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월요일 한반도 주요 뉴스의 배경과 의미를 살펴보는 ‘쉬운 뉴스 흥미로운 소식: 뉴스 동서남북’ 입니다.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협상이 핵 신고와 제재를 둘러싸고 심각한 교착 국면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심지어 북한은 ‘핵-경제 병진 노선’도 다시 거론하는 상황인데요. 한국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원기 기자가 전해 드립니다.
지난 8일 예정됐던 미-북 고위급 회담이 취소된 이후 미국이 대북정책에서 ‘최대 압박’ 쪽에 좀더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9일 `워싱턴 포스트' 신문 기고문에서 “북한에 대해 전례 없는 외교적, 경제적 압박을 계속 가해나갈 것”이라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달성할 때까지 제재와 압박을 유지할 것을 국제사회에 요구했습니다.
이어 펜스 부통령은 13일 도쿄에서 아베 신조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도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가능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대북 압박과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펜스] "Pressure campaign will continue and sanction will remain in full.."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도 9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외교안보 대화 뒤 기자회견에서 “유엔 안보리 대북 결의를 이행하는 데 있어 중국의 협력이 비핵화 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대북 제재를 다잡아줄 것을 주문했습니다.
[녹취:폼페오] "Importance of united pursue denuclearization of North Korea.."
또 미 재무부는 11월7일 미국 내 북한 관련 자산 6천340만 달러를 동결 조치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미 의회에 제출했습니다.
올해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에 대해 9차례 117건의 독자 제재를 가했습니다.
북한의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0월 말 강원도 원산의 갈마 관광지구 건설현장을 시찰하면서 대북 제재를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입니다.
[녹취:중방] ”경애하는 최고 영도자 동지는 적대세력이 우리 인민의 복리와 발전을 가로막고 악랄한 제재 책동에만 매달려 있지만…”
또 지난 2일에는 외무성 산하 미국연구소 권정근 소장의 논평을 통해 미국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지 않으며 핵-경제 병진 노선을 다시 추구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습니다.
이에 대해 워싱턴의 민간단체인 한미연구소의 래리 닉쉬 선임연구원은, 제재를 풀지 않으면 다시 핵 개발을 할 수도 있다는 경고라고 말했습니다.
[녹취: 닉시] "North Korean statement waring they might resume nuclear…"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16일 보란듯이 최근 새로 개발된 첨단 전술무기 시험을 현지지도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미-북 간 비핵화 협상은 공통의 기반과 상호 신뢰가 부서지는 심각한 국면을 맞고 있다고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부 북한담당관을 지낸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는 지적했습니다.
[녹취: 퀴노네스] "It is serious because nothing go forward…"
문제는 미국과 북한 모두 한 걸음씩 물러서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우선 북한은 자신들이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따른 모든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합니다.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중단했으며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쇄했고,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도 철거를 시작했고, 약속했던 미군 유해도 송환했다는 겁니다.
또 영변 핵시설도 폐기하겠으니 미국이 이제는 제재를 풀라는 겁니다. 한국의 국책기관인 통일연구원 조한범 박사입니다.
[녹취: 조한범] ”북한이 원하는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방식의 자발적 비핵화입니다. 자신들이 스스로 원하는 부분을 비핵화하고 단계별로 보상을 받는 것인데, 풍계리 폭파도 자신이 선택하고 종전 선언을 요구하는 것이죠.”
그러나 미국의 생각과 평가는 다릅니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중단한 것은 긍정적인 일이지만 비핵화 조치는 한참 미흡하다는 겁니다.
가령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을 폭파했지만 전문가들의 사찰과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동안 어떤 종류와 규모의 핵실험을 했는지 알 수 없다는 겁니다.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핵 신고와 사찰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북한 스스로 핵 시설과 플루토늄, 우라늄 같은 핵 물질, 그리고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내역을 신고하고, 이후 이를 검증하고 폐기하자는 겁니다.
핵 신고와 검증을 하지 않으면 북한 핵의 전모를 파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검증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몇몇 핵 시설을 폐쇄하더라도 얼마나 비핵화를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또 비핵화 과정이 중단되면 북한의 핵 능력이 그대로 남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국은 핵 신고와 사찰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대북 제재를 풀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자신도 대북 제재 해제를 바라지만 그러려면 북한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녹취: 트럼프 대통령] “I’d love to take the sanctions off. But they have to responsive too. It’s a two way street. But we are not in any rush at all. There’s no rush what so ever.”
미-북 관계에서 예정됐던 회담이 돌연 취소돼 교착 국면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올해 미-북 관계는 5월과 8월 두 차례 교착 국면을 겪었습니다.
지난 5월24일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북한의 거친 담화를 문제 삼아 미-북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녹취: 트럼프]”Based on recent statement of North Korea I decided to terminate the plan of June Summit in Singapore…"
그러자 한국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습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의 요청에 따라 5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회담 직후, 김정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 의사를 밝혔고, 이를 미국에 전달했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문재인]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선언에 이어 다시 한 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이에 따라 미국과 북한은 보름 뒤인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역사적인 미-북 정상회담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미-북 교착 상황의 원인은 북한이 제공했습니다. 8월23일 폼페오 국무장관은 자신이 다음주 새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함께 북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녹취: 폼페오 장관] “I will be traveling to North Korea next week to make further diplomatic progress towards our objective.”
그러나 폼페오 장관의 4차 방북 계획은 하루 만에 뒤집어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표 다음날인 24일 폼페오 장관에게 북한을 방문하지 말라고 지시했습니다.
미 `CNN' 방송에 따르면 그날 아침 북한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이 폼페오 장관에게 “비핵화 협상이 결딴이 날 수도 있다”는 내용의 비밀서한을 보냈는데, 이를 본 트럼프 대통령이 방북을 취소했다는 겁니다.
폼페오 장관의 방북이 취소되고 미-북 관계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또다시 문재인 대통령이 나섰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수석협상가(chief negotiator) 역할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문 대통령은 9월 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등 5명으로 구성된 대북 특사단을 평양에 파견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한국 특사단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 임기 중에 비핵화할 용의를 밝혔습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방북을 마치고 9월 6일 공개한 내용입니다.
[녹취: 정의용]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내에 북한과 미국 간의 70년 간의 적대 역사를 청산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해 나가면서 비핵화를 실현했으면 좋겠다…"
이어 9월19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최초로 자신의 목소리로 비핵화 의지를 밝혔습니다.
[녹취: 김정은] “ 조선반도를 핵무기도, 핵 위협도 없는 평화의 땅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기로 확약하였습니다.”
그러자 폼페오 국무장관은 10월7일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비핵화와 2차 미-북 정상회담을 논의했습니다.
이렇듯 올 5월과 8월 발생했던 두 차례의 미-북 교착 상황은 모두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인 개입과 중재 노력으로 돌파구를 만들고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통일연구원의 조한범 박사는 이번에도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나서야 한다고 말합니다.
[녹취: 조한범] ”대북제재 해제는 북한이 원하고, 미국은 신속한 비핵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문 대통령께서 미국도 설득해야 하지만 북한에 선제적인 비핵화를 설득하는 과제도 남아있고, 만일 북한이 추가로 선제적 비핵화를 한다면 미국도 종전 선언을 거부하거나, 제재를 강화하기는 곤란하거든요, 그러니까 문 대통령의 역할은 충분히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약속대로 12월에 서울을 방문하면 이 자리에서 뭔가 미국과 북한이 모두 받아들일만한 중재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를 토대로 미-북 고위급 회담이 재개되고 2차 미-북 정상회담도 열릴 수 있다는 겁니다.
VOA뉴스 최원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