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곳곳의 다양한 모습과 진솔한 미국인의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김현숙입니다. 미국에선 건강을 위해 복싱 그러니까 권투를 배우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단순히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병과 싸우기 위해 권투장갑을 낀 사람들도 있습니다. 파킨슨병과 같은 퇴행성 신경질환때문에 몸을 떨거나 균형감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 ‘락 스테디 복싱(Rock Steady Boxing)’ 영어 약자로 RSB 라고 부르는 권투 수업이 운영되고 있다는데요. 지난 2006년 시작된 이후 미국 국내외 500여 곳에서 이 특별한 권투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 파킨슨병과 싸우는 권투 수업, 락 스테디 복싱(Rock Steady Boxing)”
[현장음: 락 스테디 복싱 프로그램]
버지니아주 맥클린의 한 체육관에서 ‘락 스테디 복싱(Rock Steady Boxing)’, RSB 권투 수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20여 명이 1주일에 2번씩 체육관을 찾아 권투를 배우고 있다고 하네요.
[현장음: 락 스테디 복싱 프로그램]
닐 아이스너 씨는 6년 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말 처음으로 RSB 권투 수업에 등록했다는데요. 무척 만족한다고 했습니다.
[녹취: 닐 아이스너] “알렉 코치가 파킨슨 환자들에게 필요한 동작들을 참 잘 가르쳐 줍니다. 파킨슨 환자 중엔 걷는 게 힘든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민첩성이 떨어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다리 힘을 길러주는 운동을 많이 가르쳐줘요. 또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되는 동작들도 많이 하죠. 안정적으로 자세를 잡는 건 제가 특히 힘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현장음: 알렉 코치]
[녹취: 닐 아이스너] “파킨슨 환자들의 경우 목소리도 힘이 없어져요. 내가 말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듣기 힘들어하는데 본인은 그걸 모르죠. 알렉 코치는 권투 동작도 가르쳐주지만, 목소리를 크고 분명하게 낼 것도 요구합니다.”
아이스너 씨가 언급한 알렉 랭스타인 코치는 북버지니아 RSB 권투 수업의 운영자이자 코치입니다.
[녹취: 알렉 랭스타인] “제 이모가 뉴욕주에서 체육관을 하시는데요. 이모 체육관에서 파킨슨 환자들을 위한 RSB 권투 수업을 운영하셨어요. 하루는 이모가 저를 부르셔서 RSB 프로그램이 어떤지 한번 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모는 제가 RSB 코치를 하기에 제격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이모의 생각처럼 알렉 코치는 RSB에 관심을 갖게 됐고 전문 코치 자격증도 땄다고 합니다.
[녹취: 알렉 랭스타인] “RSB 권투 수업은 전형적인 권투 수업과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균형감각을 중시하고, 손과 눈의 조화, 반응 속도, 다리의 움직임, 이런 것들을 중점적으로 훈련합니다. 사실 권투를 할 때 인지적인 요소가 매우 중요해요. 내가 펀치를 몇 번 하라고 지시하면, 다들 거기에 맞게 즉각 반응을 해야 하죠. 그러니까 머리와 몸이 함께 움직여야 하는 거예요.”
알렉 코치가 숫자를 외치자 참가자들 모두 팔을 뻗어 펀치 동작을 해 보입니다. 일반적인 권투 수업에 참가한 사람들보다는 조금 느리고 어설프긴 하지만, 코치의 지시에 대충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여러 연구 결과, 운동을 하면 뇌에서 기분을 좋게 하는 호르몬인 도파민 분비가 활발해지고, 활동성을 높여 파킨슨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는데요. 빅토리아 허버트 씨 역시 RSB 권투 수업을 통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습니다.
[녹취: 빅토리아 허버트] “저는 왼손을 많이 떠는데요. 춥거나 덥거나 사람이 많은 곳에 있는 등 뭔가 불안하면 손을 더 심하게 떱니다. 떨림이 마음대로 조절이 안 되니까 창피한 마음에 결국엔 손을 깔고 앉아버려요.”
