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은 영변 핵 시설 해체 이전 북한 당국이 관련 시설에 대해 완전한 신고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기술적으로 2~3년 안에 비핵화를 끝낼 수 있지만, 추후 논란을 없애기 위해 비핵화 범위와 대상을 분명히 하고 관련 조치를 초기에 끝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북한과 이란 핵사찰을 담당했던 하이노넨 전 사무차장을 박형주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북한이 유관국 전문가의 참관 하에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폐기를 약속했습니다. 조건부지만 영변 핵 시설 영구 폐기도 시사했는데, 핵 전문가로서 현재까지 상황을 먼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하이노넨) 옳은 방향으로 일부 진전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누구도 반박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습니다. 먼저 북한이 영변 시설을 해체하기 전에 실제 현장에 있던 시설에 관한 완전한 신고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핵무기를 제조한 장소가 정확히 어디인지, 영변 이외의 장소는 없는지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더 잘 판단할 수 있습니다.
기자) 미국 정부는 영변 핵 시설 폐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영변 핵 시설이 영구 불능화된다면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요?
하이노넨) 핵무기 연료인 우라늄과 플루토늄 생산을 어렵게 만든다는 겁니다. 때문에 상당히 큰 진전이 될 겁니다. 하지만 더 어렵고 중요한 건 우라늄 농축 시설에 접근하는 겁니다. 북한은 원심분리기를 생산하는 장소에 사찰단의 직접 방문을 허용해야 하고, 또 자신들이 보유한 원심분리기의 정확한 규모를 신고해야 합니다. 또 영변 이외에 우라늄을 생산하는 다른 장소는 없는지 밝혀야 합니다. 이런 걸 고려할 때 영변 핵 시설 폐기가 중요하지만, 긴 과정의 첫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영변 핵 시설의 경우 미국과 IAEA의 사찰이 논의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찰이 왜 중요합니까?
하이노넨) 사찰단은 ‘진실’을 알아낼 수 있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중요합니다. 사찰의 목적은 현장에서 직접 상황을 확인하는 겁니다. 북한 측의 설명을 듣고, 샘플을 채취하고, 시설과 장비 등을 확인한 뒤 해체가 시작되면 그게 완전한 것인지 검증을 하는 겁니다. 특히 모든 민감한 장비들이 폐기 대상에 포함됐는지 분명히 검증해야 하고, 장기적인 모니터링도 필수적입니다. 이런 작업을 통해 북한의 약속 이행 여부를 알 수 있는 겁니다.
기자) 사찰단에는 어떤 전문 인력들이 포함돼야 할까요?
하이노넨) 아직 합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세 그룹이 포함돼야 합니다. 먼저 플루토늄과 우라늄 등 핵 물질 제조와 관련 시설을 사찰할 전문가들입니다. 이건 국제원자력기구, IAEA의 전문 분야입니다. 둘째는 매우 민감한 핵무기 분야입니다. IAEA 안에 핵무기 관련 활동을 전담하는 팀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반드시 미국, 프랑스, 러시아 등 핵무기 보유국 출신의 전문가들이 포함될 것입니다. 셋째는 미사일 프로그램입니다. 이를 담당할 별도의 국제기구는 현재 없습니다. IAEA 밖에서 별도의 특별팀을 만들 필요가 있는데, 과거 1990년대 이라크 문제를 다뤘을 때처럼 유엔 안보리 산하에 관련 기구를 만드는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기자) 박사님이 지금 북 핵 사찰단의 책임자라면 가장 먼저 어떤 일을 하실 겁니까?
하이노넨) 먼저 북측에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질문할 항목, 요구할 정보 내역 등을 만들어야 합니다. 1994년 당시 IAEA의 북한 사찰단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땐 30쪽 분량에 달했죠. 둘째, 우리가 어떤 검증 활동을 계획하고 있는지, 사찰단의 최소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북측에 설명할 겁니다. 또 사찰 시기와 장소 등에 제한을 두지 않는 ‘특별사찰’을 북한과 합의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사찰단 입장에서는 열악한 북한의 인프라와 전력 상황 등을 고려해 최소한의 사찰 장비를 준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셋째는 북한 지도부, 내부 전문가들과 소통채널을 구축해야 합니다. 끝으로 국제사회에 북한의 비핵화 과정과 준수 여부를 알려줄 ‘보고 메커니즘’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자) 아마노 유키야 IAEA 사무총장은 우라늄 농축 시설 등 영변 핵 시설 규모가 과거보다 2배 이상 확대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하이노넨) 이런 주장을 할 때는 매우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IAEA는 관련 정보를 제3국으로부터 얻었을 겁니다. 사실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은 위성사진을 통한 관측인데요. 물론 위성사진으로 건물 증축, 원자로 건설 등 외부 변화는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부에서 무슨 일이 진행 중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IAEA가 원자로에서 실제 핵연료 생산 여부까지 파악하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시설의 양적 확대를 보여주는 정황은 분명 있지만, 우라늄 농축이 실제 진행되는 장소가 어디인지, 용량은 어느 정도인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기자) 북한이 일부 핵 프로그램을 숨기려 한다면, 그걸 알아낼 방법은 있습니까?
