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북한의 송이버섯에 대한 답례로 감귤 200t을 북한에 보낸 데 대해 한국 내에서 엇갈린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남북관계와 비핵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답방의 동력을 살리는 긍정적 움직임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 반면, 북한 정권의 체제선전에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김영권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한국 정부는 11일과 12일 이틀간 공군 수송기 편으로 제주산 감귤 200t을 북한에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지난 9월 자연산 송이버섯 2t을 선물한 데 대한 답례 차원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밖에 다른 목적도 있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임을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남북관계 개선의 동력을 유지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최소한의 조치로 평가했습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남북 간의 신뢰를 계속 이어가는 게 굉장히 중요한 상황입니다. 특히 비핵화 협상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동력은 계속 이어갈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 최소한의 성의 표시로 감귤을 보내는 것으로 저는 평가합니다.”
임 교수는 “감귤 제공이 국제사회 공조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신뢰를 토대로 비핵화를 이끌어 가야하는 상황에서 상당히 적절한 조치”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통일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이렇게 대규모 물자를 북한에 제공한 것은 지난 2010년 북한 정권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사태로 지원이 중단된 뒤 처음입니다.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은 감귤 지원 자체는 부정적이지 않지만, 한국 정부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답방에 대해 너무 서두른다는 인상을 주는 게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차두현 위원] “보냈다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을 것 같고 다만 발상 자체가 무슨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보내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경우 우리(한국 정부) 쪽이 오히려 답방이나 이런 것에 대해 급해 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죠. 그런 것은 경계해야 하는데. 빨리 답방을 했으면 좋겠다 이런 데 대한 것. 시점이나 이런 면에서 우리만 급해서 하는 게 아니냐”
한국 정부는 관계자들은 그러나 감귤은 11월이 제철이어서 상품성이 제일 좋을 때 보내는 게 좋다는 판단을 했다며, 답례 차원 외의 확대해석을 경계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에서는 `감귤 카드'의 의미를 놓고 날 선 공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이해식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평화의 섬에서 영근 귤이 평화의 전령사 노릇을 톡톡히 하리라 기대한다”며 대북 감귤 제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며 평화의 한반도 시대를 증거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송희경 원내대변인은 한국 정부가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무시한 채 남북관계 개선에만 골몰하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일부 야당 의원은 남북교류에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한국의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참여를 두고 북한 정권이 “파국적 후과”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시기와 방법이 잘못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국정원 대북실장을 지낸 김정봉 유원대 석좌교수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와 제재, 남북 협력 등을 논의할 워킹그룹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감귤 지원에 대해 충분한 논의가 이뤄졌는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김정봉 교수] “한-미 워킹그룹을 (11월에) 만들기로 합의하지 않았습니까? 미국 국무부의 비건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서울에) 와서. 대북 지원이든가 뭘 할 때는 워킹그룹에서 논의한 뒤 보낸다고 했는데 과연 이 문제를 제기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 정부 관계자들은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감귤 지원을 통해 서로 대가가 오간 게 아니며 북한의 송이버섯에 대한 답례 차원이기 때문에 국내 5·24 조치나 유엔과 미국의 대북 제재와 상충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전문가들은 감귤 지원이 김정은 위원장의 답방을 끌어내기 위한 마중물일 것이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이 감귤 전달을 위해 평양에 간 것과 이종혁 북한 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이 13일 한국을 방문하는 것은 모두 감귤을 매개체로 남북한이 김 위원장의 답방을 논의하기 위한 수순이란 지적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기자들에게 김 위원장이 원한다면 “한라산 구경도 시켜줄 수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다시 임을출 교수입니다.
[녹취: 임을출 교수] “서울 답방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의지, 실현됐으면 좋겠다는 의지로 봐도 되지요.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이 감귤을 받았다고 마음이 달라지고 뭐 그렇게까지 보지는 않는데 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추진 동력을 이어가는 게 핵심 과제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저는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합니다.”
한국의 일부 언론은 특히 제주도의 평화적 이미지와 감귤, 한라산 헬기 착륙 시설 논의 등은 모두 김 위원장의 제주도 방문 가능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김정봉 교수는 그러나 김 위원장의 제주도 방문 가능성에 부정적 견해를 보였습니다.
[녹취: 김정봉 교수] “제주도는 가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김 위원장의 어머니가 제주 고 씨 아닙니까? 고용희가. 그래서 만약 제주도를 가면 김정은이 원하지 않는, 어머니의 외가가 제주도라는 게 부각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김정은이 제주도에 가기 힘들지 않겠나란 생각을 합니다.”
한편 이번 감귤 200t 대북 제공을 놓고 한국 내 탈북민 단체와 인권 단체들 사이에서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송이버섯에 대한 답례와 상호주의를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은 한국과 다른 수령 독재사회이기 때문에 감귤이 한국의 의도와 달리 체제선전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입니다.
[녹취: 강철환 대표] “북한에 가족을 둔 (한국의) 이산가족에게 우리가 송이버섯을 드렸으니까 우리도 남측에 고향을 둔 북한 주민들에게 귤을 우선적으로 줬으면 좋겠다고 말하든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누가 평양의 누구에게 준다든지 그런 편지라도 써서 귤을 보내든지. 그런 게 있어야죠. 사실 100% 다 중앙당 통해 간부들에게 선물로 줄 것이고, 지난 9·9절 행사에 참가했던 사람들에게 줄 것이고. 다 체제의 핵심 계층만 누리는 것이지 그게 지방의 주민들에게 갈 수 없는 것이죠.”
북한이 일반 주민들에게 감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하거나, 적어도 한국 국민이 북한 주민들을 위해 감귤을 보냈다는 것을 인지하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한국 언론들은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아무 표시가 없는 상자에 감귤을 담아 북한에 전달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앞서 북측에서 받은 송이버섯 2t을 한국 내 이산가족들에게 선물로 전달했었습니다.
이상철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은 12일 `VOA'에, 북한 정부도 이산가족에게 감귤을 나눠주어 협력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이상철 위원장] “북에 있는 이산가족들에게 송이버섯에 대한 답례로 감귤이 전달됐으면 하는 게 저희 이산가족들의 생각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북한이 한국에 선물한 송이버섯의 가격은 1등급 기준으로 1kg당 미화로 240 달러 정도. 2t은 48만 달러입니다.
한국이 보낸 제주 감귤은 11일 기준으로 10kg 한 상자에 도매가격으로 17.5 달러, 소매 가격은 30 달러입니다. 이를 200t으로 환산하면 소매가격은 7억원, 미화로 60만 달러입니다.
하지만 이런 규모는 과거 한국 제주도가 북한에 보낸 감귤과 비교하면 매우 적은 겁니다.
제주도는 지난 1998년부터 12년 동안 감귤 4만 8천여t을 보냈었습니다.
서울에서 VOA 뉴스 김영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