받는 고 찰턴 헤스턴 씨는 지난 1998년부터 2003년까지 NRA 회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녹취: 헤스턴 연설] “I want to say those fighting words...”

헤스턴 씨는 지난 2000년 NRA 연례행사에 나와 논란이 된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단상에서 장총을 머리 위로 치켜들며 자신이 죽어야 총을 자기에게서 뺏을 수 있을 것이라고 외쳐 화제가 됐습니다.

“NRA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

NRA는 미국 시민의 총기 소유권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되는 미국 수정헌법 2조를 강력하게 지지합니다. 이에 따라 NRA는 그간 총기 소유권을 제한하거나 총기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에 반대하는 로비를 맹렬하게 펼쳐왔습니다.

NRA는 특히 총기 규제보다 더 많은 총을 보급하는 것이 미국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녹취: 라피에르 CEO 2012 연설] “The only thing that stops bad guy with a gun…”

지난 2012년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나고 총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부상하자, NRA의 웨인 라피에르 CEO는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에 무장 경비원이 없어 이런 참사가 났다고 주장했습니다.

라피에르 CEO는 올해 초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플로리다주 더글러스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해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했습니다.

[녹취: 라피에르 CEO 2018 연설] “Schools must be the most hardened targest in this country...”

올해 보수 진영인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행사에 나와 연설한 라피에르 CEO는 학교가 가장 취약한 목표물이 됐다며, 악마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힘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총을 가지고 총기난사범을 제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총기 규제 강화 움직임과 NRA의 향후 행보”

플로리다주 더글러스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 난 뒤 총기 규제 강화 여론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참사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학교 총기 난사 피해자 가족과 생존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총기규제 강화 방안을 언급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Well, we are going to do a lot. We are going to be very strong on background checks…”

트럼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총을 사려는 사람의 신원조회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또 공격형 소총 구매 가능 연령을 상향 조정하는 조처도 고려하겠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수정헌법 2조를 폐기할 수 없다는 기존 자세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 더글러스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NRA 연례 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말을 할지 관심이 쏠립니다.

뉴스 속 인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지난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텔아비브의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의 비밀 핵무기 개발을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이 미국을 포함한 주요 6개국과의 핵 합의를 어기고 비밀리에 핵개발을 지속해왔다며,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텔아비브의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의 비밀 핵무기 개발을 주장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이 미국을 포함한 주요 6개국과의 핵 합의를 어기고 비밀리에 핵개발을 지속해왔다며,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뉴스에서 화제가 됐던 인물을 소개하는 ‘뉴스 속 인물’ 시간입니다. 오늘 이 시간 주인공은 최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입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4월 30일 이란이 거짓말했고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제기구와 유럽연합(EU)가 이란이 핵 합의를 충실하게 지키고 있다고 평가한 상황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말이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1949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났습니다. 1963년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주했고, 네타냐후는 18세 되던 해 이스라엘로 돌아가 5년간 군에 복무했습니다.

군 복무기간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던 네타냐후는 군에서 나온 뒤 미국으로 돌아가 명문 MIT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 뒤 1982년 미국 워싱턴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일했고, 1984년엔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가 됐습니다.

네타냐후는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됨으로써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그는 1992년 리쿠드당 총재가 됐고 1996년 처음으로 총리직에 올랐습니다.

네타냐후는 1999년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2002년 아리엘 샤론 총리 내각에 외무부 장관으로 다시 입각합니다. 그는 지난 2009년 다시 총리가 됐고 지금까지 총리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대외정책에 있어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팔레스타인과 대이란 정책에 있어 자주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런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의 입지가 최근 안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경찰이 네타냐후 총리를 부패 혐의로 기소하라고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네. 뉴스 따라잡기, 오늘은 ‘전미총기협회(NRA)’, 그리고 ‘뉴스 속 인물’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지금까지 김정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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