하이노넨)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미국 등의 정보 기관이 자신들의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 어느 정도까지 인지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때문에 북한이 일부 누락 신고한다면 초기에 드러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영변 핵 시설을 영구 불능화 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합니까?
하이노넨) 농축우라늄의 경우 몇 달이면 폐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북한보다 더 많은 원심분리기를 보유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란의 경우 몇 달이 안 걸렸습니다. 플루토늄 생산 시설을 파괴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일단 100MW 실험용 원자로는 비교적 제거가 간단합니다. 5MW 원자로는 조금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먼저 제어 시스템, 열 교환 장치, 냉각탑 등의 제거는 쉽지만, 높은 방사성 물질을 처리해야 하는 재처리 시설을 다루는 건 좀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핫 셀(hot cells)’을 콘크리트로 채워 마치 동상처럼 수 백 년 동안 유지하는 겁니다. 그리고 나머지 시설과 장비를 단계적으로 해체하는 겁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이런 종류의 불능화 작업이 진행된 사례가 있고,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기자) 김정은 위원장이 말한 대로 2021년 초까지 비핵화 작업을 마무리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하이노넨) 김 위원장이나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이 제시한 시간표는 충분히 합리적인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일부 시간이 더 걸리는 작업이 있지만, 그건 덜 민감한 부분입니다. 사실 가장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은 현재 보유한 핵무기 처리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핵무기를 얼마나 어떤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자체적인 해체 계획도 세웠을 겁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무기 자체를 외부로 반출하는 방법보다, 먼저 핵무기에서 핵 물질을 분리한 뒤, 핵 물질은 외부로 반출하고 나머지는 폐기하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1~2년 안에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미국이 카자흐스탄에서,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핵 물질을 제거하는 것도 수 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기자) 미국의 대표적인 북 핵 전문가인 스탠포드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길게는 15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한 바 있는데요, 다른 생각이시군요?
하이네논) 헤커 박사의 전망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무기나 무기급 핵 물질을 제거하는 데는 15년이 걸리지 않습니다. 1~2년이면 가능하죠. 생산 시설이나 역량을 제거하는 것도 1년 안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핵무기 개발 인력 등을 포함해 ‘노하우’가 남아 있습니다. 즉, 이런 것들까지 포함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다시 복원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장기적인 모니터링까지 고려하면 10년 이상이 필요할 겁니다. 헤커 박사는 이 부분을 좀 더 강조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기자) 이란의 핵 협정 준수 여부를 놓고 IAEA와 미국 등의 평가가 다릅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완료했다고 가정했을 때 이런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은 없습니까? 논란의 여지가 없는 ‘비핵화 완료 선언’이 가능합니까?
하이노넨) 중요한 지적인데, 그래서 ‘비핵화 정의’가 필요합니다. 가령 1992년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에서 비핵화 핵심은 우라늄 농축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거였습니다. 2015년 이란 핵 협정에는 이란의 농축 우라늄 역량을 완전히 제한하지 않았습니다. 무기를 생산할 우라늄 농축 역량이 이란에 남아 있는 겁니다. 이런 기준에서 이란은 ‘비핵화’하지 않았습니다. 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비핵화’는 모든 핵 프로그램 해체는 물론 관련 장비와 문서의 폐기까지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이란의 경우는 역시 달랐습니다. 이 때문에 미-북 간 협상에서 ‘비핵화’ 정의를 어떻게 하고, 어떤 요소까지 포함할지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자) 그런 맥락에서, 미국의 비핵화 목표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CVID’에서 최근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FFVD’로 수정됐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하이노넨) 정치적인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비핵화 정의’에 관한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핵을 포기했던 남아프리카공화국, 리비아, 이라크 등 모두 ‘비핵화’ 정의가 달랐습니다. 남아공은 민간용 프로그램을 허용했고, 리비아는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연구용 원자로는 남겨뒀지만 우라늄 자체를 생산하지는 못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북한에도 어떤 모델을 적용할 것인지 합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란의 경우처럼 북한에 우라늄 농축 역량을 남겨두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잠재적인 핵무기 생산 능력을 허락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의학 목적의 일부 핵 활동을 허용할 순 있지만, 연료 생산 활동 자체는 금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에서 이 악마의 출현을 미리 막을 방법으로, 끝으로 어떤 조언을 하고 싶습니까?
하이노넨) 두 가지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초기에 실질적인 핵 해체 조치가 이뤄지도록 하는 게 중요합니다. 농축우라늄, 플루토늄, 핵무기 반출이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이런 과정을 이행하는 동안 북한을 안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즉, 핵을 포기하는 데 따른 상응 조치가 분명히 이뤄질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겁니다. 물론 미국 정부의 주장처럼 비핵화 전 제재 해제는 반대합니다. 하지만 통제된 방법으로 북한의 산업과 기반시설 개선을 도와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북한 비핵화 성공 여부는 초기 핵 생산 역량 해체에 달렸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문제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과거 북한 핵사찰을 담당한 올리 하이노넨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차장으로부터 북한의 핵 시설 해체와 검증 절차에 대한 전망을 들어봤습니다. 인터뷰에 박형주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