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북한이 정상회담 등 직접 협상에 나선 것이 중국의 대북 강경 노선을 완화시켰다고 스테이플턴 로이 전 중국주재 미국대사가 지적했습니다. 스테이플턴 전 대사는 23일 VOA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중국은 미-북 관여의 ‘구경꾼’이 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북한에 다가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북한의 핵 개발이 역내 미 군사력 확대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중국이 미국의 비핵화 외교를 방해하진 않을 것이라며 ‘제한적인’ 영향력 밖에 행사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주중 대사를 지낸 로이 대사를 박형주 기자가 인터뷰했습니다.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말 2차 정상회담 개최를 추진하며 거듭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담을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로이 전 대사) 우리는 정상회담에 이르게 한 일들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합니다.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계속하는 한 2차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또 비핵화에 대한 빠른 진전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인 이해도 생겼고요. 중요한 건, 궁극적으로 비핵화 실현을 위한 프로세스를 확립할 수 있도록 지금과 같은 협상 과정을 유지하는 겁니다. 이를 위해선 양측 모두 서로 만족할만한 결과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신뢰구축'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또 그런 조치들이 비핵화 측면에서 보자면 '겉치레'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가령 북한이 핵 발전소 등을 폐쇄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바라는 목표를 향한 진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이 이런 과정이 계속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이바지한다면, 긍정적인 소득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기자) 구체적으로 어떤 '신뢰구축'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로이 전 대사) 현재 북한이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중단했습니다. 또 미국은 한국과 함께 주요 연합 군사훈련을 유예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신뢰구축 조치입니다. 이렇게 각자 알아서 취한 행동이 양자 합의를 통한 행동으로 전환될 수 있다면 바람직할 겁니다. 즉 양측이 서로 시험과 훈련을 재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거죠. 또 워싱턴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개소한다면 상호 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종전 선언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특히 북한은 현재 제재 완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기존 유엔 안보리 제재를 제거하거나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재를 완화할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겁니다. 물론 이런 조치들은 제가 단지 예로써 든 겁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질적인 비핵화 달성을 위한 협상을 지속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검토할 수 있을 겁니다.
기자) 트럼프 행정부가 협상 목표를 핵∙미사일 '동결(freeze)'로 낮춘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로이 전 대사) 저는 (단계로써) '동결'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우리가 지향하는 최종 결과는 아닙니다. 앞서 말했듯, 미 관리 중 비핵화에 대한 빠른 진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동결 조치가 협상을 지속시키고, 또 그것이 구체적인 비핵화로 이어진다면, 바람직한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기자)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을 앞두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는 것이 일종의 '공식'이 됐습니다. 어떤 목적이 있는 걸까요?
로이 전 대사)시진핑 주석은 집권 이래 북한에 대해 줄곧 강경 노선을 취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들고나오자, 중국 역시 '우리만 구경꾼이 될 수 없다'는 태도로 변했습니다. 미국이 북한과 이런 방식으로 관여를 하는 한 중국 또한 계속 북한과 만나려고 할 겁니다. 중국은 북한에 많은 이해가 걸려 있습니다. 대북 제재의 효력을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지만, 북한은 물론 중국도 제재에 따른 비용을 감수해야 합니다. 미국은 북한과 아무런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은 모두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계속 협력하려고 하는 게 당연합니다.
기자) 시 주석이 김 위원장과의 최근 회담에서 북한에 비공개 유류 지원이나, 북-중 국경 통제 완화 등을 약속했을까요?
로이 전 대사) 그건 모르겠습니다. 중국이 미국의 대북 외교에 반하는 북-중 관계를 모색한다는 의심도 나옵니다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북한의 비핵화는 중국에게도 이익입니다. 북한이 계속 핵 개발을 한다면 미국은 동북아에서 군사력을 증강하려 할 겁니다. 중국으로선 자신들의 안보 이익에 반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미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사드)의 합법적인 한국 배치에 중국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목격했습니다. 중국은 사드 레이더가 자신들의 영토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며 싫어했습니다. 미-북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중국도 바라지 않습니다.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미-북 협상에서 이른바 '중국 배후론'을 제기했는데요. 최근 북-중 정상회담 이후엔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로이 전 대사)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과 중국이 북한 문제와 관련해 대립각을 세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협조가 필요한 북한 문제를 우선순위에 두면서도 대중 접근 방식에서 모순을 보입니다. 미국은 중국과 무역마찰을 일으키고 있고, 한국과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인 판단으론, 트럼프 행정부가 어떤 문제를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하고, 특정 이슈가 다른 우선순위 사안의 진전을 가로막지 않도록 하는 정교한 접근을 취하지 않고 있다고 봅니다.
기자) 무역, 남중국해, 화웨이, 타이완 등 미-중 간 현안이 많이 있습니다. 중국이 가지고 있는 대북 영향력이 미국 관계에서 '지렛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로이 전 대사) 북한 문제에 어느 정도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분명합니다. 미국은 중국이 우리와 같은 방향으로 대북 영향력을 사용해주길 바랍니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엔 미국 관계에서 북한이란 지렛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거래할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즉 "미국이 이걸 해주면, 우리가 북한에 이렇게 하겠다"는 식은 아닙니다.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이 있지만, 결정적인 영향력은 아니죠. 중국도 북한이 원하는 않는 행동을 북한에 강요할 순 없습니다.
기자) 중국은 미-북 관계가 개선돼 북한이 미국과 더욱 가까워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로이 전 대사)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건 중국이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히려 미국이 지금 북한과 정상외교를 통해 다루고 있는 사안들이 중국의 국경 문제와 직결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난 150년 동안 한반도에서 오는 위협은 중국 역사에 끊임없이 영향을 줬습니다. 청일전쟁, 일제 식민통치, 한국 전쟁 등이 그랬습니다. 미국은 중국 안보에서 한반도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기자) 중국이 북한의 대미 협상을 통해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의도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로이 전 대사)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중국은 동북아에서 미군의 감축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바랄지도 모르죠. 하지만 이것이 미국과의 협상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한반도 통일로 귀결되는 상황이 온다면 문제는 달라질 겁니다. 한반도 통일 국면에서는 지역 안보와 안정이 중요한 쟁점이 됩니다. 그때는 북한은 물론 미국, 중국, 한국, 일본, 러시아 등 모든 관련국이 '지역 안보협약'을 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2005년 6자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을 보면, 참가국이 6자회담을 동북아 안보 메커니즘으로 전환하는 구상을 고려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논의가 본격화되면, 군대 주둔과 안보 협정 문제를 논의하고 해소해야 할 겁니다.
지금까지 스테이플턴 로이 전 주중 미국대사로부터 미-북 비핵화 협상에 대한 중국의 인식과 이해관계 등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박형주 기자의 인터뷰였습니다.