빅토리아 씨는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증상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권투 수업에선 손 떨림을 숨길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녹취: 빅토리아 허버트]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과 아주 친해집니다. 4~5개월을 늘 함께 운동하니까요.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점도 RSB 권투 수업을 찾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예요.”
서로 같은 도전과 희망을 나누다 보면 파킨슨병 환자가 나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를 받게 된다는데요. RSB 권투 수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렇게 권투를 통해 파킨슨병을 이기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야기, 나비를 통해 자연을 배우는 ‘나비 정원’
최근 들어 미국의 많은 초등학교가 학교에 텃밭을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직접 채소나 식물을 길러보면서 자연에 대해 배우게 하기 위해서죠. 버지니아 워런톤에 있는 P.B 스미스 초등학교에도 몇 년 전 새로운 텃밭과 함께 ‘생태연구 클럽’이 생겼다는데요. 학생들은 이곳에서 나비의 일생에 대해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현장음: 나비 정원]
수업이 마치자 학생들이 일명 나비 정원으로 불리는 텃밭으로 모입니다. 생태연구 클럽을 책임지는 사람은 이 학교 교사인 바버라 드니 선생님입니다.
[녹취: 바버라 드니] “우리는 자연에서 생물체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 배웁니다. 특히 유액을 분비하는 식물들을 키우는데요. 나비들 특히 제왕나비의 애벌레들은 박주가릿과에 속하는 유액 분비 식물을 먹고 살죠.”
학생들은 박주가릿과 식물을 키우며 나비의 탄생 과정을 배우는데요. 생태연구 클럽에서 활동하는 아멜리아 제이쿰 양은 책에서 배웠던 것들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게 됐다고 했습니다.
[녹취: 아멜리아 제이쿰] “얼마 전 호랑나비의 애벌레들을 발견했어요. 얼마나 통통하던지 곧 번데기가 될 거 같더라고요. 이후에 진짜 허물을 벗고 아름다운 나비가 되는 과정을 눈으로 보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녹취: 바버라 드니] “우리는 알이 애벌레가 되고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과정에 대해 배우게 되는데요. 이 모든 과정을 확인하기 위해 오랜 시간 인내하며 기다리게 됩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나비 정원엔 화려한 제왕나비가 날아다닙니다. 제왕나비는 박주가릿과 식물에 알을 낳는데요. 요즘은 제초제를 많이 쓰는 데다 기후 변화로 인해 캐나다에서 멕시코를 오가는 긴 여정 가운데 쉴 곳을 많이 잃었다고 하네요.
이런 나비의 일생과 습성에 대해 배우는 생태연구 클럽은 이 학교 학생에 의해 탄생했습니다. 지금은 고등학생인 켈리 스콧 양은 걸스카우트 활동을 위한 프로젝트를 구상하던 중 자신의 모교인 P.B 스미스 초등학교에 나비 정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녹취: 켈리 스콧] “예전에 우리 집에 나비가 많이 드는 관목이 있었어요. 그런데 집 마당에 실외 공간인 덱을 만들면서 그 나무를 잘라내 버렸죠. 이후 그 나무가 무척 그립더라고요. 저는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도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우리 동네에 나비 개체 수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나비 정원이었는데요. 다행히 바버라 드니 선생님이 제 생각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셔서 이렇게 생태연구 클럽을 만들게 됐습니다.”
학교 측은 켈리 양의 이런 아이디어로 학교에 아름다운 나비 정원이 생긴 것도 좋은 일이지만, 켈리 양이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됐다는 점에서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했습니다.
또한 학생들이 정원을 직접 가꾸며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과 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요. 나비 정원을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나비들은 학생들의 자랑이자, 미래의 환경 지킴이 되겠다는 학생들의 작은 약속이 되고 있습니다.
네, '구석구석 미국 이야기' 다음 주에는 미국의 또 다른 곳에 숨어 있는 이야기와 함께 여러분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함께 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